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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2439

신라가 세운 문주, 부용국으로 전락한 백제 백제는 두 번 멸망했으니 1차 멸망은 475년에 있었다. 이때 백제는 왕도를 한성漢城에 두고 있었으니, 그런 까닭에 이 시점 이전까지 대략 500년 백제를 떼어내 한성백제라 이름하기도 한다. 이들을 멸망으로 이끈 이는 고구려였으며, 당시 왕은 장수였다. 광개토왕 담덕 아들인 장수왕은 재위한지 이미 63년이 되는 해에 3만 대군을 일으켜 백제 왕도로 진격했으니, 그가 왕위에 즉위한 때가 대략 18세 무렵이니, 이때 이미 팔순 상노인이었다. 그런 그가 얼마나 백제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던지 친히 군대를 이끌고 출정한다. 것도 겨울을 코앞에 둔 시점에 말이다. 이 사건이 정작 삼국사기 권 제18 고구려본기 제6 그의 재위년도에는 다음과 같이 아주 간략하게 적혔거니와 9월에 왕이 병력 3만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략하.. 2020. 9. 1.
[김유신 마누라論] (1) 남편 죽고 39년을 더 산 지조智照 삼국사기 권 제5,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2년은 김유신이 만 60세가 된 해다. 595년 생이니, 당시 나이 관념으로는 61살이었던 때라, 그때 환갑이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내가 확언은 못하겠지만, 없었을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당시에는 생일 관념도 실상 없던 때라, 생일이라 해 봐야 부처님 생일인 초파일 정도만 기념하는 시대였다. 동아시아가 그랬다. 태어난 날이 특별하다 해서 매해 그날에 즈음해 조촐하건 떠들썩하건 생일잔치라 해서 기념하기 시작한 것은 동아시아를 보면 당 현종에 와서야 비로소 확연히 보인다. 분류식 백과사전인 류서類書 중 일부를 보면 생일生日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그런 생일 기념이 남북조시대 말기쯤에는 등장하기 시작한 것으로 기술하기는 하지만, 내 보기엔 영 믿을 수 없.. 2020. 8. 31.
안견을 배우고 포도를 잘 그렸다는 신사임당 "어무이는 평소 그림솜씨가 아주 비상하셨으니 일곱살 때부터 안견 그림을 따라 그리다가 마침내 산수화를 그리시니 극히 절묘했다. 또 포도를 그리셨는데 세상에 흉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그림을 베껴 그린 병풍과 족자가 세상에 많이 전한다." 율곡이 쓴 선비행장..다시말해 돌아가신 어머니 곧 신사임당 행적을 정리한 글 마지막 대목이다. 신사임당으로 통용하는 율곡 엄마 신씨는 첫째 그가 그림 공부 교보재로 삼은 안견 그림은 진품인가 모본인가? 둘째 생평 강릉과 서울을 오간 그가 포도를 직접 봤을까? 누가 이런 의문을 풀어주기 바라노라. (2014. 8. 31) 2020. 8. 31.
이상한 남포읍성 남포읍성 지도위에서 위치를 확인하세요 map.kakao.com 앞서 소개한 보령 남포읍성은 다음지도 스카비뷰를 통해 공중에서 내려다 보면 그 구조적 특징과 더불어 입지조건이 완연하게 드러나는데 첫째 아주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지만, 실상 그나 다름없다는 점이요, 둘째 서해 바다에서 상륙한 지점 길목에 자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읍성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남포읍성藍浦邑城'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집필자는 조선시대 성곽 전공자로 현재는 충북대에서 정년퇴직 은퇴한 차용걸이며 이 글을 쓴 시점은 1995년이라 한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0호. 둘레 890m. 지정면적 11,478㎡. 현재 동·서·남문과 적대(敵臺)·수구(水口) 등의 시설이 남아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이 성은 1451.. 2020. 8. 30.
신도神道 묘지 앞이나 종묘 같은 사당 앞에 난 길을 신도神道라 하는데 이를 일본 용어라 하는 무식한 자들이 있다. 그래? 이래도 신도가 일본 용어인가? 신도라는 말을 해설하는 항목 중 하나다. 4. 墓道。 謂神行之道。 《漢書‧霍光傳》: “太夫人 顯 改 光 時所自造塋制而侈大之。 起三出闕, 築神道。” 곽광 미망인인 태부인 현이 남편 곽광이 살아있을 적에 직접 만들어 놓은 무덤을 사치스럽게 더 크게 하니 기삼출관하고 신도를 만들었다. 《後漢書‧中山簡王焉傳》: “大為修冢塋, 開神道, 平夷吏人冢墓以千數。” 크게 묘역을 조성하고 신도를 냈으며 李賢 注: “墓前開道, 建石柱以為標, 謂之神道。” 묘 앞에 도로를 내는데 돌기둥을 세워 표식을 삼으니 이를 일러 신도라 한다. (2013. 8. 29) *** 神道라는 말이 여러 함의.. 2020. 8. 29.
기록이 없는 것과 역사의 실상은 다르다 한문학계를 진원지로 하는 조선후기론이 작금 이른바 대세를 이룬다. 이들은 영정조 시대를 르네상스에 비유하며 이 시대를 칭송한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다. 그네들이 구축한 조선후기상은 그에 대비되는 조선전기, 그리고 그에 앞서는 고려, 그에 또 앞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대한 고려나 비교가 전연 없다. 말한다. 조선후기를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그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이 여타 시대에 견주어 산더미처럼 많기 때문이다. 문집만 보자. 임란 이전 조선전기 문집으로 제대로 남은 게 몇이던가? 없다. 고작 《율곡전서》《퇴계집》정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우수마발은 문집이라 해봐야 파라냐에 뜯기고 남은 물고기만 같이 앙상하기만 하다. 기록이 많이 남은 것을 혼동한 결과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근 다른 지역 문화사와의 .. 2020.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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