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문화 이모저모2935 돈 많은 과부에의 로망 모든, 아니 상당히 많은 남자의 꿈은 돈많은 과부다. 이 꿈 같은 얘기의 주인공으로 사마상여司馬相如만한 인물도 없다. 사마司馬가 성씨다. 지금의 사천성 성도 사람인 사마상여는 거문고를 잘 탔다. 중국 역사를 통털어 최대의 부賦 작가인 상여相如는 이 거문고 솜씨 하나로 갓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온 탁문군卓文君을 정신 차리지 못하게 만든다. 탁문군 아버지는 성도成都를 대표하는 떼부자, 재벌이었다. 아무리 과부라도 불알 두 쪽밖에 없는 상여를 탁문군 아비가 사위로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지면 눈이 뒤집어지기 마련이라, 탁문군은 상여와 함께 도망쳐서 성도 시장 바닥에서 가라오케 노래방을 열어 술장사를 한다. 이 소문을 들은 탁문군 아버지. "넌 땡전 한푼 유산 없다" 큰소리 친 그였지만 쪽팔.. 2021. 1. 7. 금은옥金銀玉, 장신구에서 해방해야! 이것이 삼국 중에서도 신라 적석목곽분을 대서특필케 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를 기간 장식품이라는 관점에서 압도적으로 봤다. 나는 그 탈피를 열렬히 주창했다. 그것이 장식품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인가? 약물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자고 나는 제안했다. 금은옥은 최상의 귀금속이기도 하면서 최상의 광물약품이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창했다. 이 문제 의식이 도사린 지점에서 도교가 발생한다. 이것이 내가 신라사를 보는 관점 중 하나였다. 일본 어느 고고학도 혹은 미술사학도 어떤 누구가 운모雲母 하나 갖고 이를 대서특필한 적이 있다. 그것 역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한반도 고대사회를 수놓은 물결 중 그것은 작은 물결 주름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운모만 볼 줄 알았지,.. 2021. 1. 5. 심심해 죽을 지경인 능참봉 능관陵官으로 왕릉을 지키며 지내는 괴로움을 잘 견디는 사람은 없다. 한양 동쪽과 서쪽에 있는 여러 왕릉의 관리들은 밤낮으로 서로 모여서 장기바둑을 두거나 술을 추렴해 마시느라 시끌벅적한 집이 된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떠돈다. “각각의 능관이 새로 임명되어 내려오면 나이의 많고 적음과 색목色目의 같고 다름을 능 입구 나뭇가지 끝에 걸어두고 재실齋室로 들어간다.” 관습과 형세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겪은 두 왕릉의 참봉은 동쪽과 서쪽에 있는 여러 왕릉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달랐다. 게다가 책 상자를 가지고 가 조용하고 운치 있게 지낼 수 있어 온갖 업무가 기한이 정해져 있어 마음이 편치 않은 지방 수령보다 나았다. (심노숭沈魯崇) 지음, 안대회·김보성 외 옮김 《자저실기自著實紀》, 휴머니스트.. 2021. 1. 4. 광산鑛山으로 부富와 권력을 축적한 재벌 《漢書》 권72 공우貢禹 傳에 이르기를 “산을 채굴해서 구리와 철을 캐는데 한 해에 이에 종사하는 이가 10만 명 이상이다[攻山取銅鐵, 一歲十萬人以]”라고 했다. 이런 언급이 조금은 과장이 있겠지만, 공우가 활동하던 저 시대에 광산업으로 거부를 이룩하는 권력 혹은 재벌이 있었음을 증언하거니와, 하긴 그보다 그 직전 무제武帝시대야말로 광산업자들 전성시대였으니, 흉노와의 오랜 전면전에 막대한 전쟁물자가 소요되니, 전쟁은 군비산업을 진흥하며, 그에 따른 신흥재벌성장을 촉진한다. 그런 여진이 공우 시대까지 계속하고 있었음을 본다. 공우貢禹(?~ BC 44)는 전한 중기 때 관료로 字를 소옹少翁이라 하며 낭야군琅琊郡 출신이다. 그의 출생을 기원전 124년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다. 선제宣帝 시절 .. 2021. 1. 3. 아들이 아버지 이름을 돌림하는 남조南詔 당唐 중기에 지금의 운남성 대리大理에 도읍한 남조南詔라는 왕조는 1대 왕이 각라봉閤羅鳳, 그 아들이 봉가이鳳迦異, 봉가이 아들이 이모심異牟尋이다. 제주산 밀감 이름 같은 각라봉이 죽자 다음 왕위는 아들 봉가이가 먼저 죽어 사라지는 바람에 손자 이모심으로 갔다. 합라봉閤羅鳳 봉가이鳳迦異 이모심異牟尋 심합권尋閤勸 권룡성勸龍晟 남조는 작명법이 특이하다. 그네들은 성이 없다. 몽씨蒙氏라 하기는 하는데, 족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은 아버지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왕조가 이를 본땄나? 도대체 누가 당대사를 공부한 거야? (2016. 1. 3) 2021. 1. 3. 태산봉선泰山封禪, 그 예행豫行으로서의 취리산 회맹就利山會盟 2005년 10월, 경기대학교박물관 고고학연구실 이름으로 발간한 《한국고대문화연구》에 게재한 졸고 '당唐 고종高宗 봉선대전封禪大典, 그 예행 의식으로서의 취리산 회맹就利山會盟'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애착이 큰 글이다. 이건 내 기억에 아마도 신라사학회나 어딘가에서 발표한 글을 묵혀두고 있다가, 마침 경기대박물관 쪽에서 당시 경기대박물관장 이근수 교수 회갑 논문집을 준비한다 하면서, 글 한 편 달라 해서 수록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논문집 준비를 주도한 이는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출신 유태용 박사였다. 아마 이 무렵 유 박사는 경기대 교수직을 노렸던 듯하다. 그 일환으로 이 논문집도 준비했다고 안다. 연구업적이 시급한 이들이야 이런 일을 마다하겠지만, 나로선 그에서 자유로우니, 게재 매체와는 관계없이 아무 데.. 2021. 1. 1. 이전 1 ··· 381 382 383 384 385 386 387 ··· 49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