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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12

고려시대 안태安胎 전통[1] 태조 왕건의 태실 1. 고려 태실은 왜 중요한가? 한반도 태실 문화 전통을 논할 때 통일신라시대를 포함해 현재까지 알려진 유일한 삼국시대 사례는 충북 진천 태령산의 김유신 태실이다. 이 태실은 이미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편찬할 때 그런 사실을 대서특필했다는 점에서 삼국시대에 안태安胎 장태藏胎 문화와 관련해 역시 대서특필해야 한다. 다만 통일신라 이전 태실 문화를 엿볼 만한 자료로는 거의 유일한 데다가 발굴조사가 이뤄진 것도 아니어서 여러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하나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김유신 태실 그 자체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러한 사실을 김부식이 대서특필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김부식 시대에는 태실 문화가 확실히 인지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불어 실물자료로써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태실은 놀랍게도 김유.. 2024. 4. 1.
고려 이전 태실은 왜 개무시되었는가? 첫째 사례 빈곤이라 신라 이전 태실은 오직 김유신 사례 하나만 보고됐을 뿐이니 이 김유신 태실만 해도 삼국사기 그의 열전에 저록되기는 했지만 워낙 평지돌출인 까닭에 그 존재 자체 실존 자체까지 내심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기타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에서 이것이 태실이라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니 태실은 더욱더 그 중대성에 견주어 그런 실물자료가 많이 남은 조선시대 위주로 논의가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둘째 마왕퇴 백서에 대한 개무시도 저와 같은 경향에 기름을 부었으니 나는 이 태실 전통이 중국대륙 남쪽 장강 문화권에서 비롯하고 그것을 중심 혹은 일부 지역으로 포함하는 기원전후 무렵 동아시아 문화권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함을 틈나는대로 역설하거니와 이 문화권은 중국 남부와 한반도 남부 그리고 일본열도 중남부를 .. 2024. 4. 1.
이것들이 모조리 골호骨壺란 말인가? 지금은 전시품이 바뀌었을지 모르나 국립경주박물관서 저 코너를 만들고선 저런 단지들을 어놓고선 하는 말이 골호骨壺 랜다. 뼈단지라는 뜻으로 시신을 화장하고 수거한 뼈를 담아 보관하던 것들이란다. 일부는 그럴 순 있다. 다만 다 골호인가? 나는 태호胎壺 를 상정한다. 어린아이 태어났을 적에 잘라낸 태를 보관하던 태항아리 말이다. 저 심각성 아무도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누가 한 번 골호라 하니 그렇대니 단 한 번 의심도 하지 않고 따라서 그렇댄다. 저 중엔 원화元和 10년(815)라는 글자가 적힌 항아리가 있다. 사진은 2018년 4월 1일 촬영이다. 2024. 4. 1.
소위 초두, 개돼지의 학문은 모양을 묻고 한의사는 기능을 묻는다 경주 성동동 149-1번지 유적 에서 출토한 이른바 청동 초두 라는 분이다. 계림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해 , 2017년 《경주 성동동 149-1번지 유적》이라는 데 수록했다. 이런 걸 보고선 고고학도들은 폼새만 열라 관찰하고 또 비슷한 유물이 어데어데서 나왔나 졸라 그림으로 그리고선 와! 자루가 다르네? 이형異形이네? 몇세기 몇사분기네 이러고선 지들 할 일 다했다고 만세 부르고선 뒤도 안 돌아본다. 이건 개돼지가 하는 일이다. 진짜 탐구는 언저리도 못 갔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엇인가? 기능이다. 도대체 저 기물은 뭐하던 것인가? 이걸 밝혀내야 담 이야기가 나오지 않겠나? 된장국 끓였니? 김치찌게 끓였니? 한약방에 갖다줘 봐라. 그 사람들 금새 안다. 약탕기라고. 저건 연단 도구다. 선약 만들어내던 그릇이.. 2024. 3. 31.
“開者即死” 열면 뒤진다(1) 1957년 중국 서안성西安城 서쪽 양가장梁家庄 부근 한 공사장에서 무덤 하나가 발견됐다. 지금의 서안시西安市 옥상문玉祥门 밖 서대가西大街 남쪽 약 50미터 지점이다. 이곳에서는 석관이 발견되고 더구나 도굴 흔적이 없었다. 이에 기쁜 마음으로 좋은 유물이 많겠지 하는 생각에 고고학도들이 관 뚜껑을 열려던 사람들이 멈칫하고 말았으니 그에서 선명한 네 글자를 마주한 까닭이다. 開者卽死[개자즉사] 열면 바로 뒤진다 뭐 이 정도 뜻이다. 이 저주문이 효과 하나는 톡특히 냈다. 아주 조심스럽고 세밀한 조사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 무덤에서는 금 은 동 철기와 자기 유리 옥 칠기 도용陶俑 등 230건에 이르는 껴묻거리가 수습됐다. 2024. 3. 30.
[해남 읍호리 고분과 훼기毁器] (3) 고의성을 탑재한 박살내기 그렇다면 저 무덤방 바닥에 그릇 쪼가리들을 동강내서 깐 일은 우연인가? 다시 말해 마침 적당한 건축 자재가 없어 옆에 보이는 휴대용 아궁이를 비롯한 부엌 가구 세트들을 깨뜨려서 바닥에다 잔뜩 깔아 시신 자리로 썼을까? 이 물음에 우리는 아무래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기왕 바닥에 깔 것이라면 저런 질그릇 쪼가리 아니어도 얼마든 대체제가 있다. 자갈이나 깬돌을 깔아도 된다. 실제 이런 식으로 깔아서 관 받침으로 활용한 데는 많다. 나아가 그렇게 깨뜨려 넣은 것들이 공교롭게도 일정한 흐름을 지닌다? 다시 말해 저 조각들을 조사단이 다시 찡가 맞춰 봤더니 아궁이를 비롯해 부엌 가재도구 일색이라는 점은 아무래도 의도가 개입했다 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질그릇이라 해도 이 또한 얼마든 대체제가 있을 텐데 하..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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