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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504

17-19세기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역사는, 17-18세기 근대화의 맹아, 화폐경제,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다가 19세기 들어 삼정문란 등으로 난맥상에 빠지고 구한말 제국주의의 침탈을 입어 자생적인 발전이 분해된 그런 과정이라기 보다, 18세기 후반부터 근대화의 여명이라 할 싹이 보이고19세기 들어 활발한 사회의 변화가 뒤따랐지만,주변국보다 너무 늦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를 능숙히 다룰 만한 역량이 당시 정부가 부족하여 불행히도 식민지에 빠져버린 사례가 될 것이라 본다. 17-18세기에 자본주의가 자라다 19세기에 정체,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고, 17-18세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가 19세기부터 뭔가 변화가 시작된 참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 자라 나온 소위 학계에서 "유학 모칭.. 2025. 9. 4.
조선후기: 어떻게 양반으로 위장하는가 족보는 호적과 상호보완성도 갖지만 어쩔수 없는 한계가 있다. 조상을 현창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후대의 위조와 추숭이 계속 위에 더해져원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보만으로는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 볼수 없으며 호적이 여기에 더해지면 비로소 당시의 정확한 실상을 보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이는 호적 자료에 17세가 말~18세기 초반 직역이 업무나 업유로 기록되었다. 17세기에 직역이 업무라면 어쨌건 말단이라도 양반은 양반 혹은 상급의 중인 직역으로비록 군역은 면제받지만 이 자체는 완전한 양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 주로 하급 양반들, 특히 서자들 자손에게 많이 부여되었다. 조선 후기 정부에서 "양반을 모칭하며 놀고 먹는자들"이라고 하면백프로 이 계층을 말한다. 이 사람.. 2025. 9. 4.
홍길동은 왜 항복하지 않는가 흔히 대동보를 통해 자기 문중을 보는 근대적 시각 때문에 문중의 구성원은 모두 평등하며 한 조상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같은 문중 안에도 많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형성되며이에 따라 후손들 사이에 서로간에 층서를 형성하게 된다. 위로는 문중의 장손으로 사마시 대과 급제자를 대대로 낳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서자도 아니고 얼자라 아예 자손 취급도 못받고 호적에 노비로 숨겨져 있는 자손도 나오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같은 집안이라 해도 위로는 명문 벌열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층서를 형성하며굳이 노비가 아니라 해도 적자와 서자, 장손과 지손간에 구별이 생겨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층층으로 배열된 집단이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 2025. 9. 3.
과거와는 멀어지는 지손들 이처럼 조선 후기에는 장자상속 몰빵으로 지손들은 몇 대만 내려가면 거의 남아나는 게 없었다. 호적을 보면 18세기 후반 되면 직역은 유학 혹은 업무, 업유를 유지하지만 노비 한두 명 데리고 집안을 꾸리는 호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높은 확률로 지손이거나 아니면 서얼금과가 된 집들이다. 이들은 전자의 경우에는 먹고 살기도 빠듯해서, 후자의 경우에는 여전히 남아 있던 금고 때문에 과거 합격과는 점점 멀어졌다. 반면에 종손들은 여전히 사마시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여 유력한 양반 집안으로 남았다. 조선 후기에는과거 급제 출신자가 종손 쪽에 집중되는 현상을 쉽게 간취할 수 있는데 이는 다름 아니라 경제적 넉넉함이 공부할 여유를 낳고 그 여유가 급제 출신자를 낳기 때문이다. 지손들은 점점 과거 출신자가 되기 어려워져 .. 2025. 9. 3.
각 파가 번성하는 조선 전기, 지손은 전멸하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 모든 집안 족보가 다 그러하니 정말 그러한가는 집안에 대동보가 있으신 분들은 펴보시기 바란다. 조선전기에 대개 각 집안마다 파조가 각 파를 나누게 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파는 종손 지손을 크게 차이 두지 않고 각각 번성하게 된다. 그런데 조선 후기가 되면, 지손이 성공할 확률이 매우 낮아진다. 애초에 재산을 상속할 때 장자에게 거의 몰아주기 때문에 지손은 꼭 서얼이 아니라도 받아가는 재산이 보잘 것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후기가 되면 지손쪽에서는 대단한 벼슬도 없고, 재산도 시원치 않아진다. 쉽게 말해 조선전기에 볼 수 있던 각 파조가 파를 나누어 번성하는 사건은조선후기가 되면 불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사실 대동보에서 자기 집안은 어디쯤 위치해 있는가만 봐도 어느 정도의 집안으로 조선후기.. 2025. 9. 3.
지손支孫은 번성할 수 없는 조선후기 조선후기가 되면 장자 상속이 강화의 길을 걸어 장남에게 거의 몰빵하다시피 하게 된다. 집안 족보를 보면, 조선 전기에 갈려 나온 각 파들은 저마다 번성하지만, 조선 후기가 되면 종손에 가까울수록 사는 것이 낫고지손에 지손으로 이어지면 몇 대가 못내려가 몰락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19세기가 되면지손으로 이어지는 집안들은 그 집안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알려진 집안이라도 양반이라고 부르기 미안 할 정도의 살림에 직역만 간신히 유학이라고 유지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한다. 요는, 조선후기에는 장자 상속이 강화하므로, 향촌에서 재산을 어느 정도 가지고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장손에 되도록 가까울수록 유리했다는 것이다. 굳이 서얼이 아니라 해도 지손으로 몇 대만 내려가면조만간 쪽박찰 것이 예약되어 있었다고 보면..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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