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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586

양반과 민중 코스프레의 조선후기사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조선후기는 매우 역동적으로향촌사회를 파고 들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살며그 안에서 갖가지 욕망이 분출하고 충돌하는 공간일진대, 우리가 이 시대를 보는 눈은양반의 눈으로 그 정신세계를 흉내내며 이 시대를 코스프레 하거나 민중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피지배자 일체를 뭉뜽그려 파악하는 작업으로 인해, 그 세밀함을 잃고 이 시대를 정확히 보는 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양반과 민중이라는 이 둘을 모두 포기해야 비로소 우리는 조선후기를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 [편집자주] *** 80년대를 풍미한 저 민중사관이라는 이름이야말로 한국역사를 뒤틀리게 한 원흉이라 하겠다. 민중, 참 말은 그럴 듯해서, 언제나 이 민중은 집합명사이자 추상명사였고, 그런 집합추상명사가 반제 반봉건을 기치.. 2025. 9. 26.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면 우리 집은 명문? 정말로 10대조가 유명한 양반이었다고 해도그 후의 10대가 어떻게 내려오느냐에 따라 제대로 된 양반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조상 중에 한명이라도 서얼이 나오면그 아래로는 죄다 금고로 묶였다. 이렇게 서얼집안이 되어버리면6-7대씩 내려가도 여전히 적자의 후손과 비교하면 그 직역이 차이가 있는 것을 호적에서 볼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당신의 조상 10대조가 유명한 선비라는 것이당신이 곧 양반 후손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중간에 한 명이라도 서얼 조상이 섞여 버리면그 후부터는 대대로 서얼로 묶여 금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사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당시의 호적을 확인하는 방법 외에는 없는데다행스러운 일인지 뭔지.. 2025. 9. 25.
조선 호적의 구조 다들 아시는 이야기겠지만 몇 마디 써 본다. 1. 조선시대 호적에는 당연히 양반에게 "양반"이라고 쓰여져 있지 않다. 일제시대 호적에는 "사족"이라던가 일본 호적에서 쓰는 방식대로 우리 호적에도 적은 경우가 있다던데, 조선시대에는 "양반"혹은 "사족"이란 호적에 쓸 수 없는 명칭이었다. 이는 조선이 아무리 양반에게 우호적이라도 그 나라 설계 자체는 양천제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호적에는 양반이라 쓰여 있는 대신 양반에게만 부여되는 직역이 쓰여지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유학幼學"이다. 그리고 서얼 혹은 중인에게는 "업유業儒" 혹은 "업무業武"라는 직역이 쓰인다. 그 외에도 잡다한 직역이 있는데 양반 직역은 대개 호적을 보면 알 수 있어호적으로 양반을 어느 정도 구별해 낼 수 있다. .. 2025. 9. 25.
此士, 느닷 없은 글귀 그 유래는? 非仁非義之事, 雖小不爲; 而所居所由, 無不在於仁義, 此士所以尙其志也맹자 진심상盡心上 주자 주에서 따온 글귀다. 이 글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 진심 장구 상 주자 해당 구절을 읽어야 의미가 있을 듯 하다.대원군이 쓴 글씨로 알려진 저 위 차사此士는 폼 나는 필체에 비해 도대체 뭔 말을 하려고 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던 바 제일 비슷해보이는 부분을 찾아 하나 써 둔다. 물론 이것도 완전한 설명이 아니고 어거지로 보이긴 하는데(此士에서 此는 형용사가 아니라 대명사 같기 때문이다)그나마 아무 근거도 없이 이것 저것 설명 붙이는 거 보다는 나을거 같아 쓴다. 이 이야기가 맞다면, 선비의 상지尙志와 관련된 의미 같기는 하다. *** [편집자주] *** 성리학 단계에 오면 별뜻 없은 맹자 말도 선불교 영향 아.. 2025. 9. 24.
일제시대 소학교 숫자로 발전을 설명한다? 흔히 일제강점기 발전의 근거로 소학교 숫자를 가지고 들고 나오는 것을 보는데이는 조선후기의 상황을 보면 명백한 조선의 상황에 대한 오독이다. 우선 한국사는 천년 가까운 과거제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정규 시험이 3년에 한번, 그 외에 각종 별시를 치면거의 매년 한번 꼴로 과거를 해도 응시자가 계속 나오고 급제가가 계속 나오는것을 우리는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과거제 천년 역사라는 것은 쉽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매우 넓은 독서층이 존재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보면 신분의 상승이 글을 하느냐, 독서층이냐, 과거를 볼 자격이 있느냐로 주어졌기 때문에 이미 18-19세기가되면 조선인들 사이에는 "못배운 한"이 정서적으로 머리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18세기 중엽, 신분상승.. 2025. 9. 24.
가짜족보와 공명첩으로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조선 후기 양반이 되는 방법으로족보를 산다던가, 공명첩으로 벼슬을 산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하지만 양반이 된다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호적이다. 족보도 공명첩도 모두 호적을 잘 꾸며 놓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호적이 왜 중요한가. 바로 양반이냐 평민-노비냐를 구분하는 데 있어 첫 번째 지표, 조선시대의 주민등록에 들어간 정보 중 가장 중요하다 할 군역의 직역에서 양반 직역을 호적에 표시해 놓는 것이 양반이 되는 첫발이기 때문이다. 이 호적에 양반직역을 적기 위해선 앞서 말한 대로 친가 3대조, 외조부, 처가 3대조, 외조부의 이름과 직역이 필요하고 이 조상의 이름과 그들의 양반직역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짜 족보도 필요한 것이다. 가짜 족보를 하나 사서 구했다고 치자. 그걸 마을 들고다니면서 자랑했겠는.. 202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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