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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땅이 있었으면 달라졌을까 If 라는 말은 역사에서는 별 소용없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만주땅이 한국사에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필자가 보기엔 만주땅은 한국사의 경로를 바꾸는데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라 본다. 만주땅이 한국인에게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이 지역이 농경지로 바뀌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그 후에 비로소 만주땅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고려와 조선이 북진정책을 한데도 그건 어디까지나 농사가 제대로 되는 선까지 북진을 말하는 것이지, 시베리아 벌판 바로 아래까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에서 if가 통한다면, 이것이 있었다면 한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은, 한반도의 남쪽이 일본의 큐슈 남부 지역, 중국의 양자강 북.. 2023. 11. 20.
trastevere : b와 v의 호환 Trastevere · 로마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www.google.com 일전에 나는 저 두 발음이 지금은 엄격히 구분되지만 인도유러피안 언어들을 비교하면 실제는 딴판이라 호환이 빈번했다고 한 적 있다. Trastevere는 이탈리아 수도 로마 행정구역 하나다. 수도를 리오네 rione라는 행정구역으로 세분하거니와, 개중 13번째라 해서 R. XIII라 약칭한다. 이 말은 라인어 trans Tiberim에서 비롯한다. 글자 그대로는 'beyond the Tiber', 티베르 강 너머라는 뜻이다. 구체로는 지금의 로마는 북쪽에서 흘러내린 Tiber강이 로마 북쪽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다 다시 남쪽으로 직진해 시내를 관통한다. 뜨라스떼베레는 티베르 강이 관통하는 서쪽 건너편을 일컫는다. 지금의 베네치아.. 2023. 11. 20.
모던뽀이 modern boy에 대한 소리옮김이 식민지시대 문건을 보면 거의 예외없이 모던 뽀이다. bus 역시 뻐스가 많았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아마도 외래어 표기법이 생기면서가 아닐까 하는데 예외없이 모던보이 버스가 되었다. 어쩌면 종래의 한국어 표기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유별난 표기를 통해 이것이 외래어임을 증명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한국어 ㅂ과 ㅍ은 입술소리다. 그에 해당하는 영어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b와 p 역시 입술터짐 소리다. 이외에도 ㅃ이 이에 속한다. 영어에서는 f와 v가 순음 계통에 속하나, 이것은 한국어에는 없다. 한데 이건 음성기호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편의상 가깝게 들리는 음을 근사치로 대응한데 지나지 않는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은 ㅂ과 ㅍ을 확실히 구분한다.. 2023. 11. 20.
처음 찍은 게 맞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호가 어느 날 창고에 앉아 있었는데, 심심풀이로 뒤채 행랑의 기둥 수를 세어 두었다. 그런데 다시 세어보니 맞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불러다 소리내가며 세게 했더니 처음 센 게 맞았다. 이에 정호는 '집착할수록 안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험 칠 때 처음 찍은 게 맞는다는 것을 900여년 전에 알아차리신 위대한 명도 선생이시여. #시험 #겐또 #찍기 2023. 11. 20.
[슬렁슬렁 자발 백수 유람기] (51) 라틴어권의 영어 같은 유럽이라 해도 영어 친숙도가 문화권별로 극도로 갈리는데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이른바 라틴어권은 거의 깡통수준이라 한국 일본사회의 그것과 비슷하다 보아 대과가 없다. 물론 외국 관광객 내방이 많은 지점 종사자들이야 사정이 다르지만 이 범위만 벗어나면 깡통이라 보면 된다. 반면 독일이나 북구권은 초동급부까지 영어가 졸라 유창하다. 언뜻 네이티브 영어 스피커가 아닌가 할 정도다. 왜 이런 대비가 일어날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뿌리 문제로 귀착하는데 영어는 실은 독일어라는 사실이 곧잘 망각되곤 한다. 영어는 독일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반면 라틴어는 저와는 계통이 완전히 다르다. 견주건대 영어와 독일어는 한국어와 일본어 관계인 반면 영어와 라틴어는 한국어와 중국어만큼이나 이질적이다. 한데 신기한 건 의사소통. .. 2023. 11. 20.
사군육진 개척을 둘러싼 의문 사군육진은 위도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사군 육진은 홋카이도 남부지역과 위도가 같다. 세종 때 이 지역에 사민이 이루어진 것은 여러모로 의문스러운 점이 많다. 우선 도대체 뭘 먹고 살았을까? 일본사에서도 15세기에는 저 위도까지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특히 두만강 연안의 사민정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유지되었는지, 도대체 뭘 먹고 살았는지 밝혀진 것이 너무 없다. 거듭 이야기 했지만 북방 사민은 그냥 올라가서 지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일본사에서 북해도까지 올라가 개척을 한 시대는 메이지유신 이후에야 본격화하는데 이 당시 북해도에 심을 적당한 종자가 없어 개척농민들은 크게 고생을 했다. 일본 동북지역은 19세기 초중반까지도 만성적인 흉년에 시달렸는데 결국 그 이유는 벼농사가 안정적이지.. 2023.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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