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88 일제시대 인류학논문 일제시대 인류학 논문이 설왕설래가 많다. 이 시대에 쓰여진 논문일체는 몽땅 조선인의 열등함을 밝히기 위한 논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고 그런 논문도 분명히 있을 텐데. 전부는 아닐 수도 있고. 필자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그럴 거라는 생각에 몇 가지 기초적 논문만 회자될 뿐. 필자가 나이 60 전후하여 새롭게 보겠다고 한 것이 이것이다. 일제시대의 인류학 논문-. 모두 해제를 한번 달아볼까 생각 중이다. 젊은 친구들이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안하고 놔둘 수도 없는. 딱 60넘는 연구자가 해야 할 만한 일이리라 본다. 2024. 2. 3.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사에서 구황작물이란 무엇인가. 한국에만 국한해서 말하자면, 쌀농사를 짓고자 했는데 딱 봐서 망할 것 같으면 급히 심어 아사를 면하고자 하는 작물이다. 그래서 구황작물은, 1. 재배 기간이 짧고 2.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척박한 땅에서도 자란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재배기간이 짧고, 쌀농사가 안 될 만한 악조건의 기후에서 될 만한 작물이라면, 이건 한반도에서 농사를 가장 먼저 시작했을 당시 재배되던 작물과 동일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감자, 고구마 등 나중에 들어온 작물을 제외하면 구황작물은 조, 피, 수수를 항상 예로 든다. 이들 작물은 쌀농사 이전에 이미 재배되던 밭작물들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쌀농사 시대의 "구황작물"이란 실제로는 쌀농사보다 먼저 들어와 밭에 재배되던.. 2024. 2. 2. 위대한 화학비료 흔히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과학이라고 하지만 정말 과학이 인류를 위해 봉사한 업적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대개는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연구가 대부분이고, 인류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만한 그러한 연구는 매우 드물다는 이야기다. 이런 예의 하나가, 화학비료다. 한해 농사가 끝나면 식물에게 영양분을 몽땅 뺏겨 휴경 하지 않으면 농사가 안되는 척박한 토지에 강제로 화학비료를 떄려부어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어 연작과 풍작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화학비료다. 화학비료는 인류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할 만하다. 흔히 유기농법 때문에 화학비료를 비하하는 경우를 보는데, 배부른 소리다. 화학비료야말로 수많은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출한 인류최고의 과학 발명품의 하나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지금도 유기농법으로 만든 비.. 2024. 2. 2. 찐밥만들기는 조와 기장 때문에 발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쌀과 보리를 쪄서 먹을 때 부담스러운 것은 익혀서 부드러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쌀이 도정이 충분치 않아 현미 비스무리 할 때는 쪄서 먹으면 보리와 막상막하다. 그래서 거칠다는 느낌을 준다. 필자 생각에는 조와 기장을 쪄서 먹게 되면 상당히 맛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조와 기장을 다른 곡식과 끓여 취사하게 되면 다른 곡식이 익을 때까지 끓여야 하므로 조와 기장은 너무 익힌 모양이 되는데, 이는 결국 조와 기장의 낱알 크기가 절대적으로 작기 때문이다. 따라서-. 낱알 크기가 작은 조와 기장의 경우 쪄서 먹게 되면 오히려 끓여 취사하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본다. 조만간 그렇게 먹어보겠다. 2024. 2. 2. 이미 다 알던 것이라는 데 대하여 우리가 이미 다 알던 것이라는 것은 사실은 제대로 된 논의를 막는 도그마, 정교하게 구축된 파라다임인 경우가 많다. 자연과학에서는 이런 경우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 중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데, 오랜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어느 날 그게 아니라고 발표한 내용이 느닷없이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그 보고가 있기 전에는 모두 실험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잘못된 관찰이었다고 이야기 되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파라다임이 뒤집힌 보고가 한 번 나오면 그 다음에는 나도 그런 것 봤다는 후속보고가 잇따르고, 그건 원래 있던 것인데 운이 좋은 보고라는 말까지 나온다. 학문에는 논문으로 정확히 인용되고 보고된 것이 아니면 "원래 다 알던 것"이란 없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2024. 2. 2. 남자들이 바뀐 것은 군대 때문 군대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겠지만 그것이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간에 한국과 일본의 남자들의 성격이 바뀐 것은 양국의 군대 때문이다. 한국의 징병제로 남자들은 무조건 집을 떠나 2-3년간 (필자 때는 그랬다) 강제로 총을 들어야 하는 시절이 있는 것과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자위대라는 군대 아닌 군대 시스템으로 운영한 것이 양국의 남자들 성격을 정말 많이 바꾸었다. 이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양쪽 어느 쪽으로도 볼 수도 있겠지만, 6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고도성장기에 보여준 한국사람들의 무지막지한 저돌성은 병역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라 본다. 심지어는 LA폭동 당시 미국땅에서 총으로 무장하고 옥상에서 폭도를 제압하는 장면은 교포들의 군 경험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 2024. 2. 1. 이전 1 ··· 200 201 202 203 204 205 206 ··· 41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