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20 함길도가 폭로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음모 세종은 함경도를 병합하고 나면 명나라로부터 간섭이 있지 않을까 항상 두려워했던 것 같다. 윤관의 비가 두만강 건너 선춘령이라는 구절도 그렇지만, 이 땅이 역사적으로 한반도 국가의 땅이라는 점을 어떻게든 증명하려 했다. 이런 프로파간다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세종실록 지리지의 함경도에 대한 설명이다. [A] 함길도는 본래 고구려의 고지(故地)이다. 고려 성종(成宗) 14년 을미에 경내(境內)를 나누어 10도(道)로 하고, 동계(東界)로써 삭방도(朔方道)를 삼았는데, 함주(咸州) 이북이 동여진(東女眞)에게 함몰되어 예종(睿宗) 2년 정해 【송나라 휘종(徽宗) 대관(大觀) 원년(元年).】 에 중서 시랑 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윤관(尹瓘)을 원수(元帥)로 삼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 오연총(吳延寵)을 부원수(副.. 2022. 12. 26. 한국 고대사의 기록이 빈약하게 된 것은 통일신라에 제대로 된 역사서 한권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본다. 이때 뭐라도 나왔으면 이름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고,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쓸 때쯤 뭐라고 그 편린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삼국사기를 쓸때 김부식 앞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제대로 편찬된 관찬서 하나 놓여 있지 않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통일신라시대와 같은 시기, 일본에는 소위 6국사가 편찬되었는데 이 시기 편찬된 사서 권수는 무려 190권에 달한다. 삼국시대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통일신라 기록은 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니겠는가? 이 시기 기록은 내가 보기엔 관찬사서가 있었는데 태워먹은 게 아니라 편찬을 아예 안 한 것이다. 한국 고대사 문헌의 빈약함을 김부식에게 뒤집어 씌우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든 한글자라도 더 남겨보려고 애쓴 그의 입장에.. 2022. 12. 25. 구스노키 마사시게 楠木正成 (1294~1336)와 칠생보국七生報國 앞에 구스노키 마사시게 남목정성 楠木正成 (1294~1336)에 대한 게시물이 있어 간단히 써 본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앞에 설명 된 대로 메이지유신 이래 천황에 대한 불멸의 충성심의 상징으로 제국 신민이 된 일본인들사이에서 거국적으로 숭배되었다. 지금도 구스노키 마사시게의 인기는 최고다. 그에 반해 이 사람과 맞서서 이기고 무로마치 막부를 연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재평가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가끔 나오지만 일반적인 평가는 "대역적"이다. 고다이고 천황의 남조군을 분쇄하고 무로마치 막부를 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카우지에게도 억울한 점은 있다. 무사들이 천황군을 박살내고 보내버린것은 자기가 처음도 아니고 그 전에 이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메이지유신의 시대에 볼수 있는 것과 같은 천황에.. 2022. 12. 25. 마운령 경계선의 돌파: 월경 도망자들 그리고 이성계 앞서 마운령 경계선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갈 경우 초기철기시대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쉽게 넘기 힘든 지리적, 인종적 한계선이었다는 이야기를 썼다. 이 마운령 경계선이 돌파된 때가 공민왕대이다. 공민왕의 쌍성총관부 공략과 함께 마운령 경계선은 돌파되었다. 초기철기시대 이래 천 수백년동안 쉽지 않았던 이런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쌍성총관부 함락 이후 마운령경계선이 돌파되고 두만강까지 국경선이 확장되는 과정은 불과 50-6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깊게 관련 된 사람들은 조선에서 도망한 월경자들, 그리고 조선의 주인이 된 이성계 집안이었다고 할수 있겠다. 이성계 집안이 조선의 지배자로 올라서지 않았다면 아마 함경도는 한국의 영토로 들어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2022. 12. 25. 함보函普와 이안사李安社는 닮은 꼴이다 변경사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식민 (사민)과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유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민 없이도 우리쪽에서 자발적으로 도주한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의 역사도 무시할 수 없다. 가까이는 조선 후기 청의 봉금封禁 지대로 목숨을 걸고 숨어들어 농사를 짓던 조선인들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멀리는 금金나라 완안부完顏部 시조 함보函普(10세기 초)나, 조선 왕조 사실상 중시조인 이안사李安社(목조穆祖. ?~1274)는 모두 이런 부류에 속한다. 함보는 한반도에서 간 것이 아니라 여진족 전승이 와전되었다는 주장도 일제시대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제기된 것으로 아는데 조선 중시조 이안사의 예를 보면 한반도로부터의 도망자 함보는 충분히 존재했을 법한 사람이다. 전승에 의하면, 함보는 나이 60.. 2022. 12. 25. 이성계 선조는 두만강에서 함흥까지는 어찌 왔을까? 여기에 대한 희귀한 기사가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처음에 목조(穆祖)가 때때로 현성(峴城)에 가니, 여러 여진(女眞)의 천호(千戶)와 다루가치(達魯花赤)들이 모두 교제(交際)하기를 원하므로, 마침내 그들과 함께 놀았다. 여러 천호(千戶)들이 예절을 갖추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반드시 소와 말을 잡아서 연회를 베풀고는 문득 수일(數日)을 유련(留連)하였으며, 여러 천호들로서 알동(斡東)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목조도 또한 이같이 접대하였다. 익조(翼祖) 때에 이르러서도 이대로 따라 행하고 고치지 않았다. 익조의 위엄과 덕망이 점차 강성(强盛)하니, 여러 천호(千戶)의 수하(手下)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모하여 좇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천호들이 꺼려서 모해(謀害)하기를, "이행리(李行里) 【익조.】.. 2022. 12. 24. 이전 1 ··· 293 294 295 296 297 298 299 ··· 35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