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25 생활사 연구의 찬란한 금자탑: 쇄미록 필자는 이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10년 전에만 아마 필자가 읽었더라도필자의 연구 방향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이 일기 정도로 생활사가 디테일있게 쓰여진 기록이 또 발견될 것인가. 몇몇 후보가 될 만한 것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필자가 직접 본 바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한 말은 아끼고자 한다. 아무튼 쇄미록은 우리 생활사는 물론 필자처럼 생물인류학-고병리학을 하는 사람에게도 정말 큰 자료가 되리라 본다. 지금까지 필자가 얻었던 여러 데이터의 재해석이 가능해 지는 것이 이 책을 본 최대의 수확이라 하겠다. 이 책은 한 번 보고 접을 것이 아니라 필자처럼 생물인류학-고병리학을 하는 사람들도 바로 옆에 두고꾸준히 다시 읽어가며 새로이 아이디어를 얻어 낼 만한 책이라 하겠다... 2025. 8. 24. 무슨 수단을 써서도 양반으로 남아라 다산은 그 아들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 근처에 남아라, 라고 했다던가. 이는 다산의 시대에 경화사족들이 모여사는 서울을 떠나게 되면영영 제대로 된 양반으로 남기 힘든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고언일 것이다. 지방사족들은 반대로 18-19세기가 되면 몇몇 예외적 존재를 빼고는 죄다 개털이 되어 문반의 경우 급제를 하더라도 하급지위를 맴돌거나 대대로 문반의 지위를 누리던 이들도 간신히 무반 자리하나 얻어차고 양반 자리를 얻은 자가 많아졌으니 노상추일기 등에 나오는 영남소외론 등은 사실 영남만이 문제가 아니라 당시 지방 사족들은 죄다 개털이 되었다는 점에서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해도 좋겠다. 지방사족들의 경우 서자는 물론 적자라도 대대로 벼슬이 끊어져 버린 집안들이 점점 늘게 되었는데 이들이 순순히 3대 벼.. 2025. 8. 24. 조선후기의 의례에 대하여 우리나라 조선후기의 국가 의례, 그리고 사대부 반가의 의례는모두 조선의 유학자들이 창안해 낸 것이다. 원래 무슨 유교경전에 자세히 기록된 것이 아니다.이것을 고례古禮라고 하는데, 고례는 유교경전 몇 군데에 매우 소략하게 산견될 뿐으로 이미 아주 옛날에 사라져버려 이름만 간신히 전하는 정도로그것이 어떻게 시행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따라서 친영례라던가 향음례, 향사례 등무릇 고례를 따라가야 한다고 조선후기에 시행한 수많은 의례는모두 다 유학자들 창안품이다. 물론 그 안에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부분도 있는데그래 봐야 예기 등의 글 한쪼가리로 부풀려 만들어 놓은 거라근거라고 할 만한 부분도 전혀 없다. 사대부 반가의 의례로 내려오면 결국 주자가례인데,주자가례 자체가 고례와는 무관한 .. 2025. 8. 23. 대동보의 호황은 19세기 중반부터 우리나라 대동보 "산업"의 호황은 19세기 중반부터다. 왜냐. 호적을 보면 이때쯤이면 3-5명 정도의 사람들로 구성된 소농 가구가 동네마다 가득하여,이들이 죄다 유학을 칭하고 있는 까닭이다. 이들이 유학을 칭한다는 건 자신들이 양반이라고 호적에 올렸다는 소리다. 양반이라고 호적에 올렸는데 족보가 없으면 되겠는가? 19세기 중반부터는 대동보가 초호황을 누리기 시작했음이 틀림없다. 이전까지는 족보라고 해 봐야 유력 가문 몇몇이 찍어 나눠 가지는 정도의, 아마도 잘해 봐야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사람의 문집이나 찍어 돌려보는 정도의 부수였을 텐데 19세기 중반 동네마다 유학을 모칭한 이들로 가득하니 우리나라 대동보 산업은 이때부터 초호황을 구가하여 그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졌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시점에 양반.. 2025. 8. 23. 왕건 통천관의 일월의 흔적 다음으로 하나 더 있다.이번에는 경순왕 면류관과 거의 비슷한 시기의, 개성에서 발견된 왕건의 청동상이다. 왕건 청동상이 쓰고 있는 통천관을 유심히 보면, 이 통천관 끝에는 장식이 달려 있다.통천관이면 통천관이지 저 통천관 끝의 둥근 장식은 도대체 뭘까? 뭔가 경순왕 어진의 해와 달과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아니면 말고... 경순왕 면류관의 일월의 흔적 공양왕 면류관의 일월의 흔적앞서 쓴 글에 조선왕조의 일월오악병이 혹시 신라까지 소급되는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림에 나오는 오악이 바로 신라의 오악이 아닌가 해서이다. 이것 말고도 필자가 이리 보는 이유historylibrary.net필자 보유: 요즘 필자도 나이를 먹어 실수를 많이 한다. 처음 공양왕 면류관으로 올린것은 공양왕이 아니라 경순왕이다.. 2025. 8. 23. 경순왕 면류관의 일월의 흔적 앞서 쓴 글에 조선왕조의 일월오악병이 혹시 신라까지 소급되는거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그림에 나오는 오악이 바로 신라의 오악이 아닌가 해서이다. 이것 말고도 필자가 이리 보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으니 확실히 맞는 것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어차피 필자는 이에 대해 문외한이니 좀 적어본다. 첫째로 위 그림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어진으로 나말여초 때 그린것을 다시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면류관 그림을 보면, 일월오악병의 해와 달 아닌가?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일월오악병의 해와 달을 그려 놓는 전통은꼭 임금님 뒤의 병풍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 뜻이다.일월오악병 일월오악병요즘 한국 관련 에니메이션 하나가 지구촌을 흔들고 있는 모양이다. 필자도 뒤늦게 유튜브 동영상을 보니 사람들이 많이 볼.. 2025. 8. 23.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40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