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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119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 관전법 (3) 앞에서 영산강 유역을 "임나사현"으로 보는 시각이 일본에 있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에 대해 계속 쓴다. 최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영산강유역에는 5말-6초 경의 전방후원분이 다수 발견되어 조사되었다. 여기서 어떤 유물이 나왔으며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필자는 자세히 옥석을 가릴 능력이 없어 여기 쓰지 않겠다. 다만 전방후원분이라는 것이 일본의 경우 3세기 이래 계속 발전한 현지의 고유한 고분으로 이 고분의 존재가 일본 야마토 정권의 판도의 유력한 지표로 보는 경우가 그쪽에는 있다는 점을 우선 써 두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야마토정권의 위치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큐슈설과 기내설이 대립하고 있다고 보는것 같은데 필자가 아는 한 적어도 일본에서는 야마토 정권은 기내설로 정리되었다고 본.. 2022. 11. 26.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 관전법 (2) 필자가 이 글을 굳이 "관전법"이라고 쓴 까닭은 필자가 이 분야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관전이라는 말은 직접 뛰는 플레이어가 할 소리는 아니다. 관중석에 앉은 사람이 쓰는 말이다. 필자가 관전의 재미를 위해 나름의 독법을 적는 것이니 그렇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앞서 쓴 글을 이어서 쓴다. 일본의 경우, 최근 교과서를 보면 임나라는 말은 잘 쓰지 않고 가야라고 표기해 놓은 데가 많다. 왜 가야라고 쓰게 되었는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중요한 점은 위에 표시된 가야 영역이 우리가 알고 있는 가야 영역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서쪽으로 더 길어 전남 지역이 가야에 포함되어 있다. 이 그림에서 가야로 표시된 영역은 사실 일본의 전통적인 임나일본부설의 "임나"와 동일하다. 구체.. 2022. 11. 24.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 관전법 (1) 최근 한국과 일본의 고대사 관련 주장을 보면 양측 입장이 미묘하게 다른 부분이 있는데 가장 두드러진 데가 임나사현任那四縣의 위치가 아닐까 한다. 먼저 한국 측에서는 대략 전남북 동부지역을 임나사현으로 보는 듯하다. 위 그림은 김태식 교수 (김 단장님 동명이인) 께서 주장하시는 글인데 최근 이 일대에서 가야계 문물이 많이 나와 이 보고를 임나사현과 연결해 이해하기도 아는 것으로 안다. 충분히 근거가 있는 주장이라고 보고, 대개 한국 학자들은 거의 전남북 동부지역을 주목하는 듯하다. 임나사현이란 일본서기에 나오는 기사와 관련된 것으로 계체천황 6년 (512년), 백제의 요청에 의해 왜가 할양했다는 한반도 남부의 4현이다. 반면 일본에서는 최근 교과서에 어떻게 실려 있냐하면, 이렇게 실려있다. 유의해서 보셔야.. 2022. 11. 24.
왜倭 오왕五王의 표문表文 왜 오왕이 중국에 표문을 올릴 때 과연 일본열도에서 이걸 써서 들고 왔을까? 이들의 표문이 유려한 문체인 것을 보면 내 생각에는 중국으로 도해하기 전 한반도에서 쓴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구체적으로는 백제. 왜왕의 이름 자체가 한자풍으로 급조한 느낌인데 이런 이름을 왜왕이 당시 쓰기나 했을까도 의문이다. 어차피 언제 또 할지 모르는 조공이라 일회용 이름 급히 지어 들고간 것은 아닐지? 특히 백제 개로왕과 왜왕 무의 표문은 같은 집단이 썼다는 주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엔 같은 집단 정도가 아니라 아무래도 같은 사람이 쓴 것 같다. 개로왕 표문과 왜왕 무의 표문 사이에는 백제 한성 함락과 웅진 천도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는데 물론 그 과정에서 왜로 도망한 문장가도 있을수 있겠지만.. 개로왕 표문 (472).. 2022. 11. 23.
요시노가리: 복원의 문제 항상 느끼는 건 일본의 문화재-.복원이 좀 과하다 싶은 느낌이 많았다. 복원을 콘크리트로 했다 해서 우리 광화문이 두고두고 욕을 먹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은 예사다. 심지어는 안에 들어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도 있다. 복원된 성중에는 나무로 원래 모습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아예 콘크리트 철골조 건물이 수두룩하고 그것도 원래 있던 자리에 그대로 지어 올린다. 오사카성이나 나고야 성 등 큰 성들을 물론이고 지자체에서 지어 놓은 성들도 콘크리트 건물이 많았다. 야요이시대 복원은 그러면 사정이 다르냐 하면 그것도 아닌듯. 요시노가리 유적을 가서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아마도 원래 발굴 때 모습은 우리 송국리나 별 차이 없었을 것 같은데, 두 나라에서 복원한 모양을 보면 천양지차다. 요시노가리 복원을 보면 .. 2022. 11. 22.
전시과제도는 실체가 있기는 한 것인가 고려시대 토지제도는 전시과제도로 공전인 국유지에 대한 수조권을 관리들 녹봉으로도 나눠주고 군인들 월급도 주고 했다는 건데, 중앙행정기구의 관리 월급이나 줬으면 모를까 이게 전국의 토지를 대상으로 제대로 시행되었을 것 같지가 않다. 국가가 지방 아전 하나 제대로 월급을 못줘서 자원봉사로 행정기구를 돌리던게 조선시대였는데, 고려시대라고 뭐 딱이 달랐을까? 전시과제도라고 포장된 국가의 "공식적"토지제도의 바깥에는 광범위한 은결, 국유지로 위장된 사전 등 토지 사유권에 입각한 토지들이 있었을 것이라 본다. 예를 들면. 북한역사를 나중에 기전체로 남기면서 식화지를 쓴다고 생각해보자. 거기다 장마당 경제를 쓰겠나? 배급제만 줄창 기술하고 끝낼것이다. 노동자는 백미 몇 그램, 교사는 백미 몇 그램... 이걸 가지고 ..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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