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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616

조선이라는 나라의 꼬라지 우리는 20세기 초 식민지가 되어버린 불행한 경험 때문에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해 면죄부를 너무 쉽게 주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의 근현대사가 제대로 앞뒤라도 맞는 스토리를 갖추려면조선에 대한 평가부터 설득력 있게 하는 게 첫 단추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 이후 해방이후사 60년 이후 역사에 이르기까지역사에 기술된 내용과 실제 벌어진 현실이 죄다,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은처음부터 역사에 쓸 내용을 결론부터 내려놓고팩트를 찾고 뒤져 끼워 맞춰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팩트 기반 역사가 아니라 명분의 역사, 당위성의 역사가 쓰여졌고이를 지키려다 보니 어거지가 난무하고이 논리를 흔드는 그 어떤 논리도 모두 반민족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이르렀다고 본다. 가슴에 손을 얹고 1850년 당시 조선시대 호.. 2025. 12. 21.
답례에 대하여 필자도 이제 나이 60을 바라보니 직장생활을 하면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는아랫사람의 인사에 대한 답례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유심히 보면아랫사람의 인사에 대해 받는 모양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양반들은 인사를 해도 받는둥마는둥 하고, 또 어떤 이는 아주 정중하게 받는다. 문제는 나이차가 겨우 4-5세 정도 나는데도아랫사람 인사를 거의 안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필자는 요즘 마주치면아주 가벼운 목례만 하거나 아예 안하기도 하고 지나친다. 이 정도 나이차는 유교사회에서는 원래 항례가 원칙이다. 나이차가 두 배가 나면 부모의 예로 섬기고, 10살이 차이 나면 형의 예로 섬기되그보다 차이가 적으면 항례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쩌다 보니 일년 단위로 위학년에 대해 아래학년은 꼬박꼬박.. 2025. 12. 18.
현실세계의 士, 이상세계의 士 일본의 사무라이에 해당하는 계층이 바로 한국의 사대부, 선비들이라 할 수 있는데이 두 계급은 서로 간에 닮은 모습이 많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분화되어 성립되는 기원이 비슷해서일 수도 있고, 에도시대 들어오면서 부터는 양국이 유교에 기반한 士族層이 성립하여, 정신적으로도 많이 유사해졌다. 우리는 일본의 할복을 특이하게 보지만, 사실 왕이 선비에게 죽음을 내리는 사약을 보면 그 정신은 결국동아시아 士族 특유의 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에 기인하는 것을 알게 된다. 사족의 최소한의 자존심을 자살을 내리는 것으로 퉁치는 것이다. 이처럼 양국의 사족은 유교적 젠트리라고 할까, 강렬한 사명감과 자존심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지만막상 이 사족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이들을 보면,조선에는 누대 양반 가문, 일본에서는 상급.. 2025. 12. 16.
농어회 쇄미록을 보면 주인공이 민물생선만 잡으면 겨자를 곁들여 회를 쳐서 먹는 바, 생선 구이보다 훨씬 많이 나오는 것이 조선시대 생선 회이다. 이백의 시를 보면, 霜落荊門江樹空, 布帆無恙掛秋風。 此行不為鱸魚鱠, 自愛名山入剡中。 이라 하니, 이백도 평소 즐기던 것이 농어회였다는 것을 알겠다. 아마 당나라 때도 농어를 민물에서 잡아 회를 쳐서 즐겨 먹곤 했던 모양으로민물 생선을 잡으면 회를 쳐서 먹는 것이 비단 조선시대의 일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따지고 보면 소동파의 후적벽부에도거구세린, 농어를 잡아 술안주 삼는 부분이 나오는데이것도 우리가 농어를 잡아 구워먹었으려니 생각해서 그렇지, 후적벽부 어디에도 구이를 해서 먹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후적벽부의 소동파도 회를 쳐서 먹었을지도 모른다. 김득신의 유명한 강상.. 2025. 12. 15.
빚진 것 하나도 없는데 막부를 위해 순사한 히지가타 도시조土方歳三(1835~1869. 5. 11)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앞에서 썼지만 이 사람 행적을 보기로 한다. 이 사람은 요즘 하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사극 등에 자주 나와 폼나는 사무라이로 알려져 있지만출신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원래 집안은 농민 출신으로 그 앞에 형제 아홉이 있었는데 아기 때 죽은 형제를 빼면 여섯 번째였다고 한다. 농민 중에서는 좀 사는 집안이었다고 하는데그래봐야 농민이라 막말에 정치적으로는 출신이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하겠다. 신센구미에 들어가기 전에는 원래 옷집 점원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별 성과 없이 나중에는 약을 팔러 다니기도 했던 모양이다. 나이 스물네살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검술 수련을 시작했는데 그 도장 주인이 나중에 신센구미 국장이 되는 곤도 이사미近藤勇(1834~1868)라 그와 함.. 2025. 12. 13.
제대로 된 사무라이가 없는 신센구미新選組 요즘 일본 애니에는 신센구미新選組가 자주 나오는 바람에젊은 친구들도 신센구미는 다들 아는 것 같다. 신센구미가 막말 칼바람을 일으킨 이들로 워낙 미화가 되는 바람에 이들이 사무라이의 화신처럼 여겨지지만실제로 이들의 출신은 대부분 미천하여 사무라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출신이 많았는데, 한국에도 유명한 몇몇의 면모를 보면-. 近藤勇 곤도 이사미: 신센구미의 국장으로 농민 출신. 土方歳三 히지가타 도시조: 신센구미 부국장으로 농민 집안의 열번째 아들沖田総司 오키타 소지: 1번대 조장. 사무라이 최하층 아시가루 출신 斎藤一 사이토 하지메: 3번대 조장. 낭인 혹은 아시가루 출신. 필자는 이들이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막말의 광풍 속에 그나마 가장 사무라이답게 싸웠다는 말을 .. 2025.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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