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586 로버트 레드퍼드: Decent하고 Generous 한 미국에 대한 조사 로버트 레드포드는 요즘 세대는 잘 모를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에 대한 설명은 요즘도 한참 주가를 날리는 브레드 피트가 사실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짝퉁이나 하위호환으로 배우 인생을 시작했다는 말 한마디로 족하다. 로버트 레드포드는 Decent 하고 Generous 했던 미국의 상징이다. 필자 세대가 기억하는 미국이란 그런 이미지였고 영화를 만들어도 뭔가 다르고 민주주의를 해도 뭔가 다른 그런 나라였는데 요즘 하도 희안한 꼴을 많이 보다 보니 필자가 알던 미국은 언제적 이야기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죽음은 그런 의미에서 필자의 세대에는 뭔가 좀 다르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상징하는 decent하고 generous 한 시대가 다시 돌아왔으면 한다마는그게 쉽지 않을 것 .. 2025. 9. 17. 을축년 대홍수가 덮친 1925년의 대기근 1925년은 이른바 을축년 대홍수로 기억되지만 이 해에 수해가 오기 전, 봄에 이미 조선은 극심한 대기근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당시 지면을 보면 연일 기근 소식이며 구황을 위한 각종 사회 캠페인이 펼쳐진다는 기사가 나온다. 대홍수는 이런 기근의 와중을 덮친 셈이 되겠다. 한참을 굶다가 이번에는 대홍수가 덮쳤으니 당시로서는 매우 살기 힘든 시절이었을 것이다.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왜 대기근이 오는가? 조선에서 일본 쪽으로 미곡의 수출은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부터는 이출移出이라 불렀다) 항상 조선 쪽에 쌀 부족을 낳았는데, 이 당시의 기근도 이와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기근은 산미증식계획 와중에 발생했기 때문에 산미증식계획이 일본 측에 유리하고 우리에게는 불리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이.. 2025. 9. 17.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는 조선의 20년대 식민지시대 신문만 봐도 그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충분하다. 조선의 20년대-. 쌀 말고는 내다 팔 것이 없다.반면에 들여오는 물건은 일본의 공산품, 그리고 미국 유럽 등의 공산품이다. 일본과 미국 유럽 공산품 간에는 서열이 있다. 미국 유럽 공산품이 일본 공산품보다 상위에 있으며 일본 공산품은 그보다 못하지만 조선과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보호 무역 기조 등등으로 조선에서 판로를 찾았다. 아마 이 당시 돈의 흐름은 조선에서 쌀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의 공산품을 사서쓰는 방향으로 돌고 있었을 것이고, 이에 따라 당시의 신문 기사가 채워지고 있었다고 본다. 면직물로 세계를 지배하고 설탕으로 무역을 지배하는 제국주의에서 그 식민지로 부터 면화와 사탕수수 원료를 공급받는 .. 2025. 9. 16. Smoked or smoke-dried Mummies 훈제미라에 대해 아래 김단장께서 올리신 훈제 미라에 대해 써 본다. 이 미라 연구는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필자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 아는 바를 남겨 두겠다. 이 훈제 미라는 사실 단백질로 이루어진 생명체의 시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건조를 시킬 것인가 훈제를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은 일차적으로 음식물의 저장과정에서 습득하게 되는 지식이며 이 중 훈제하여 조상의 시신을 보존하는 방식은 지금도 필리핀 등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의 부족들이 행하고 있다. 물론 기원은 음식물 저장에서 왔겠지만 당연히 이 지역 사람들은 조상들의 미라를 이렇게 만드는 것은 그들을 조상으로 의식 때마다 모시고 나와 숭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서는 1만 2천년인가 전의 훈제된 미라를 찾았다 하니 이런 미라는 만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 2025. 9. 16. 출신이 다양한 구한말 관리들, 개천에서 난 용들 구한말 관리 중에는 물론 전통의 명가 출신, 혹은 정말 몰락양반이라는 잔반 출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서자 출신, 중인출신, 그리고 모칭 유학 출신 등18세기까지도 제대로 된 관직 진출이 불가능했던 사람이 상당수 들어가 있으며이들 중 일부는 당시 정계의 최정점에까지 올랐다고 본다. 그리고 이 구한말 관리의 상당수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자 그대로 총독부관리로 넘어갔거나 혹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선인 동향을 주도하는 재야의 계층으로 남았다. 일제시대 이미 최고학부까지 공부한 사람은 필자가 보기엔 거의가 바로 이런 인적 풀에서 나왔다. 이들은 정치적 동향에 따라 일제강점기에는 혹은 독립운동도 한 사람도 있겠고, 혹은 열심히 돈을 번 사람도 있겠으며, 혹은 아예 친일의 길을 걸었던 사람도 있어 다양한 모습으로 분.. 2025. 9. 16. 찹쌀떡 팔다 중추원 의장도 되고, 고무신 장사도? 구한말 외부대신, 법부대신, 그리고 중추원 의장을 하다가 일제시대에는 작위를 받아 귀족 대접을 받던 이하영-. 그는 사실 이항복 후손으로"집안은 거족이나 직계에 벼슬이 없어 어릴때는 찹쌀떡도 팔고 동자승을 하려고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구한말 출세하여 대신과 중추원 의장 등 크게 영달하였다. 고종 시기에 출세한 이 중에는 이런 사람이 많다. 원래 양반이었다가 벼슬이 끊어져 고생하다 출세했다는 것인데, 이하영은 찹쌀떡을 팔았다지만, 같은 구한말 군부대신을 지낸 이용익은 원래 양반 집안이지만 보부상을 했다 한다. 이들만이 아니라 구한말에 활약한 사람들은 대개 비슷한 집안 내력의 클리셰가 있는 경우가 많다. 원래 양반인데 벼슬이 끊어져 어릴 때 막일을 하며 고생을 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몰락양반의 후손인.. 2025. 9. 16.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43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