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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작사회로만 보아온 한국사 현대 한국사 (고고학 포함)의 연구는 일본학계의 영향이 매우 짙다. 필자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니 식민사관 운운하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라, 일본은 농경이 도입 된 초기, 잡곡에 기반한 농경사회가 없었다. 한국사는 다르다. 대략 청천강-원산만 이남은 도작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이북의 부여, 고구려, 옥저 등은 완연한 잡곡기반의 농경사회였던 듯 하다. 한국사회가 농경사회의 발전을 단순히 도작사회의 입장에서만 살피는 것은 일본 학계의 시각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 측에서 자국 농경사회의 원류로 도작사회론을 짜고 그 시각에 따라 한국상고사를 보기 때문에 한국사 전체를 우리는 마찬가지로 도작사회의 시각에서 보고 있지만 실제로 한국상고사의 북쪽 절반은 엄연한 잡곡기반의 농경사회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 2023. 12. 24.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spinoff] (1)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시, 그리고 두 개의 city wall 앞선 이야기에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어디를 터 잡고 도시를 만드느냐 하는 문제로 결국 존속살인 사건으로 발전했다는 말을 하면서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을, 동생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했으니, 이는 결국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비단 로마만이 아니라 언덕 hill은 인간 생활조건, 특히 도시 발달에서 매우 긴요한데, 내가 늘 말하듯이 사람의 일상 거주공간이 평야지대로 내려온 것은 근대 이후다. 무엇보다 평야지대는 충적지라,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하는 지역인 까닭에 치수治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이 일상으로 거주할 곳이 못 되는 저주받은 땅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으로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무한정 높은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 적당한 높이로 올라가야 한다.. 2023. 12. 24.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2) 동생을 살해하고 왕이 된 쌍둥이형 로마 신화에서 로물루스 Romulus 와 레무스 Remus 는 쌍둥이 형제다. 그에 의하면 형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는 로마시와 로마 왕국을 건국한다. 이 건국신화를 그대로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은 기원전 753년 무렵 로마가 건국되기 전에 성립이 되어 있어야 하지만, 신화는 신화일 뿐. 다만, 이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후반 기록에는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확실히 신화로 자리잡은 것만은 확실하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 근처 고대 라틴 도시 중 하나인 알바롱가 Alba Longa 라는 데서 태어난다. 그들의 어머니 레아 실비아 Rhea Silvia는 베스타 신녀 Vestal Virgin다. 아버지는 누미토르 Numitor라는 왕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 아물리우스 Amul.. 2023. 12. 24.
싹 튀운 씨감자 모습으로 나타난 last christmas 남은 멤버 https://www.youtube.com/watch?v=E8gmARGvPlI 이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메리 크리스마스 이미지랑은 그닥 어울린다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크리스마스 때 내가 널 위해 모든 걸 주었는데, 그 담날 너는 쌩까고 딴놈한테 가버렸다? 뭐 이런 식 아닌가 싶은데 이것이 어찌 크리스마스에는 이러해야 한다는 통념을 거부하는 까닭이다. 물론 한국 명절로도 자리잡은 성탄절이 사랑을 이루는 시점이기도 하나, 저처럼 이별을 통보하거나 결심하는 순간이 되기도 하니, 찢어짐이 있어야 만남도 있지 않겠는가? 왬 '라스트 크리스마스'도 역주행…39년 만에 영국 차트 1위 송고시간 2023-12-23 16:11 멤버 리즐리 "오랜 한이었는데…임무 완료, 최고의 영광" 왬 '라스트 크리스.. 2023. 12. 24.
고구려인이 쌀밥을 먹었는지도 해명이 안된 지금 고구려인과 부여인이 쌀밥을 먹었을까 잡곡을 먹었을까 잡곡을 먹었다면 무슨 곡식을 먹었을까 이것을 해명하는 것이 고구려가 전성기에 어디까지 진출했느니, 고구려 철기군이 몇 만이라느니 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물론 밝혀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료가 많지 않을 테니. 하지만 최소한 이 문제를 계속 묻고 찾고, 답하고자 하는 노력은 해야 한다. 신라가 통일 후 대동강 원산만 선 이북으로 올라가지 않은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이북지역과 이남지역의 밥상의 차이. 여기에서 왔다고 본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에 있으랴. *** Editor's Note *** 신 교수께서 제기한 의문의 일단은 호로고루성 같은 데서 고구려가 소비한 잡곡들 고고학적 실물이 있으니 이런 걸로 우선 접근하는 것도 방법이다. 2023. 12. 24.
잡곡 농경의 구조 전술한 바와 같이 한국사에서 부여와 고구려는 잡곡농경에 기반하고 있다. 삼한과 고조선-낙랑으로 상징되는 도작 농경권과는 사회의 경제적 기반 자체가 달랐다는 이야기이다. 부여와 고구려 문명의 지역에는 무논은 없었을 것이다. 온통 밭이었을 텐데 여기에는 무슨 곡식을 심고 있었을까? 삼국지에는 부여의 경우 오곡에 걸맞다고 되어 있는데 같은 삼국지 한전에 오곡과 쌀을 따로 기술해 놓은 것을 보면 이 오곡은 잡곡이다. 삼국지의 오곡은 어떤 곡식일까? 일단 수수, 기장, 콩, 보리는 확실히 들어가지 않을까 싶다. 좁쌀은 의외로 선진문헌의 오곡에 안나오는데, 이 부분은 고찰이 필요하다.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 其土地肥美, 背山向海, 宜五穀, 善田種. (삼국..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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