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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2298

멀고먼 부처님을 향한 길, 삼중잠금장치 채운 석굴암 석굴암을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평면도다. 인터넷에서 긁어왔다. 구조를 이해한다는 차원에서 제시한다. 보다시피 석굴암은 부처님이 위치하는 원형 주실主室을 뒤쪽 후미진 곳에다가 넣고, 그 전면에 평면 방형인 전실前室을 배치했으니, 두 군데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유의할 점은 주축 장축은 동-서 방향이라는 사실이다. 우리한테 익숙한 남북 방향이 아니다. 다시 말해 부처님은 서쪽 끝 후미진 안방에서 전실 너머 동쪽을 향한다. 더 간략화한 평면도로 역시 아무데서나 긁어왔다. 전실과 주실 통로를 비도라 했는데, 저건 어디에서 굴러먹다 온 용어인지 모르겠다. 중국 고고학 용어를 빌린다면 용도甬道라 하는 통로다. 보다시피 전실 양쪽 벽면에는 팔부신중八部神衆이라 해서, 불국토를 팔방에서 호위하는 무사 8명을 네 명씩 벽면.. 2020. 9. 10.
모란은 억울하다 삼국사기 삼국유사가 수록한 신라 선덕여왕에 얽힌 모란 이야기, 곧 당 태종 이세민이 모란 그림과 모란씨를 보냈는데 그 모란 꽃에 나비가 없음을 알고는 그 모란씨가 발아한 모란꽃은 향기가 없을 것임을 선덕이 알았다는 이야기는 모란을 둘러싼 곡해 하나를 낳게 하거니와 이르기를 모란꽃은 향기가 없다는 것이니,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한테 주어진 각종 모란은 꽃이 진하기 짝이 없다. 그런 까닭에 많은 이가 그런 이야기가 모란을 곡해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조심할 점은 저 이야기 어디에도 모란은 본래 향기가 없는 꽃을 피운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대신 이세민이 보낸 모란은 꽃이 향기가 없는 특수품종이라는 말을 강조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 된다. 내친 김에 동아시아 역사를 보건.. 2020. 9. 7.
야유타국阿踰陁國과 황룡국黃龍國, 허황옥을 둘러싼 두 곳의 출자出自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 파트너 허황옥許黃玉을 둘러싼 출자出自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는 유일한 증언이 《삼국유사》 기이편에서 절록切錄한 고려 문종시대 문헌인 《가락국기》가 거론한 아유타국阿踰陀國이 전부였으니, 이는 후대 허왕혹 출신지를 인도로 거론하는 바탕이 된다. 그 근거가 된 대목을 보면 김수로와 첫날을 보내는 날 그 배필이 된 허황옥이 수로한테 하는 다음 말이 그것이니,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 공주로 성은 허許, 이름은 황옥黃玉이라 하며 나이는 16살입니다.[妾是阿踰陁國公主也, 姓許名黄玉, 年二八矣.] 유의할 점은 그가 아유타국을 거론했지, 그것이 인도인지 어딘지는 어디에서도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아유타국을 인도에 있는 나라라고 해석한 것은 후대 역사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아.. 2020. 9. 5.
지도로란? 이젠 설명하느라 입이 아픈데, 나는 그 태고적부터 저 지도로란 이름으로 이곳저곳에서 활동했거니와, 지금도 유튜브 계정 이름은 '지도로 고고야담 JIDORO'S HISTORY STORAGE'이라 할 정도이니, 그런 까닭에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로 대체 지도로는 무슨 개뼉다귀냐 물어오는 분이 더러 있으니 그런 사람들한테 매양 나는 "아 그거? 신라 지증왕 이름인데 짬지 길이가 45센티라 해서 내가 가져다 쓰는 거야" 하면 "에이 무슨 그런 장난을 치느냐" 하기에 나는 다시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고 삼국유사에 나와" 하면 "에잇 설마요?" 하는 반응이 압도하며 많다. 우리 사회가 불신지옥이라 하더니, 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믿지 못한단 말인가?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에는 지철로왕智.. 2020. 9. 5.
접어 포개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신라금동관 6세기 초반에 만들었다 추정하는 신라 적석목곽분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은 발굴 결과 금동관을 접어서 시신 얼굴가리개로 쓴 것으로 드러났다. 저 금동관이 얼굴을 거의 온전히 가린 것은 분명하되 그렇다면 저걸 머리를 아예 다 덮어씌운 것인지 아니면 절반을 포개서 수건처럼 얼굴에 댄 것인지가 궁금해 조사단에 직접 확인한 결과 후자임이 확실하니 그것 관이 접힌 부분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이라 한다. 얼굴 부분만 떼서 보면 이렇다. 앞선 관련 글에서 내가 잠깐 말했듯이 이 전통이 같은 경상도 문화권에서 시대를 좀 거슬러 올라가면 부채를 저런 용도로 쓰기도 함을 본다, 부채로 저런 식으로 시신 얼굴을 가리는데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천년전, 그러니깐 저보단 대략 오백년 정도 빠른 서력기원 전후 이른바 통나무 목관.. 2020. 9. 4.
발명한 김정희와 박제가 《용재수필》 물린 자리 허전함을 메꾸고자 새벽에 뒷다리 잡기 시작한 후지츠카 책 역본이다. 원저 명성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거나와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는 '발명'되었다. 다시 말해 추사는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요 누군가가 필요에 의해 주물한 이미지다. 그 위대한 주물의 용범을 만든 이가 후지츠카요 그가 주물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나는 후지츠카를 제대로 소화한 적이 없다. 저 일본어 원전은 무단 복제본으로 오래전에 구해 놓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지츠카가 더욱 놀라운 점은 박제가 역시 저의 손끝에서 관속에서 튀어나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일본인 후지츠카에게 김정희나 박제가가 종착역은 아니었다. 그가 추구한 바는 청대 고증학의 일본 열도 상륙의 양상이었고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 2020.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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