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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치석 분석을 통해 밝혀낸 일본 구강 미생물 군집의 지역적·역사적 변화 by 도호 대학교Toho University 일본 연구진이 인체 유골 치석dental calculus에 보존된 DNA를 분석해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oral microbiomes 군집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구명했다.주로 에도 시대 사람들 치석과 현대인 치석에서 추출한 치석의 미생물 구성을 비교 분석한 결과 시대, 지역, 그리고 여러 구강 세균 종의 계통 발생과 관련된 차이점을 발견했다.이번 연구 결과는 치석이 인류 역사와 인간과 미생물 간 관계를 연구하는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음을 시사한다.본 연구는 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되었다.도호대학교, 도쿄대학교, 규슈대학교 및 공동 연구기관 연구진은 에도 시대(1603~1868) 일본인의 구강 미생물군을 인골에서 추출한 치석에 보.. 2026. 6. 9.
만만치 않은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 - CODA 앞에서 조선시대 족보와 호적이 만만치 않다는 이야기를 쓴 바,이 시대 족보와 호적이 개판 오분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워낙에 19세기 삼정 문란에 엉망이라는 이야기를 교과서에서 반복적 주입을 한 데다, 족보도 날조에 사기로 가득찬 믿을 수 없는 문건이라는 선입견 때문인데, 사실 이 시대 호적과 족보는 거짓이 많은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그 거짓이 방만함과 게으름의 산물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족보와 호적은 정보를 수단收單하면, 그냥 싣거나 임의로 맘대로 고치거나 빼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이전 식년式年의 자료나 족보라면 이전 족보와 대조를 해서 그때와 비교하여 달라진 점을 확실 편찬자가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족보와 호적에 엉터리가 들어가더라도 방만함과 안일함.. 2026. 6. 8.
[삼국강역] 분열한 기성학단의 서기 500년 무렵 지도 이것이 일반은 물론이요, 학계에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다. 475년 고구려-백제 전쟁 이후 550년대 신라에 의한 한강유역 점령까지 대강 저랬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아서 요새는 서서히 백제가 한강유역을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반론에 의한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는 얼추 아래와 같이 된다. 저 부분, 곧 한강 하류 유역이 관건이 된다. 암튼 저런 강역이 550년대 진흥왕 시대를 맞은 신라 팽창 정책에 따라 아래와 같이 변했다고 한다. 간평한다. 저 세 지도 중 지도1 기성 학단이 주장하는 서기 500년 무렵 강역도는 어림반푼어치도 없다. 그렇다 해서 지도2 백제의 한강 유역 상실설을 부정하는 기성 강단의 주장에 따른 서기 500년 무렵 삼국 강역도. 특히 백제.. 2026. 6. 8.
스페인 해안서 무더기로 발견된 투구가 로마 유물? 헛소리였다 알리칸테Alicante 대학교 제공30년 넘게 이 투구는 로마 시대 유물로 간주됐다.하지만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이 투구들은 중세 후기 지중해의 상업 및 군사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증거 자료임이 밝혀졌다.알리칸테 대학교(UA)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스페인 해역에서 발견된 가장 주목할 만한 무기 유물 중 하나인 43개의 투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이 투구들은 1990년 베니칼로Benicarló 해안 피에드라스 데 라 바르바다Piedras de la Barbada 수중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되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발행하는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알리칸테 대학교와 살레르노 대학교University of Salerno 공동 지도를 받는 박사 과정 학생 마누엘 프랄리치아르.. 2026. 6. 8.
완전히 끌어엎고 새로 짠 삼국 강역도 물론 아주 정확하게 그릴 수는 없다. 대강이라고만 해 둔다. 이것이 무엇인가?서기 500년 무렵 신라 고구려 백제 삼국 간 국경 영역이다. 내가 볼 적엔 지금 우리한테 통용하는 삼국강역도는 다 틀렸다. 내가 제시한 저 얼추하는 삼국강역도야말로 이를 두고 전개하는 모든 논쟁을 한 방에 끝장내며무엇보다 삼국사기가 말하는 삼국 강역[더욱 정확히는 그것을 분탕질하는 역사학도들 문제겠지만] 을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든다. 지금 생각하는 저 무렵 삼국강역도는 저 곡선을 전연 고려하지 못했다. 삼팔선 혹은 휴전선에 가까운 직선 코스로 생각했다. 간단히 말하면 475년 전쟁 이후에도 백제는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상실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신라는 아주 일찌감치 동해안 일대는 다 먹어 버린 상태였으며, 고구려는 백.. 2026. 6. 8.
모칭 유학은 어떻게 호적과 족보를 고쳤는가 흔히 조선시대에는 족보를 돈 주고 샀다던가, 남의 족보에 이름이 끼어 들어갔다던가 하고 이야기들 하지만, 족보에 대해 조금만 살펴 보면 이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잘 알다시피 족보와 호적은 한 몸으로 표리를 이룬다. 족보는 호적을, 호적은 족보를 서로 지지하는 형국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바꾼다고 졸지에 그 동네에서 양반 행세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알다시피 조선시대에는 3년에 한 번 호적을 만들었는데, 당사자가 호적 단자를 올리면 관에서 이를 받아 3년 전 호적과 대조하여 확인하고, 새로 만든 호적을 3부 만들어 하나는 그 동네 관에서 보관하고, 한부는 관찰사, 한부는 중앙정부에서 각각 보관하였다. 따라서 양반 족보 하나 산다고 내가 양반이 될 수 있는 것.. 2026.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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