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58 헌책방의 잊혀져 가는 책들 그리고 송자대전 요즘 헌책방에 가 보면 긴장감이 팽팽하다. 물론 제대로 운영되는 헌책방의 경우인데 서울 시내에서도 이름 난 헌책방은 가 보면수년에서 수십년 험난한 독서계를 버틴 연륜이 있어정말 쟁쟁한 책들만 책꽂이에 남아 있다.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 책은 별로 없다. 그런 책들은 이미 다 폐기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책이 왜 나왔나 싶은 방만함은 신간서적을 파는 책방에 있다. 앞에서 필자는 20세기 이전 전적의 번역 이야기를 했다. 20세기 이전의 번역은 이렇게 수십년 경쟁에서 살아 남은 전적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20세기 이전에 우리 조상이 남긴 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차별없이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현재 번역이 되어 나오는 글들 중에는 2025년 현재 헌책방에.. 2025. 2. 21. 문자를 잊는다는 것은 절연한다는 것 인더스문명에도 뭔가 글자가 있었다는 데는 사람들이 동의한다. 글자로 보이는 것이 발견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읽지를 못한다. 쓰던 문자를 잊는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이다. 비슷한 예로 이집트 히에로글리프가 있다. 이 글자가 해독될 때까지 그 문자 해독은 오랫동안 잊혀졌다. 이집트 문명에서 고대와의 단절이었다 할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은 반드시 안타까와 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그 단절을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문자건 인더스문명 글자건 간에 어느 시기인가에 스스로 망각을 선택해야 하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무조건 문명 몰락의 결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 글자를 쓰는 이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글자를 폐기하고 과거와 절연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자가 잊혀짐과 .. 2025. 2. 21. 공지가 돌파되는 경우: 병자호란의 예 앞에서 한국과 중국 양국간 공지空地 이야기를 했다. 이 공지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예를 병자호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에 병자호란과 관련하여 알려진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병자호란 때 서울 인근까지 침투한 홍타이지가 서둘러 철수한 배경에는 당시 주둔지 주변에 천연두 환자가 발생했었다는 점-. 물론 이것이 청나라 군대가 서둘러 철퇴한 배경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로 분리되었던 두 지역 사람들이 어느날 대면하는 것은 전염병의 측면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신대륙 발견 당시 유럽인에 의해 원주민들이 속수무책으로 전염병에 의해 쓰러진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다음은 같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을 따라 남하한 우역-. 이 우역은 처음에는 청나라 영토인 심양에서 발생하였는데 호란 당시 .. 2025. 2. 20. 간도 이주민처럼 숨어 든 위만 위만이 연나라에서 도망쳐 그 무리와 함께 처음 숨어든 땅은한나라가 지키는 요새 바깥은 공지空地였다. 그리고 이 공지는 고조선 땅도 아니었다. 구체적으로는 고조선과 한나라 사이에 존재하는 공지였다는 말이다. 고조선으로서는 공지에 사는 위만을 서쪽 변경을 지키는 박사로 임명했다니고조선이 볼 때 그 땅은 공지가 아니라 자기들 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 땅은 비워둔 땅이었다. 관념상 누구의 땅이건 간에 일단 비운다는 말이다. 청나라 때 유조변柳條邊 바깥 땅도 관념상으로는 청나라 땅이었지만 자기네들 땅을 비워 공지로 만든 것이다. DMZ가 오늘날 한국과 북한 사이에만 있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겠다. 위만이 건너와 살았다는 한나라 요새 바깥의 공지는 아마도 청나라 때 유조변 바깥에서 압록강 북쪽에 설정된 공.. 2025. 2. 19. 국경의 변화와 전염병 근대국가는 국경에서의 체계적 검역을 특징으로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 국가 침탈도 국경선에서의 검역관리라는 모습으로 들어올 때가 있다. 일본도 구한말 조선에 대해 검역관리를 이유로 국권침탈을 시작했고 조선이나 중국이나 모두 개항 이후 가장 서두른 것이 바로 검역이었다. 언젠가 김 단장께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근대국가의 전환은 곧 국경선 모습의 변화이기도 하다. 전근대시대 국가간 경계가 꼭 이렇다는 보장은 할 수 없겠지만 이 당시 국가간 경계는 공지를 두어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본다. 지금처럼 국경선이 국가간 영토가 맞닿는 선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 사이에는 공지를 둔다는 것이다.이런 국가간 국경선에 두는 공지의 기원은 한국사에서는 멀리 고조선시대에도 볼 수 있.. 2025. 2. 19. 유조변이 만든 공지: 전염병의 장벽 조선시대 육로를 통한 중국 사행길을 표시하는 이 지도를 보면, 동쪽으로 이어진 중국의 경계가 압록강과 거리를 두고 남하하다가 압록강 어귀에서 만다는 것을 본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유조변柳條邊으로 봉금封禁 지역으로 못 들어가게 하기 위한 경계선으로 안다. 조선과 청나라는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국경은 공식적으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었지만, 조선측 국경인 압록강을 넘어 저 유조변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에 몇 십 킬로미터에 걸친 공지를 거쳐야 했던 것으로 안다. 조선 쪽에서는 압록강을 넘어 저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모종의 허가가 필요하며, 이는 중국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저 유조변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니 곧 유조변의 동쪽이 소위 말하는 봉금지역이 되겠다. 이 공지 아닌 공지가 우리에게 남긴.. 2025. 2. 17. 이전 1 ··· 14 15 16 17 18 19 20 ··· 36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