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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지름 140미터, 담장 둘레 500미터에 달하는 마케도니아 최대 무덤 복원 공개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이후 처음으로 암피폴리스Amphipolis 소재 카스타 무덤Kasta Tomb 전체 모습이 드러나면서 고대 마케도니아에서 발견된 가장 큰 규모의 매장 유적 중 하나를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이 거대한 무덤에서 복원 작업을 진행 중인 팀은 무덤을 둘러싼 대리석 울타리 전체를 드러내면서 연구자들이 유적의 규모와 알렉산더 대왕 사후 그 역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리나 멘도니Lina Mendoni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최근 복원 프로젝트의 최신 단계를 점검하기 위해 유적지를 방문했다.고고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이제 497미터에 달하는 봉분을 둘러싼 대리석 담장(페리볼로스peribolos)을 완전히 발굴했다.이 담장은 20에이커가 넘는 면적을 둘러싸고 .. 2026. 5. 13.
6살 꼬맹이가 학교 소풍 갔다가 1,300년 된 칼 발견 노르웨이에서 평범한 학교 소풍이 고고학적 발견으로 바뀌었다.6살 소년이 갈린 밭에서 녹슨 물체 하나를 발견했다.그가 발견한 것은 고철이 아니라 바이킹 시대 이전의 암흑 시대에 사용한 1,300년 된 검이었다.이 발견은 노르웨이 인란데트 카운티Innlandet county 그란Gran 지역 브란트부Brandbu 지역으로 학교 소풍을 간 프레드하임 학교Fredheim School 1학년 학생 헨릭 레프스네스 모르트베트Henrik Refsnes Mørtvedt가 했다.NRK 보도에 따르면, 헨릭은 친구들과 함께 밭을 걷다가 흙에서 튀어나온 물체 일부를 발견했다.처음에는 녹, 흙, 금속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물체처럼 보였다.하지만 그 모양 때문에 곧 의문이 생겼다.선생님들과 아이들은 현명하게 행동했다.기념품으로 .. 2026. 5. 13.
봉인한 우물과 청동 검이 3,200년 된 사르디니아 누라게 문명 비밀을 밝히다 사르데냐의 3,200년 된 누라게nuraghe 유적에서 발견된 봉인된 우물sealed well, 의례용 도기, 그리고 봉헌용 청동 검votive bronze sword을 통해 청동기 시대 탑이 어떻게 철기 시대 제례 장소로 재사용되었는지 엿보게 한다. 수 세기 동안 지중해 사르데냐 석탑들stone towers은 사라진 청동기 시대를 말없이 상기시키는 표식처럼 섬 위에 우뚝 서 있었다.누라게 바루(Nuraghe Barru)에 있는 이 고대 유적은 이제 더욱 복잡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단순히 시대가 변하면서 버려진 것이 아니라, 변모를 거듭했다는 것이다.튀빙겐 대학교 실비아 아미코네Silvia Amicone 박사가 이끄는 새로운 학제 간 연구에 따르면, 사르데냐 남중부에 위치한 누라게 바루의 청동기 시대 탑 .. 2026. 5. 12.
주춤하는 바닷속 경주 태안 마도 해역, 5호선으로 재시동 거나? "경상도의 조운선漕運船 16척이 안흥량安興梁에 이르렀다가 풍랑을 만나 침몰했다" (태조 4년 을해[1395] 5월 17일[기유])"밤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전라도 조운선漕運船 66척이 침몰했다. 익사한 자가 200여 인이고, 물에 빠진 쌀과 콩이 모두 5800여 섬이었다. '충청도에서 조운할 곡식은 모두 면천沔川에 실어 나르기 때문에 안행량安行梁을 거치지 않지만, 전라도 조운만은 반드시 이 안행량을 거쳐야 합니다.'"(태종 14년 갑오[1414] 8월 4일[갑진])실록에서 안흥량 혹은 난행량難行梁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걸려드는 이 일대 난파 소식이라, 저와 같은 사건사고가 줄을 잇는다. 그만큼 안흥량, 곧 지금의 태안 마도 해역은 난파 다발 지역이라, 도대체 몇 척이나 수장되었는지 그 숫자를 헤아리기 .. 2026. 5. 12.
서자 박제가의 한 (4) 조선을 멸망으로 이끈 서자들의 恨 박제가가 스스로 이에 대한 글을 남긴 바는 없지만 주변 정황을 보면 박제가가 지녔을 한은 그가 아니면 알 수 없으리라. 그만큼 처절했으리라. 그는 당대 조선 최고의 벌족 출신으로 5대 문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5대 진사만 해도 목이 부러질 정도로 힘이 들어간다)그 아버지는 박제가가 유일한 혈육 아들이었음에도 그는 적자가 아니라 서자였다. 이렇게 서자가 되어버리면 허통을 허락하지 않는 한은당연히 대대로 서얼금고가 되어버리니, 똑똑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 아버지가 그의 재주를 아껴 최고의 교육까지 시켜 놓으니그가 품었을 한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렇게 이례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다, 좋은 백업을 받았다 싶으면그 주변의 정황을 알아보면 힌트를 얻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신.. 2026. 5. 12.
서자 박제가의 한 (3) 서자가 봉사손이 된 율곡의 경우 조선시대에 적자 아들이 없고 서자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 가장 정상적인 방식은 적자를 양자로 데려와 후사를 잇는 것이다. 이때 재산은 어떻게 될까? 물론 양자로 들어온 적자가 주로 상속하며 서자는 많이 받지 못한다. 박제가 집안도 필자가 거기까지는 알 수 없으니 확신할 수 없지만, 박제가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이때 아버지가 골육의 정으로 서자에게 물려준다면 어찌 될까? 적자를 양자로 데려오지 않고 말이다. 그런 경우가 있을까 싶지만, 있다. 조선시대에 나온 족보를 보면, 서자만 두었는데 양자를 들이지 않는 경우가 보인다. 이런 경우에는 서자까지만 올라 있고 그 후에는 오리무중이다. 분명히 그 서자에게서도 자손이 있었겠지만, 족보 차원에서 알아서 빼버린 것이다. 차라리 적자로 양자를 들였다면 .. 2026.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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