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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815

나는 왜 Dry Lab으로 넘어가려 하는가 (1) 필자가 쓴 글 중에 웻 랩 (Wet Lab), 드라이 랩 (Dry Lab)이라는 표현이 있어 여기에 대해서 조금 부연한다. Wet Lab이라는 것은 소위 말하는 자연과학 실험을 하는 연구실을 말한다. 대개 실험에는 물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는 자연과학 실험실 전반을 대개 Wet Lab이라 부른다. 필자도 90년대 중후반부터 연구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거의 30년 가까이 Wet Lab일을 해왔다. 필자 자신의 독립 연구실이 시작된 것이 1999년이었으므로, 필자 명의의 Wet lab 경력은 약 25년 정도 된다. Wet Lab은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자연과학 연구실을 대표하지만 모든 자연과학 연구실이 Wet lab은 아니다. 실험실 이외에서도 자연과학 연구는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2023. 11. 16.
태봉이 수덕이라면 금덕은 고구려인가 신라인가 태봉 연호 정개政開가 묵서된 목간이 나왔다고 한다. 수덕만세水德萬歲 태봉이 수덕이니 그 누리는 복이 영원하라는 뜻이리라. 태봉이 수덕이라고 했다면 그 앞의 금덕은 신라가 맞을까. 금덕이 고구려고 화덕이 신라가 아닐까. 善宗自稱王. 謂人曰, “徃者, 新羅請兵於唐, 以破髙句麗. 故平壌舊都, 鞠爲茂草. 吾必報其讎.” 善宗以強盛自矝. 意欲并呑, 令國人呼新羅爲㓕都, 凢自新羅來者, 盡誅殺之. *** Editor's Note *** 수덕만세水德萬歲는 태봉 궁예가 쓴 연호다. 911년부터 914년까지 사용하다가 개원하면서 국호를 마진摩震에서 태봉으로 고쳤다. 오행은 상생이 있고 상극이 있다. 전국시대 말기 추연이 오행을 들고 나왔을 땐 상생설밖에 없었다. 상극설은 한대에 등장하는데 이게 획기인 까닭은 왕조 교체 논리를.. 2023. 11. 16.
북위 41-43도 이야기 다음으로 북위 41-43도 이야기를 해 보자. 한국사에서 북위 41-43도가 돌파된 시기는 조선초기다. 이 시기에 사군 육진이 개척되면서 두만강 압록강선이 확정되고 북위 41-43도 선까지 북상했다. 일본사에서 북위 41-43도 선이 돌파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다. 대략 메이지유신 이후 북위 41-43도선의 본격적인 개척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메이지유신 시대에는 한국의 경우 청의 봉금 지대인 북위 44도선까지 올라가 벼농사를 시작하였는데, 19세기 후반이 되면 한국과 일본사에서 각각 북상한 지리적 한계는 거의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사에서 북진정책을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문제와 결부된 농업 기술, 생산성의 문제다. 한국이 사대를 했건 .. 2023. 11. 14.
소위 담론에 대하여 필자는 담론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이 말은 필자가 학생때까지도 없던 말인데 (있었는데 선택된 그룹의 사람들만 쓰던 전문용어였을수도 있다) 언젠가부터 인문학 사회과학쪽 전반에서 쓰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너무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담론이라는 말을 즐겨하는 쪽 이야기를 유심히 보면 이야기하는 쪽에서도 담론이라는 말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필자 생각에는 이 용어는 어떤 인문학자, 사회과학자도 쓸 수 있을 정도로 가치중립적인 용어가 아니다. 이 용어를 즐겨 사용한 학문 그룹에서 선택적으로 사용해야지 지금은 논의, 토론, 논쟁, 학설 등 다른 용어로 대체 가능한 내용에 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가뜩이나 모호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논의의 내용을 한층 모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특별히 담론이란 .. 2023. 11. 13.
고대의 코끼리표 밥통: 무쇠솥 요즘은 쿠* 밥통이라는 소위 K 밥통이 전 세계를 휩쓰는 터라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해외 나가면 너도나도 일제 코끼리 밥통을 사들고 오는 때가 있었다. 정부에서는 일제 밥통보다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었지만 그래도 몰래들 들고 들어오는 이유는, 어머니들 보기에 밥맛이 다르다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러한 역할을 쿠*밥통이라는 K 밥통이 그러해서, 탈북자를 이야기를 들어보면 K 밥통에서 목소리로 밥 다 됐다고 알려주는 기능을 죽이고라도 이 밥통은 반입되는가 보다. 밥맛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철로 빚어낸 가마솥-. 소위 무쇠솥은 그 당시의 코끼리표 밥통이자 K 밥통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쪄서 익혀 먹던 밥맛이 똑같은 쌀을 쓰고 잡곡을 쓰고도 밥맛이 달라지는걸 보고 아마.. 2023. 11. 12.
쌀밥 때문에 남하한 고구려 고구려의 남진 정책이 뭐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쌀밥 때문이다. 그만큼 쌀은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우수하며 맛이 탁월하다. 원래 고조선-한군현이 있었다는 낙랑평원은 일찍부터 쌀 농사가 시작된 곳이고 필자 짐작으로는 아마 이곳을 경유하여 한반도 남쪽으로 쌀농사도 확산했다고 보지만, 삼국시대쯤 되면 쌀 생산은 이미 한반도 남부가 북부를 압도한지 옛날이었을 것이다. 고구려가 남하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쌀밥 먹기 위함도 그 한 이유가 되었으리라 본다. 잡곡밥만 먹다가 쌀밥을 먹자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으리오? 2023.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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