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 2420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3) 미륵사 봉영사리기로 잃은 것과 얻은 것 미륵사지 석탑 출토 봉영奉迎 사리기舍利記 공개는 고대사학계를 일대 후폭풍에 휘말리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이전까지만 해도 무왕의 왕비라고 생각한 선화공주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화공주가 가야 할 자리에는 느닷없이 ‘사탁적덕沙乇積德의 따님’이 정좌定座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제는 부여夫餘에서 남하한 온조 일파가 세운 왕국인 까닭에 왕족은 ‘부여씨夫餘氏’가 독점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사탁씨沙乇氏를 필두로 하는 다른 성씨가 권력을 주무르는 시대로 접어드는 양상을 뚜렷이 보인다. 봉영사리기奉迎舍利記에 의하면, 지금의 미륵사는 무왕의 왕후王后가 창건했으며, 그 왕후는 좌평佐平 사탁적덕의 딸이다. 사탁적덕의 사탁沙乇은 요즘의 제갈씨諸葛氏나 남궁씨南宮氏처럼 두 글자를 사용하는 복성復姓이며, 적덕績德은 이.. 2024. 1. 9. 화랑세기가 아니라도 다 알 수 있다는 포석정 ‘포석정鮑石亭 다르게 보기’는 화랑세기가 몰고 온 중대한 변화 중 하나다. 종래 포석정이라면 딩가딩가 음주가무하는 장소로 알았다. 그것은 삼국사기 신라 경애왕본기 4년(927) 조가 저록한 다음 사건이 발단이었다. 가을 9월, 견훤이 고울부에서 우리 군대를 공격하니, 임금이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태조가 장군에게 명령하여 굳센 병사 1만을 내어 가서 구원하게 하였다. 견훤은 구원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겨울 11월에 서울을 습격하였다. 이때 임금은 왕비, 후궁 및 친척들과 함께 포석정(鮑石亭)에서 연회를 베풀어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적병이 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어찌할 줄을 몰랐다. 임금은 왕비와 함께 후궁으로 도망쳐 들어가고, 친척과 공경대부 및 여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 숨었다. .. 2024. 1. 9. 1971년 6월 2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공사 허가 무령왕릉 발견의 신호탄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허가 1971년 6월 2일 오후 2시, 문화재관리국 회의실에 문화재위원회 제1분과 제7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참석자는 문화재위원으로 조명기 손보기 최희순 정인국 임창순 이기백 김원용 김유선이었다. 문화재관리국에서는 전문위원 1명, 정재훈 백동호 김상봉 장경호 사무관, 김선배, 정기영이 참석했다. 사회는 조명기, 간사는 장인기, 서기는 김재겸이었다. 보고사항으로 '문화재 보수 설계검토'가 있었고, 그 두 번째 안건으로 '공주 공산성 고분군 보수공사'가 상정되었다. 그 결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심의 결정: 원안대로 가결함 2) 보수내용 : (1) 5.6호분 봉토 해체 강회 다짐 (2) 5,6호분 배면 암거 (3) 6호분 석축 개축 (4) 6호분 .. 2024. 1. 8. [선화공주의 비밀을 파헤친다] (2) 미륵사발 혁명의 불꽃 2009년 1월 14일,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정비하는 과정에서 그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에서 사리공舍利孔을 개봉한 결과 이 석탑을 처음 조성하면서 그 내력을 써서 적은 금제金製 봉영 사리기奉迎舍利記를 포함한 사리장엄 일괄품을 발견했다. 이 봉영사리기는 글자 그대로 석가모니 진신사리탑眞身舍利塔으로 석탑을 세우면서, 석가모니 부처님 사리를 맞아들여 석탑에 봉안한 내력을 기록한 문서다.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인 납작한 방형 금판 앞뒤에다가 글자를 음각하되, 글자는 붉은 칠을 했다. 이를 판독한 결과 미륵사는 백제왕후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는 기해년에 사리를 봉안하면서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세운 사찰이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미륵사는 창건 목적과 발.. 2024. 1. 8. 거란-송을 갖고 노는 고려와 서하 거란 요나라 역사 통사로 원나라에서 관찬한 요사遼史는 전체 108권이라, 개중 열전은 권63부터라, 딱 절반이 열전이다. 그 열전 마지막이자 요사 전체의 마지막인 권108 열전 제46은 거란어에 대한 해설인 국어해國語解이고, 그 바로 앞이 이국외기二國外記라, 이는 여타 사서에서는 외국열전을 세운 데 견준 것과 대비하는데, 요사가 말하는 이국二國이란 바로 고려高麗와 서하西夏라, 이는 그만큼 거란 역사에서 두 나라가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한 까닭이다. 이 두 왕조가 거란을 다룬 양상을 보면 아주 비슷해서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실로 절묘하게 갖고 놀았다는 표현이 딱 적당하다. 이 이국열전에는 고려의 경우 그런 양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주로 두 왕조 사이에 있는 전쟁과 평화 시대 이야기를 추렸지만, 이는 고려.. 2024. 1. 7. 장례식 조문객과 사찰 낙성 축하객 (1) 빈소와 조문객 고관대작을 지내거나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의 죽음에 이르러 항용 보이는 표현 중 하나가 임금이 부의를 후하게 해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는 말이거니와, 이런 점들이 왜 고고학도들한테는 심각하게 보이지 않는지 나로서는 신통방통할 뿐이다. 조선시대는 기본이 이른바 박장薄藏이라, 일부러 값나가는 물건을 무덤에 넣는 일을 피한 전통이 오래되는 바람에 이걸 잊어버렸는지 모르지만, 나아가 시대별 문화권별로 넒나듦이 있지만, 근간은 후장厚藏이라, 값나가는 물건을 될수록 많이 넣음으로써 부와 권력을 과시하곤 했으니 해당 무덤에 들어가는 껴묻거리 상당수가 이른바 부의賻儀였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이 부의를 가능케 하는 절대 근거가 빈殯이라, 빈은 간단히 말하자면 조문을 받는 기간이다. 동아시아.. 2024. 1. 7. 이전 1 ··· 189 190 191 192 193 194 195 ··· 40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