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2049

17-19세기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나라 조선 후기의 역사는, 17-18세기 근대화의 맹아, 화폐경제,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다가 19세기 들어 삼정문란 등으로 난맥상에 빠지고 구한말 제국주의의 침탈을 입어 자생적인 발전이 분해된 그런 과정이라기 보다, 18세기 후반부터 근대화의 여명이라 할 싹이 보이고19세기 들어 활발한 사회의 변화가 뒤따랐지만,주변국보다 너무 늦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이 변화를 능숙히 다룰 만한 역량이 당시 정부가 부족하여 불행히도 식민지에 빠져버린 사례가 될 것이라 본다. 17-18세기에 자본주의가 자라다 19세기에 정체, 혼란에 빠진 것이 아니고, 17-18세기에는 그런 것이 없다가 19세기부터 뭔가 변화가 시작된 참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은 18세기 이후부터 자라 나온 소위 학계에서 "유학 모칭.. 2025. 9. 4.
조선후기: 어떻게 양반으로 위장하는가 족보는 호적과 상호보완성도 갖지만 어쩔수 없는 한계가 있다. 조상을 현창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후대의 위조와 추숭이 계속 위에 더해져원래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족보만으로는 과거를 제대로 들여다 볼수 없으며 호적이 여기에 더해지면 비로소 당시의 정확한 실상을 보게 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어떤 이는 호적 자료에 17세가 말~18세기 초반 직역이 업무나 업유로 기록되었다. 17세기에 직역이 업무라면 어쨌건 말단이라도 양반은 양반 혹은 상급의 중인 직역으로비록 군역은 면제받지만 이 자체는 완전한 양반이라고는 할 수 없어 주로 하급 양반들, 특히 서자들 자손에게 많이 부여되었다. 조선 후기 정부에서 "양반을 모칭하며 놀고 먹는자들"이라고 하면백프로 이 계층을 말한다. 이 사람.. 2025. 9. 4.
직립보행을 가능케 한 인간의 골반 진화 비밀을 마침내 풀다 해답은 장골ilium에 있었다! 새로운 연구는 골반pelvis에서 가장 큰 뼈인 장골ilium의 발달과 그 형성을 뒷받침하는 유전자를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두 발로의 직립보행walking upright은 인간을 다른 영장류primates와 구별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다.이제 과학자들은 두 발 보행bipedalism으로의 전환을 뒷받침하는 발생학적, 유전적 미스터리들을 풀기 시작했다.네이처Nature지 최신호에 발표된 새로운 연구에서 연구진은 인간의 골반pelvis을 변형시키고 독특한 보행 방식을 위한 길을 닦은 두 가지 진화적 변화를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골반에서 가장 큰 뼈인 장골ilium에 초점을 맞췄다.인간은 척추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 총 두 개 장골이 있으며, 이 두 뼈가 .. 2025. 9. 4.
슬라브족 이주는 유럽을 어떻게 바꿨을까 by 막스 플랑크 학회 Max Planck Society 슬라브족Slavs 확산은 유럽 역사에서 가장 형성적이면서도 가장 잘 이해되지 않은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다.서기 6세기부터 슬라브족은 비잔틴과 서구 문헌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해 발트해에서 발칸반도, 엘베 강에서 볼가 강에 이르는 지역에 정착했다.그러나 고트족Goths이나 랑고바르드족Langobards과 같은 게르만족의 유명한 이주나 훈족Huns의 전설적인 정복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슬라브족 이야기는 오랫동안 유럽 중세 역사가들에게 난제로 남아 있었다. 이는 부분적으로 초기 슬라브 공동체가 고고학자들이 발견할 만한 유물을 거의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은 화장을 하고, 소박한 집을 짓고, 장식이 없는 소박한 도기를 제작했다.아마도 가장 중요.. 2025. 9. 4.
일본을 사랑했다는 한국 연구자라는 말은 없다 일본인들 논문에일본을 사랑했다는 한국연구자라는 말과 함께 소개되는 것 봤는가. 왜 없을까. 이런 말을 하는 쪽이 약자라서 그렇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구질구질하게 하지 말고 오직 팩트만 보자. 아닌 것 우길 필요도 없고, 또 맞는 것을 내줄 필요도 없고, 오직 팩트로 싸울 것은 싸우고인정할 것은 인정하면 되는 그런 시대가 왔다고 본다. 조선을 사랑했다는 일본 연구자 조선을 사랑했다는 일본 연구자일제시대 조선사를 연구한 연구자들에 대한 설명에서 이 사람은 실제로 조선을 사랑했다던가 이런 글을 본다. 이런 이야기는 사석에서 술을 먹으며 할 수 있을지는 모르곘는데그 사람이 조선을historylibrary.net 2025. 9. 4.
팔레트는 유다 왕국에서 어떻게 왕실 상징이 되었나 by 샌디 오스터Sandee Oster, Phys.org 렐리 아비사르Reli Avisar가 레반트 저널Levant journal에 발표한 연구는 팔메트palmette라는 상징과 그 의미가 지역의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핀다. 이 연구는 일반적으로 중앙 줄기와 길게 뻗은 잎을 지닌 나무(대추야자date palm)로 묘사되는 팔메트가 엘리트 계층 상징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팔메트는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에 레반트 전역에서 인기 있는 장식 모티프로, 주로 귀족들 유물에 등장했습니다. 유다에서는 기원전 9세기 후반이나 8세기 초반에 제작된 몇 가지 사례만 남아 있는데, 봉인 두 개와 청동 추 하나가 그 예입니다.이러한 유물들은 개인 소유물이어서 당시 팔메트는 주로 지역 귀족들.. 2025. 9. 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