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2432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3) 필자가 보기에 이 열성수교라는 책은특정시기, 특정 목적을 두고 편집되어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 같다. 단순히 문벌 집안의 시조를 추앙하기 위해 만든 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의 내용을 보았을 때, 책 안에 기재된 역대 왕들의 교서가 혹시 위조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이 시점에서 이미 800년 전에 죽은 특정 문중의 시조를 추앙하여 그 후손을 모조리 군역에서 빼주라는 황당한 내용 탓에)관련된 기록들을 몇 개 찾아보는 과정에서 이런 교서 자체는 확실히 발급된 것 같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이 책에는 신숭겸의 후손은 아무리 퇴락했더라도 군역과 잡역에서 빼주라는 교서를 여러 번 발급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 관련된 기록이 드물기는 하지만 사서에 .. 2025. 7. 11.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2)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 책의 퍼져 나간 시기로 알려진 18세기 말-19세기가 되면이미 우리나라 향촌에는 동네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유학"이 되어양반이 되어 군역과 부역에서 빠지는 것이 일대 붐이 일고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렇다. 물론 18세기에 "유학"이 되어 군역에서 빠지는 경우가 있었겠지만마음먹은 대로 그렇게 쉽게 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어떻게 할까? 그래도 비집고 들어갈 방법을 찾아보자면,우리 조상님 중에 성현이 계시다는 것으로 그 자손이니 우대해 달라고 청을 넣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이나 비변사등록 등에는 이러한 문제 때문에 논의가 가끔 보인다. 아래는 숙종 연간, 비변사 등록의 글이다. 都事의 考講案에 잡된 이유를 기록하는 것.. 2025. 7. 10. 용도불명의 목활자본: 열성수교 (1) 19세기 신분제도 격변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하나 써 보면, 필자가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아 우연히 접한 이야기 중에 열성수교列聖受敎라는 책이 있다. 규장각에서 올린 해제 책 내용을 보면 이렇다. 고려의 개국공신 申崇謙 (?~927)의 후손들에 대한 우대 조치를 지시한 수교들과 신숭겸 관련 자료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卷首題는 ‘列聖受敎’이다. 황색 표지의 線裝本으로, 표지 서명은 표지 좌측에 기재되어 있다. 본문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책이 작성된 시기는 본문의 가운데 “致祭太師祠文 維嘉慶二年歲次丁巳八月十六日”이라는 기록을 통해 1797년(정조 21)임을 추정할 수 있다. .. 2025. 7. 10. 19세기 幼學 다시보기 19세기 호적에서 이전에 평민 심지어는 노비 후손들까지도 약 1세기에 걸친 노력으로 대거 유학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유학이란 무엇인가. 이 유학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학생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사 때나 들어볼 수 있는 "선생" 같은 호칭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조선시대 호적에 기록되던 양반 유생들의 직역으로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호적에서 유학을 달면 일단 군역에서 면제되며 법적으로 과거 응시가 가능한 포지션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말로 해서 뭣하리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만해도 서얼들은 "업무" "업유"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뿐 양반의 끝자락에 해당한다는 이들도 "유학"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를 넘어 19세기로 들어가면 동네마다 ".. 2025. 7. 10. 19세기 가짜 양반들을 다시 보기 우리나라 희극계의 거성 구봉서 배삼룡 선생의 "양반 인사법"이다. 이 희극은 언제 봐도 정말 웃기는 장면이지만19세기에 각 향촌마다 넘쳐난 "가짜양반"들이 과연 저렇게 맹한 모습이었을까? 우리가 세상 살다 보면 남들 다 안 된다고 하는 것도 희안하게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박정희 정주영을 만나면 크게 출세하는 것 아니겠는가? 19세기 양반으로 올라선 이들은 바로 "어떻게든 안 되는 것을 되게 만들어 오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들은 호적으로 상징되는 양반사회의 빈 구멍을 찾아서 끊임없이 기회를 노리다가그것도 수십 년에 걸친 공작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족보에 양반으로 자신과 가족들을 올려놓고 이를 발판 삼아 더 큰 재부를 추구하면 살았던 사람 아니겠는가? 19세기 가짜 양반들은 무.. 2025. 7. 10. "유학" 그 강렬한 상징성 조선후기 신분 상승을 꿈꾼 노비들이 19세기가 되면 죄다 스스로 "유학"을 칭한다. 집집마다 동네마다 "유학"이 없는 집이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왜 하필 "유학"일까? 물론 유학을 칭해야 군역에서 빠지기 쉽다는 현실적인 이익이 분명히 있을 테고, 양반이라면 식자층이어야 하고배운 사람이라는 간판이 있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왜 "유학"을 선택했을까? 이 "유학"이 결국 20세기가 되면 대학졸업장이되고, 박사학위가 되는 것이다. "유학"간판을 단 사람들이 양반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비로소 거기서 "못배운 한"이 나오는 것이다. 19세기에 너도 나도 "유학"을 칭하는 순간에 이미 20세기의 우골탑과 교육열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겠다. 2025. 7. 9.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40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