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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258

60언저리에서 40-50을 돌아보며 (2) 이미 한 꼭지 글을 남겼지만-. 60 언저리가 되어 40-50 시대의 나에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이것 저것 여러 군데를 파는 것은 좋지만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반드시 서로 연결되어 큰 주제로 귀일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필자가 60이 되어 지금까지 연구를 정리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일관된 연구주제 안에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논문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뜬금없는 주제로 동떨어진 논문도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없겠다. 필자가 이런 논문들을 60이 되어 돌아 보니, 이런 논문들은 결국은 다 시간 낭비에 가까왔다는 생각이다. 40-50대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이것저것 손대어 연구해보는 시기이긴 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그런 작업들 사이의 연관성, 보다 큰 주제 안에 포괄하여 위치시키는 노력을 게.. 2024. 2. 28.
제 정신으로 글쓰는 나이의 한계는 75세 인생의 역작을 남긴 거장들 프로필을 보면 대략 제 정신으로 글을 남기는 나이의 한계는 75세 전후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80이후에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이런 경우 과연 그 자신의 정신적 노동의 결과물이기만 할것인가, 조금 의심한다. 옆에서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나이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본다. 따라서 독립적으로, 의미있는 글을 남길 수 있는 나이의 한계는 필자가 보기엔 75세 전후이다. 그 후에는 아마 글을 남겨도, 회고조 이야기 외에는 어려울 것이라 보며, 정신적 생산성의 한계는 그 즈음일 것이라 본다. 거기에 맞춰 남은 삶도 설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한다. 2024. 2. 28.
40-50대의 60대 준비 필자도 60이 목전에 있다 보니 40-50대 때 생각한 60과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지금 40-50인 분을 위해 좀 써 보면-. 1. 체력: 40-50대 때만 해도 60이 되면 체력이 꺾인다는 것을 머리로는 예측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절감하기 힘들다. 필자도 젊은 시절에 밤새는 일은 밥 먹듯 했고 일이 좀 밀려도 걱정을 안했다. 왜? 밤 새면 되기 때문에. 그런데 체력적으로 딱 꺾인다는 것을 느낀 것이 50대 중반 정도였는데, 비로소 내가 생각하는 60이후는 이전과 확실히 다를 수 있음을 절감했다. 머리로 이해 못했다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는 그 차이를 이해하고 있었겠지만, 체력이 꺾이는 순간에 "절감"하는 것은 또 다르다. 2. 경제적 문제: 결국 이 체력이 꺾이는 것과 관련이 있는 부분.. 2024. 2. 28.
북방개척의 동반자: 무우? 윤관 북벌, 그리고 조선 전기의 북방개척 (사군육진) 때, 우리 농민들이 가지고 간 농산물이 무엇이 있을까. 문헌 근거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추정을 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조선 전기의 개척 때도, 쌀농사는 두만강 유역으로 들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밭농사가 주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기장과 조는 반드시 있었을 것 같지만, 보리를 들고 들어갔을까? 확실한 건 무우는 분명히 들고 들어갔을 것이다. 조선시대 군인들의 휴대품 중에 무우씨는 반드시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현지에서 군인들이 농사를 지을 때 무우씨는 반드시 심었다니 사실 무우는 수확이 빠르고 끓여 먹고 구워 먹고 심지어는 날 것으로도 먹을 수 있어 무우는 반드시 심었을 것이다. 2024. 2. 27.
한국에서 목판인쇄가 번성한 이유 필자가 보기엔 두 가지다. 첫째는 과거제. 과거제가 시행되어 한적을 읽어내릴 수 있는 식자층 숫자가 확보됨가 동시에 이와 관련된 교보재 서적이 많이 필요해져 목판인쇄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고, 두 번째는 대장경 조판. 대장경이 불교신앙심의 발로로 국가적 규모에서 조판되어 목판인쇄 수요를 계속 창출했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첫째로 과거제가 없었다. 헤이시 이후 무가 정권은 과거제로 책읽을 필요도 없고 싸움으로 날밤을 샌 터라 자연히 식자층은 서울에 사는 공경과 산속의 스님들로 국한되기 시작하여, 책의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고, 이러한 상황은 불경에도 영향을 미쳐 신앙심의 발로로 사경을 많이 했지만, 장경 조판까지는 가지 않았고 국가적 규모의 조판사업이 진행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가 .. 2024. 2. 27.
에도시대 이전 일본의 식자층과 인쇄문화 에도시대 이전 일본 문헌의 특징은 필자가 보기엔, 에도시대 이전에는 목판이건 활자이건 일본에서 찍어 낸 인쇄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없는건 아니고 있긴 있는데 현존하는 에도시대 이전 인쇄물의 태반은 한반도나 중국에서 인쇄본을 들여오거나 (불경이나 인쇄서적 등) 일본 국내에도 사찰에서 목판 인쇄등을 했다고는 하는데, 불경을 제외하면 Printed in Japan은 그다지 그숫자가 많지 않은 것 같고, 인쇄본의 수요는 거의 해외에서 인쇄본 도입으로 충당한 것 아닌가 한다. 고려대장경 인쇄본이 일본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서기 고사기, 그리고 칙찬와카슈 등은 에도시대 이전 것으로 남아 잇는 것이 거의 필사본인 듯 하다. 한국의 경우 남아 있는 전적의 다수가 그것이 목..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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