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587 백병원의 전신: 우에무라 외과 1925년에는 경성에 있는 우에무라植村 외과 광고가 있다. 우에무라는 경성의전병원의 외과 과장으로 백인제 선생 스승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당시에는 자기 병원을 따로 갖고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불가능하다). 우에무라 교수는 일본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자신이 따로 운영하던 우에무라 병원植村病院을 인수할 사람을 물색했는데당시 경성의전 외과의국에서 가장 특출한 재능을 보인던 선생에게 자신의 병원을 넘겨주었다. 이 백인제 병원이나중에 조선 굴지의 백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 [편집자주] *** 저 병원 설립자 식촌준이植村俊二에 대해서는 국사편찬위원회 인명 사전 제공 서비스가 있다. 이에 의하면 1935년 현재 59세이며, 1876년 9월 15일생이이다. 愛知縣 海部郡 八關村이 원적.. 2025. 9. 15. 박가분과 두산 (1923년) 1923년에는 박가분이라는 화장품 광고가 나온다. 이 박가분을 제조판매한 이는 박승직이라는 사람인데 두산그룹의 창업주, 바로 그 사람이다. 1920년대 초반만 해도 신문 광고는 태반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미국, 유럽 수입품 아니면 일본 공산품이 대부분이라 한국에서 제조된 상품 광고가 극히 드물었다. 그런 면에서 박가분은 우리나라 화장품 광고의 효시라 할 만 한데 불행히도 이 안에는 납이 들어 있어 나중에 큰 물의를 빚었다. 두산 그룹은 이 박가분으로 시작하여 기업을 일구었다. 2025. 9. 14. 고보와 중학교: 그 해묵은 증오 일제시대에 중학교라고 해서 전부 일본인은 아니고 조선인들도 다니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대체로 조선인들은 고보, 일본인들은 중학교에 모였다. 따라서 일제시대에 무슨 무슨 중학, 하면 1937년 이전에는 이 학교는 일본인 학교로 생각하면 된다. 조선인들이 모이는 고보는 벌써 20년대가 되면 출세의 통로로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하여 고보 뿐 아니라 보통학교도 입학시험이 격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따라서 당시 조선인의 고보는 앞에서 조선일보 사설에서 보았듯이 똑똑한 사람들만 들어갈수 있는 학교라 일본인들이 모이는 중학교보다 고보의 인적 풀이 더 우수했다는 증언들이 꽤 있고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일본인들 같은 경우에 식민지 조선의 중학교에 진학하는 이들이 뭐 본토에 있는 일본인들에 비해 별로 그렇게 우수했을 것 .. 2025. 9. 14. 같은 5년인데 왜 입학률 차이가 있는가 하는 의문 일제시대 2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 조선에도 제국대학이 만들어지고 전문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을 뽑기 시작했기 때문에 각종 신문에는 입학률에 대한 기사가 많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제국대학 예과 합격자 명부가 나오면 이 기사는 신문 기사로 전 합격자 이름이 모두 실릴 정도였다. 경성제일고보 합격만 해도 집안에 경사가 나는데 경성제대 예과면 조선시대 과거 문과 합격 이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몇 년 지나고 보니, 조선인들에게는 의문이 생겼다. 바로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 합격률이 조선인과 일본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조선인은 합격률이 전체 응시자 중 10프로 정도 (응시자 600명 중 합격자 66명) 인데 일본인은 350명이 응시했는데 그 중 83명을 뽑은 것이다. 위 동아일보 사설은 그래서.. 2025. 9. 14. 일제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교 수가 결정한다 식민지시대 대학생 수는 고등학생 수와 1대 1로 대응했다. 쉽게 말해 일본에서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국공립대 어딘가는 갈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도 인기과는 있기 때문에 경쟁에 밀려 원하는 곳을 못 가는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정원은 대학생수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일본의 구제 교육제도에서 고등학생이란 경쟁에서 자유로운 학창시절의 상징처럼 되어 있었다.따라서 고등학교가 몇 개나 있는가를 알면, 할당된 대학생 숫자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일본에는 구제고등학교舊制高等學校가 몇 개가 있었는가. 한 번 알아보자.먼저 구제고등학교 정점에는 제1고등학교에서 제8고등학교까지 8개교가 있다.이를 "넘버 스쿨"이라 불렀다. 고등학교 이름 앞에 번호를 붙여 불렀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번호가 아니라.. 2025. 9. 14. 교육: 선의의 정부는 무리를 한다 교육제도는 한 나라가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 교육된 인구가 있어야 근대화고 나발이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화 초입에특히 동아시아처럼 전혀 다른 교육제도 하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근대적 교육제도를 수립하려 해도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이 때문에 교육제도 정비 초기에는 많은 무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도 메이지 초기, 근대적 교육제도가 수립될 때까지 많은 무리를 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메이지 초기에 입신한 많은 이는엉망인 학벌을 가지고 있다. 사범학교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입학하고 1년 만에 졸업하고 선생이 된다던가, 육사 입학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받는다던가, 후일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대학예비교에 몇 년 안 되는 교육 경력으로 입학.. 2025. 9. 14. 이전 1 ··· 15 16 17 18 19 20 21 ··· 43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