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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1692

갈수록 절실해지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던 어른들 말씀 뭐 솔까 저런 말을 입에 달고 산 보모님 세대부터 실은 100명 중 99분이 기술이랑은 눈꼽만큼도 관계가 없기는 하다. 저런 말 입에 달고 산 분들이 실은 죽어라 농사만 짓는 사람들이다. 저런 구호가 더 난무하던 시대가 박정희 시대였다. 그때를 나는 금오공고 시대라 부르는데, 그것이 대표하는 선형 판형 가공하는 기술공고시대, 그리고 주판을 무기로 앞세운 상고시대 아니었겠는가? 저와 비슷한 시대를 살고는 출세한 사람 중에 목포상고를 나온 DJ가 있고, 부산상고 출신 노무현이 있다. 한데 말이다. 퇴직하고 보니, 그리고 퇴직하고서도 뭔가는 하면서 입에 풀칠을 해야 하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저 말이 갈수록 절실하다. 남들 볼 때는 너는 전문성이 있으니깐...하지만 막상 내실 따져보면 전문성은 하나도 없어 설.. 2024. 10. 9.
그리운 리숙동李叔同 선생님[懷李叔同先生] written by 풍자개豊子愷(1943), translated by 홍승직 (懷李叔同先生) 풍자개(豊子愷)(1943년작)지금으로부터 29년 전, 내가 17살 때, 항주杭州의 절강浙江 성립省立 제일사범학교에서 리숙동李叔同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바로 훗날의 홍일법사弘一法師다. 그때 나는 예과 학생이었고, 리선생님은 우리 음악 교사였다.우리는 리 선생님의 음악 수업을 들을 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엄숙함이었다. 예비종이 울려서, 음악 교실로 걸어가 문을 밀고 들어서던 우리는 우선 깜짝 놀랐다. 리 선생님이 벌써 교단에 단정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선생님들은 늘 우리보다 늦게 온다고 생각하면서, 되는 대로 노래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웃기도 하고, 욕도 하면서 문을 밀고 들어서던 학우들로서는 더욱이 놀라움이 작지 않았다. 학우들의 노래 소리, 외침 소리, 웃는 소리, 욕하.. 2024. 10. 9.
아동 노동, 그 현장 조카딸 아들놈이 어김없이 왕할매 고구마 밭 노동현장으로 출동해 지 할매 엄마랑 열심히 고구마를 캔다. 웃겨 죽겠다. 농사꾼 기질 다분한데 키워봐? 손주들 보는 재미야 재롱 아니겠는가? 오늘도 너 때문에 내가 배꼽잡는다. 2024. 10. 8.
오늘 열 번도 더 들은 말 나이 들어 체중 감량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그래 요즘 이 상황에서 조금만 속이 더부룩하거나 며칠을 먹어대서 배가 불룩하면 참을 수 없을 만치 고통스럽기는 하다만 이왕 빠질 거라면 조금씩 빠졌으면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 둘 무렵 이미 체중은 평소 그에 견주어 5~6킬로그램이 감량한 상태였으니 그에다 근자에는 연이은 요절복통과 다리 부상 사태 여파인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아니라 해도 그만둘 무렵보다 더 빠졌음을 실감한다. 체중이 60킬로그람대로 내려가고선 저울에 올라가지 않는다. 오늘 어떤 자리 갔다가 열 명도 넘는 사람한테도 같은 말을 들었다. 왜 그리 살이 빠졌냐고. 종래 같으면야 그런 말들에 스스로 기뻐했겠지만 요새 저런 말이 미쁘지는 아니한다. 아테나이 가서 좀 찌우고 와야겠다... 2024. 10. 7.
壯途 봉투 언제까지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내가 기자 초년병 시절엔 분명 이런 전통이 언론계에 있었다. 그때야 해외출장이 매우 드물 때라 언론사마다 사정이 다르기도 했겠지만 거개 비슷해서 아무리 초년병 기자라도 출장 가기 전엔 모름지기 편집국장한테 직접 보고를 하면서 다녀오겠습니다 하면 국장이 모름지기 잘 다녀오라며 빼다지를 열어 백 달러짜리 지폐가 된 봉투를 내밀었으니 그 겉봉엔 모름지기 저와 같은 장도壯途라는 글귀가 있었다. 이걸 보면 저 무렵까지 편집국장은 언제나 백달러짜리 지폐를 넣어둔 봉투를 항용 비치하고 있었다. 나한테 저런 봉투를 준 편집국장 대선배로는 이문호 오철호 국장이 기억에 남는다. 같은 발음 같은 뜻임에도 굳이 道자를 쓰지 않고 상대로 드물게 쓰는 途를 쓰는 이유는 오로지 있어보이기 때문이 아니.. 2024. 10. 7.
달맞이가 품은 가을 해돋이 가을이면 어김없는 저 풍경이 나는 좋다. 동산으로 뜬 해가 간밤 이슬 잔뜩 머금은 달맞이꽃 뒤로 스며드는 순간 말이다. 저 경이는 언제나 역광으로 마주해야 제맛이 난다. 이슬은 오래가진 않는다. 다만 하나 이슬 머금은 저 순간만큼은 한바탕 가슴 저 밑을 후벼판다. 살아온 날들에 대한 상념일 수도 있겠고 한탄일 수도 후회일 수도 있으리라. 다만 이때쯤만큼은 그런대로 버틴 나를 위로하고 싶다. 이만큼 견딘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말이다. Bravo my life! 2024.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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