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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1779

《묵재일기默齋日記》 완독을 시작하며 얼마 전 우리 공장 문화재˙학술을 전담하는 박상현 기자가 《묵재일기默齋日記》 완역 발간 소식을 전했으니, 아래 기사가 그것이다. 16세기 문신 이문건이 쓴 '묵재일기' 완역본 출간 이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서너 가지 사실에 놀랐는데, 첫째 이 방대한 일기 전체가 역주가 되었다는 것이고, 둘째 그 고된 일을 수행한 이가 김인규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이라는 사실에서 특히 더 그랬다. 김 과장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소문을 냈을 법도 한데, 그런 소문조차 새어나오지 않았으니, 김 과장은 크레믈린 족속인가 보다. 이 《묵재일기》가 어떠한 자료이며, 그것이 함유한 다종다양한 의미는 저 박상현 기자 기사를 필두로 여타 웹에서 쉽게 접근하는 각종 백과사전, 혹은 그에서 막족지 아니하면 관련 연구자.. 2019. 2. 28.
전통시대 대규모 토목공사는 왜 후다닥 해치웠는가? 저 제목이 시사하는 문제의식과 관련해 어제 경기전 중건 사례를 다른 로써 이야기를 전개했거니와, 아래는 2013년 11월 28일 라는 제하 내 페이스북 포스팅이다. 문제의식은 어제 글과 동일하다. 다만, 그 전개과정에서 여타 다른 사례가 있어, 증보라는 의미에서 다시금 업어온다. 오타 정도는 수정했다. 인력 동원과 정치 역학 때문이다. 인력 동원을 하려면 우선 농번기를 피해야 한다. 그리고 한겨울을 피해야 한다. 이걸 무시하고 까불었다가 망국으로 이른 왕조가 한둘이 아니다. 시황제의 진秦 제국, 유례없는 번성을 구가한 이 제국을 한방에 날린 것이 바로 무리한 토목공사에 이에 따른 노동력 강제징발이다. 새로운 왕조를 구축한 유방劉邦. 그는 자기 고장 죄수들을 공사판으로 개떼처럼 끌고가다가 반란을 일으켜 마.. 2019. 2. 27.
9개월만에 단기속성으로 뚝딱 해치운 경기전(慶基殿) 공사 전통시대 건축공사와 관련해 하도 말도 되지 않는 낭설이 작금 우리 문화재업계에서 횡행하거니와, 그런 낭설을 대표할 만한 생각 하나가 우리 선조들은 진짜로 건축물을 정성들여 잘 지었으며, 그리하여 10년, 20년 걸려 그 공사에 쓰는 나무도 베어서 갈라지지 않게끔 잘 건조했느니, 기와며 벽돌 같은 다른 건축 자재들도 그리 소중하게 갈라 터지지 않게끔 잘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낭설은 첫째, 소위 문화재 현장에서 사고가 터질 때마다 튀어 나오며, 둘째 그런 말을 버젓이 하는 자들이 하나같이 문화재 전문가를 자처하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오류가 신화로 둔갑하는 구실을 한다. 문화재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리 떠들어 제끼는데 그런 점에서는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어 보지 않은 일반시민사회 구성원들이야 "진짜로.. 2019. 2. 26.
몸짓으로 배우는 한자, 삐뚤어진 입 可 한 노인이 세 딸에게 모두 문자를 가르쳤다. 큰딸이 머리에 갓을 쓰고 나와서는 "저는 安입니다"고 하니 노인이 "잘했다"고 했다.둘째딸이 아들을 안고 나와서는 "저는 好자입니다"하니 노인이 "잘했다"고 했다. 셋째딸이 나이가 아주 어려 알몸으로 몸을 기울인 채 한 쪽 다리를 들고서서 말하기를 "저는 可자입니다"고 했다.그러자 노인이 가만이 보더니 이르기를 "그래...입口자가 조금 기울어지긴 했다만 그래도 역시 可자라고 할 만하다" 유몽인(柳夢寅)의 《어유야담(於于野譚)》에 보인다. 2019. 2. 22.
한국이 버리고 외국이 품은 한복韓服 한복韓服..정확한 사전적 의미가 무엇인지 논란이 있을 것이로대 한국인의 전통 복장 정도로 이해해도 대과가 없으리라. 한복이라면 연상하는 이 이미지의 옷. 누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한복이라 이름 붙이기 시작했을까? 아무튼 저 패턴이 한국의 전통이라 해서 재발견되고 나선 이제는 한국인도 입지 않게 된 한복이 느닷없이 경복궁에 출현해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그것을 걸치는 이 외국인 일색이라는 역설이 빚어지는 중이다. 결혼식 폐백에서나, 돌잔치에서나, 환갑잔치에서나 드물게 걸치는 저런 한복 난 조선시대에 본 적이 없다. 기생옷이 가장 가찹고 사대부가 여인이나 걸쳤을 법한 복식이다. 조선시대를 구성한 절대다수가 빈민층이라 전인구 90프로가 거지였다. 저리 화려한 옷은 생평 구경도 못한 사람 천지였다. 기생 혹은 .. 2019. 2. 22.
본남편이 내어준 기생 아내, 그와 이룬 사랑에 정실부인이 되고 《화랑세기》가 공개되자, 그것이 후대 누군가가 조작해 낸 역사서라고 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그에 드러나는 성(姓) 풍속이 파천황을 방불하는 점을 들었거니와, 신라가 아무리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회였다고 해도, 이 정도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뭐 그에 대해서는 내가 하도 많은 말을 해 놓았기에 중언부언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나, 이 한 마디는 해야겠다. 웃기는 소리들 그만 하고 자빠지세요. 저가 모르면 툭하면 파천황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아래는 조선 전기 때 사람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의 불후한 야담필기류인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보이는 대중례(待重來)라는 기생 이야기다. 김 사문(金斯文, 사문은 유학자 존칭)이 영남에 사신(使臣)으로 내려가 경주(慶州)에 도착하니,.. 2019.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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