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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3021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네스트 헤밍웨이 Ernest Miller Hemingway (1899~1961)가 소설 제목으로 삼으면서 더욱 유명세를 탄 이 말은 for whom the bell tolls 를 번역한 것이라, 심드렁한 사람들은 그냥 종이겠니 하겠지만, 예서 관건은 toll이라는 동사가 의미하는 바다. 이 동사는 말할 것도 없이 종을 칠 때 나는 소리를 형상화한 것으로써, 우리는 종이 땡땡 울린다 하지만 저네들은 톨(토울) 톨 정도로 생각했나 보다. 원래 저 말은 영문학에서는 16~17세기에 독특한 성향을 보이는 metaphysical poetry 우두머리에 해당하는 존 던 John Donne(1572~1631)이 교회에서 행한 설교문에서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한데 이 경우 to toll이라는 동사는 죽음을 전제로 한.. 2023. 4. 16.
능산리 절에는 백제 공방이 있었을까? 능산리 사지 발굴 도면이다. 노란색이 1993년 발굴 지역이라 이른바 서회랑이라 지목한 곳이다. 서회랑 북쪽에 남북 방향으로 길쭉한 건물지가 보이거니와 길이 방향으로 건물을 3구획했다. 이를 공방지라 했거니와 나는 믿을수 없다. 이에 대해선 추후 과제로 미루거니와 상식을 파괴한 주장이다. 집 안채에다가 공방을 만들 순 없다. 의심하라! (2017. 4. 16) *** 물론 저곳이 공방이었을 가능성을 받침하는 발굴성과가 있다. 그렇다 해서 검댕이 나는 공방을 것도 금당 바로 옆에다 차리고 불때고 녹이고 해서 쿵쾅쿵쾅 기물 만들었다고? 기물 보관창고라면 이해하겠다. 삼국시대 이래 사찰이 각종 공장 기능도 아울러 수행했다 하지만 검댕이 날리는 공방은 그 권역 외곽 후미진 곳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의심한.. 2023. 4. 16.
3~4세기 타클라마칸 남동부 선선국歚善國 영역 The territory of Shanshan Kingdom during the 3rd and 4th centuries 3-4세기 선선국歚善國 영역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실 비름빡에 걸린 지도라, 영문을 바로잡는다. 우리 박물관이 세계 시장에 나가 자랑할 만한 게 두어 가지 있는데 개중 첫번째가 이런 비름빡 도판이 끝내준다는 점이다. 2023. 4. 15.
“일찍 죽지마라, 너만 손해다” 이런 비스무리한 말을 중국사상사 전공 김충현 선생이 한 적이 있다. 그의 이야기인즉슨, 마왕퇴 백서 곽점초간 같은 신자료는 자기는 보게 되었는데 나보다 일찍 죽은 사람은 못보고 죽었으니 나는야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한데 상서尙書, 일명 서경書經이라는 이름으로 유통하는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의 절대 윤리헌장이 몽땅 가짜임을 증명함으로써 동아시아 전체 지식인 사회를 멘붕에 빠뜨린 염약거閻若璩(1636~1704)도 같은 말을 했다. 그가 말하기를 “배움은 끝이 없으니 사람이 더욱이 일찍 죽어서는 안 된다” 그의 잠구찰기潛丘札記에 나온다. 하긴 뭐 노벨상 타기 위한 절대조건이 장수라니 무슨 사족이 더 필요하리오? 잠구차기 텍스트는 아래에서 제공한다. https://ctext.org/wiki.pl?if=gb.. 2023. 4. 15.
음식디미방이 채록한 제철 아닌 나물 기르는 법 16세기 안동에 살았던 정부인 장씨가 지은 을 보면 '비시非時 나물쓰는 법'이라는 게 나온다. 시비란 제 철이 아닌 이라는 뜻이다. 1) 마굿간 앞에 땅을 파 움을 만들고 거름과 흙을 깐다. 2) 위의 흙에 당귀, 산갓, 파, 마늘을 심는다. 3) 움 위에 거름을 덮어둔다. - 움 안이 따뜻해 나물이 돋아나게 되는데 이를 겨울에 사용한다. - 오이와 가지도 이렇게 하면 겨울을 날 수 있게 된다. 이게 정부인 장씨의 창안일리는 없고, 예전부터(고려때부터?) 해오던 방법을 기록한 것일텐데...이를 보면 이규보가 성질내며 허물어버린 토실에도, 의외로 별 난방시설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2023. 4. 15.
꿩 먹고 알 먹은 소수서원, 공사하다 얻은 구리 팔아 장서 채우고(1) 지금은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한 경북 소백산맥 기슭 영주 땅 유서 깊은 유교 예제禮制 건축물은 본래 이름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라, 조선 중종 37년(1542)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이곳이 한반도에 성리학을 본격 도입한 고려말 학자 안향安珦이 머물며 제자를 길러내던 데라 해서 그것을 기념하고자 세운 사당에서 역사가 비롯한다. 건립 이듬해 사당 기능 외에도 학교 기능을 가미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이름을 고치고, 다시 명종 5년(1550)에 이르러 이곳 군수를 하던 퇴계 이황이 왕한테 왕께서 직접 이름 하나 내려주소서 해서 ‘소수서원’이라 이름을 받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그 백운동서원, 소수서원이 시작한다. 이 약사를 보면 백운동서원은 창건에서 사액 서원이 되기까지 역사가 얼마 되지 아니하고.. 2023.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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