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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의 길, 기자의 길, 센 놈들만 골라 조졌다 전업적 연구자로 통칭하는 사람들한테서도 언론 혹은 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이라 이 복잡미묘한 길항 관계는 저런 업계서는 누구나 경험한다.나는 현역 기자 시절 그 최전선에 서며 매일매일 실은 그들과 협력하며 또 사투했다.맡은 분야가 하필 학술이라 학술이란 무엇인가?글자 그대로는 학계 동향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동향에는 모름지기 그네가 논문 형태로 쏟아내는 연구성과가 절대하는 비중을 차지한다.물론 항하사 모래 같은 저 광대무변하는 모든 학술을 어찌 혼자 감당한단 말인가?내가 말하는 저 학술은 보통 인문사회과학이라 보면 대과과 없고 자연과학 분야로 넘어가면 그쪽 담당 혹은 전문기자 몫이다.그렇다면 복잡미묘한 관계는 왜 발생하는가?첫째 관점은 차이가 있어 중요하다 보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둘째 이 취사 선택 과정에.. 2026. 6. 10.
마차 타고 독일 헤센 주를 튀어나온 2,400년 전 켈트 엘리트 유럽 고고학, 특히 켈트 고고학을 보면 잊을 만하면 Princely Grave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언론지상을 장식하는데, 솔까 그 무덤 주인공이 진짜로 왕자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켈트가 무슨 통일된 정치 중심체를 이룬 것도 아닌데도 저런 표현을 자주 써서 독자를 현혹한다. 그 맥락은 아티클 본문에 있다. 암튼 이번에는 독일에서 그런 켈트 왕자 혹은 왕족 무덤이 발굴됐단다. Hessenschau 보도에 따르면, 독일 헤센Hesse 주 고고학자들이 타우누스 산맥Taunus Mountains에서 켈트족 "왕족 무덤princely grave"을 발굴했다고.바트 캄베르크Bad Camberg 인근에서 발견된 이 무덤은 이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중요한 철기 시대 유적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이 무덤은 켈트족 매장지.. 2026. 6. 10.
그 자체가 한국문화재사,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회고록 출간 용안 뵌지 오래라 요새도 김흥국처럼 콧수염 질구고 댕기시는지 모르겠다.영감님 각중에 카톡 주시어 대뜸 주소를 여쭙는데 책 나왔구나 싶었거니와 보통 이런 때는 어느 출판사냐 여쭙고 구입해서 읽어보겠다 하겠지만 노년에 이른 영감님 틀림없이 붓글씨로 적어 보내시고 싶어할 듯해서 주소를 적어드렸더니 방금 남영동으로 입고한다.보니 회고록이라 1943년생, 올해로 만 여든셋이시라 더는 늦추면 안 될 듯 하셔서 힘을 내신 모양이다.저 연배 이젠 워낙 고령이시라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또 쓰러지기도 하는 소식이 들려오니 안타깝기만 하거니와그래도 강녕하신듯 이런 회고록까지 내어주시니 지금보단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회고록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본다.목차와 관심 있을 만한 몇 대목 훑어보니 크게 두 부로 나누어 전반부.. 2026. 6. 9.
진흥왕의 순수巡狩를 벤또 투어로 생각하는 놈들이 봐야 할 정조의 화성 행차 뭐 그렇다고 하면 우리가 언제 그랬냐 바락바락 아니라 우길 놈 천지리라아니긴 무슨 개뿔?진흥왕 순수 관련 논문들 읽어봐! 단 한 놈도 그 규모를 논한 놈 있는지?한 놈도 없어.그러고선 매양 하는 말이 이때 왕을 수행한 인물, 곧 수가 명단이 어떻고저떻고 하는 헛소리밖에 없다.그 수가 명단, 20명밖에 되지 않아!그래 순수비는 아니지만 이른바 창녕 척경비 봐바. 거기 등장하는 왕을 따라간 관료도 50명도 되지 않을 걸?그래서 진짜로 20명, 혹은 50명 안팎으로 쫄래쫄래 벤또 싸들고 소풍 갔냐고?벤또 여행이랑 순수巡狩를 왜 차별해야 하는가?문제의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달라지면 논문 수준이 달라진다. 벤또 명단 두고서 거칠부가 어떻네 김유신 할아버지가 어떻네 이딴 소리는 개돼지나 하는 말이다. .. 2026. 6. 9.
[삼국국경] 동해안 주인은 고구려가 아닌 말갈로 반환해야! 흔히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직후 장수왕 시대 삼국강역도를 저리 묘사하거니와 그래 딴 문제 다 차치하고 동해안 문제를 집중하기로 한다.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했는가?다시 말하지만 고구려는 동해안으로 나가지 않았다. 한 적이 없다. 이걸 한 놈도 의심조차 않는다. 모르겠다 이 문제 역시 내가 하도 지껄여댔으니 근자엔 누군가 다루었는지도.저 동해 문제가 논급되는 때가 내 기억에 딱 한 번인가 동천왕 시대인가에 있다. 관구검이 침략하자 수도를 버리고 열라 도망한 동천왕이 동해까지인가로 갔다는 기록이 있을 것이다. 기타 고구려와 동해안 접선을 증언하는 다른 간접 기록이 있으니 태조왕에 의한 책성 순수가 그것이다. 이 책성이 정확히 어디쯤인지 논란이 많다고 알며, 그런 가운데서도 아마도 두만강 하류 어느 쪽을.. 2026. 6. 9.
[삼국강역] 남한강에서 쫓겨난 고구려, 보복을 다짐한 온달 아주 간단히 5-6세기 중반 무렵 삼국간 국경선과 충돌 지점이다.물론 저 기간 백제와 신라 사이에 다툼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반으로 보아 갈등 국면은 매우 적다.빨간 x가 백제 고구려가 쌈박질하는 구간이고 파란x가 신라 고구려가 충돌하는 전투라인이다.신라 고구려는 남북 국경선에선 붙은 적이 없다. 태백산맥이 있기 때문이다.집중적으로 충돌하는 구간 중 하나가 지금의 강릉 삼척 일대 신라 영토다.나는 계속 고구려는 동해안을 진출한 적이 없다 하는데 이건 명백하다.저 동해안 북쪽을 침략할 때 고구려는 언제나 말갈을 의지한다.왜 말갈인가?동해안 본래 주인이고 고구려 시대에도 고구려에 신속하기는 했으나 완전 복속도 아니며무엇보다 저 동해안 땅이 본래는 말갈 영역이었기 때문이다.말갈은 신라에 이를 갈았다.야금야금 지.. 2026.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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