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5268

사천 선진리성을 가다(2) 여름철새 후투티가 뛰어노는 400성상 일본 성은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한 공간이라기보다 적을 끌어들여 싸우기 위한 시설이라 봐야 맞는다. 성문부터가 복잡하다. 우리나라 성도 옹성이나 치 같은 걸 설치해 놓기는 하지만, 왜성처럼 이리저리 동선을 꺾어서 사람을 궁지로 몰지는 못한다. 발굴조사로 확인해 복원한 이 선진리성 성문이 딱 그렇다. 벽을 세워 한 번 두 번 길을 꺾고 그 앞에 총구멍을 떡하니 둔다. 어찌어찌 문을 통과한다 해도 나오는 건 핵심 시설이 아니라 뒤쪽 성벽이다. 지키는 입장에선 좁은 공간을 지킬 병력만 있으면 되지만 치는 쪽이라면? 골치깨나 아팠을 것이다. 사실 여기는 2010년대 발굴을 거치고 성벽 상당수를 새로 쌓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뭔가 압력을 이기지 못해 깨진 돌들이 성벽 곳곳에 보인다. 하지만 돌 색깔이 묘.. 2023. 12. 24.
절차탁마한 두보, 나오는 대로 지껄인 이백 정확한 인용인지는 자신이 없다. 두보는 시를 쓰려면 만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실제 그의 작품을 보면 이런 절차탁마의 온축이 그대로 드러난다. 내 보건대 두보는 시를 짖고도 그 이후에 끊임없이 수정했다. 그 옛날 지식인들이 이른바 전고를 동원하는 원천은 기억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기억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언제건 오류의 위험성에 노출한다. 이런 위험성을 내 보기엔 두보는 사후 검열로 바로잡았다. 이를 검서檢書라 하는데, 두보 시에 이 말이 보인다. 이는 뱉으면 그대로 시가 되었다는 이백과 뚜렷이 대비한다. 두 사람 시를 비교하면 두보시가 어렵고 이백시가 편한 까닭은 이에서 말미암는다. (2013. 12. 23) *** 당(唐)나라 두보(杜甫)의 시 〈봉증위좌승장 이십이운(奉贈韋左丞丈二十二韻).. 2023. 12. 24.
부고 기사 검색으로 걸린 50년 전 지갑 주인 美극장서 잃어버린 지갑, 65년만에 원형 그대로 가족 품에 송고시간 2023-12-24 13:26 분실한 여성은 18년 전 별세…딸 "엄마가 살아돌아온 느낌" 감격 美극장서 잃어버린 지갑, 65년만에 원형 그대로 가족 품에 | 연합뉴스(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미국에서 한 여성이 1950년대에 잃어버린 지갑이 65년 만에 원형 그대로 발견돼 후손들에게 돌아갔다.www.yna.co.kr 이 기사에서 주목할 대목은 반세기 전에 극장에서 잃어버린 지갑 주인을 찾게 된 증거 포착이다. 경찰이나 국세청 같은 공공기관이었다면 찾는 과정이 비교적 간단했겠지만, 일반이 그것을 추적하는 과정은 결국 인터넷 검색이었고, 그 검색에서 마침 걸린 이름이 드러난 데가 부고기사였다. 지역 언론이 발달한 구미에서는 부고 기.. 2023. 12. 24.
한반도에도 진령회하선이 연장되어 있었다 중국사에 있고 지금도 있다는 진령회하선. 한반도에도 있었다고 본다. 빨간색이 지금의 진령 회하선이다. 이 선을 동쪽으로 확장시켜 보면 거기가 도작과 잡곡의 경계였으리라 본다. 한반도에 진령 회하선을 설정할 수 있을까? 2023. 12. 24.
사천 선진리성을 가다(1) 벚나무의 유래 뜻하지 않게 대구와 경남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무릇 기브가 있으면 테이크가 있어야 하는 법, 유적 다녀오고 글감이라도 얻어야 그나마 수지가 맞는다(물론 본전 생각 난다). 그러니 어쩌랴? 돈 좀 쓰더라도 다녀오는 수밖에. 마침 사천에 간다면 한 번 가 보고 싶던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사천 선진리 왜성 -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다. 원래 여기엔 고려시대 이래 경상도 일대 세곡을 보관하는 조창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아래엔 조창을 지키기 위해 쌓았던 토성 흔적이 남아있다. 그러다 1592년(선조 25) 4월, 임진년 난리에 일본군 손에 떨어지면서 이 자리의 운명이 바뀐 것이다. 이 선진리 왜성에서는 두 차례 큰 전투가 있었다. 그 하나는 1592년 성 앞.. 2023. 12. 24.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고고학에 매몰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유일한 예외 계속 지적하듯이 국립문화재연구원 산하 국립지방문화재연구소들은 국민 어느 누구도 고고학 발굴만 하라 한 적이 없음에도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고고학 발굴밖에 없어 국립문화재연구원 분소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거부하고 있거니와 이는 얼토당토 않은 일이지만,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지적한 적이 없으니, 이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인가 하면 아래 국립문화재연구원 조직을 보자. 행정운영과와 연구기획과는 서포팅 부서라 논외로 치고, 연구원이 수행하는 구체 역할을 고고연구실과 미술문화재연구실, 건축문화재연구실, 보존과학연구실, 복원기술연구실, 자연문화재연구실, 안전방재연구실, 그리고 디지털문화재연구정보팀이 되겠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지방연구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지역색에 맞는 저러한 .. 2023. 12. 2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