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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04

애초에 초점이 엇나간 자본주의 맹아론 근대화의 맹아, 자본주의 맹아론은 애초에 촛점을 잘못 맞추었으니 17세기의 변화는 필자가 보기엔 모두 근거가 없다. 근대로의 변화의 시작은 18세기 중반부터 찾아야 하며19세기 넘어 본격화하기 시작했지만나라 행정이 워낙 막장이라 그 흐름이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17세기는 아직 중세적 노비사역의 농장 경영이 절정기에 달해 있던 때이다. 이런 시대에 지주 전호제와 자본주의적 맹아를 찾는 것 자체가 잘못이고, 18세기도 전반기는 근대화의 징후가 없다고 본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 19세기 넘어가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가 가속이 붙었는데, 지금 우리의 시각은 17-18세기에 근대적 맹아19세기에 막장 사회와 제국주의 간섭, 식민지화 이렇게 보니 찾는 데마다 아무 것도 안 나오는 것이다. 애초에 .. 2025. 9. 9.
식민지시대만큼 가파른 18-19세기 변화 속도 흔히 식근론[식민지근대화론]의 논쟁 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 일제시대의 발전속도를 둘러싼 이야기를 보는데,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만이 아니라18-19세기 때도 변화 속도가 빨랐다. 그 이전 17세기 이전이 너무 답답할 정도로 정체되어호적을 보면 대략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사회가 변화가 시작되는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18세기 전반만 해도 동네마다 가득했던 노비가 19세기 중반, 겨우 100년 남짓에 동네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 정도 신분 변화 속도는 필자가 보기엔 충분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 18-19세기 이러한 변화 속도는 20세기까지 연장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19세기를 흔히 가렴주구의 세기, 18세기 영정조 시대를 무너뜨린 막장의 세기로만 보기 때문에이 시기가 가진 역사적 의미.. 2025. 9. 9.
상당히 잘 그린 케데헌의 한국인 얼굴 케데헌 주인공들 얼굴을 보면물론 눈을 다른 미국 에니메이션 보다 약간 찢어지게 그려 (slanted) 동양인 얼굴을 표현한 것 같지만 유심히 보면 옛날 디즈니 뮬란 주인공보다는 훨씬 그 정도가 약하고눈도 굉장히 크게 그려 놓아 동양인 얼굴 특징이 완전히 그림에 녹아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케데헌 주인공 얼굴을 보면,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란 느낌이 든다. 왜일까. 한국인의 머리 두상 때문이다. 한국의 머리 두상의 특징은 광안廣顔, 고두高頭, 단두短頭다. 무슨 말이고 하니 이마가 높고, 얼굴이 넓고, 앞뒤로 짧다는 말이다. 쉽게 말해 한국인 두상은 바둑돌이 위로 더 찌그러진 모양이다. 이 정도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정도로 특징적이라 두상만 보면 한국인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케테헌 주인공 .. 2025. 9. 9.
아직 제대로 된 호칭조차 없는 19세기 유학모칭자들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이라고 하지만이 숫자는 거대하다.많게 보면 전체 조선인구 절반 가까이 될 수도 있으며 적게 봐도 30프로는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많아 봐야 인구의 20프로를 넘지 못하던 유학호가 19세기 중 후반에 이르면 인구의 60-70프로에 달하게 되는 탓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유학호를 달게 되었는데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들을 부르는 호칭조차 변변한 게 없다. 그 당시부터 돌이켜 보자면, 놀고 먹는자들, 군역회피자, 향촌의 중인, 등등이 이들에 대한 호칭이며현대 한국의 학계에서도 유학모칭자, 항촌 중인, 등등을 비롯해 가짜양반에 이르기까지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무려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에 대해 통일된 호칭이 없다. 이와 대응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잔반일 .. 2025. 9. 6.
호적을 보면 매우 이상한 균역법 1750년 이후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균역법의 실체에 대히 의문을 갖는다. 이거이 실제로 제대로 시행되었던 것일까.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균역법 실시이후 선무군관 숫자가 너무 적다. 실록인지 어딘지 기록에 의하면 균역법을 실시하면 정부 수입이 줄어드니까 이를 메꿔 줄 선무군관은 정부에서 도별로 숫자를 정해 위에서 반드시 채우라고 내려 꽂았다. 그런데 막상 향촌의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이 몇 없다는 말이다. 선무군관을 받으면 직역이 그 이전에 유학이건 업무건 업유건 간에선무군관으로 바뀐다. 거의 백프로 이전에는 갖은 방법으로 군역을 회피하던 소위 향촌의 중인들이 대거 충원되었어야 정상인데막상 호적을 보면 선무군관으로 잡혀 들어간 사람이 몇 안 된다. 그나마 이 사람들도 그.. 2025. 9. 6.
호적에서 보는 균역법 균역법은 1750년, 영조 26년에 공포되었다. 온라인의 나무위키 글을 따서 옮겨보면 이렇다. 인정(人丁) 단위로 2필씩 징수하던 군포(軍布)를 1필로 감해주고, 대신 균역청을 설치하여 줄어든 세원을 보충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했다. 왕족이나 권문세가, 지방 관아에서 세금을 매겨오던 어전(漁箭), 염분(鹽盆), 곽전(藿田), 태전(苔田)과 선박에 대해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게 하였다. 그리고 토지마다 1결당 2말의 결작미를 징수하였는데, 이는 군역의 부담이 전세로 바뀌게 된 셈이다. 일부 상층 평민을 대상으로는 선무군관제에 따라 선무군관이라는 지위를 주어 선무군관포 1필을 납부하게 하였다.요약하면 군포를 노상 내던 평민들 2필을 1필로 감하는 대신, 새로 1필을 내는 사람들을 뽑아 손실분을 메꾸게 했다 이.. 2025.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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