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241 지들이 모르면 덮어 놓고 제사, 진흥왕 순수비의 기이함! 고고학이건 역사학이건 나발이건 지들이 모르는 것을 만나면 이 족속은 주특기 혹은 본능이 제의祭儀 혹은 제사라, 모르는 유물 만나면 하는 말이 "제의 관련 기물로 추정된다" 하고 지들이 아리숑숑한 건물터를 만나기만 하면 더 가관이라 "모종의 제례를 치르던 곳으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고고학 역사학에 제의 제례 혹은 제사는 소도蘇塗요 피안이다. 왜? 그렇다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도 별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말 나온 김에 그만 좀 제사 타령해라. 너희들은 너희가 모르는 건 무조건 어찌 그리 다 제사니? 그런가 하면 누가 봐도 이건 제의의 기념물, 곧 제장祭場인데, 그런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 있다. 견주건대 불상을 보고서도 석가모니를 모르고, 교회를 보고서도 예수를 .. 2026. 6. 7. 고거련, 그 공포정 독재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광개토왕비 말 나온 김에 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물론 찾아보면 꼭 없었다 할 수도 없을런지 모르고, 그에 따라 내 조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반론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저 점이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광개토왕비는 프로파간다다. 실록을 가장한 프로파간다다.모든 프로파간다는 그것을 작성한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며, 그것이 겨냥한 독자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볼 때는 저 가장 기본하는 문제를 역사학은 묻지 않았다. 단언하지만 단 한 놈도 저 주체 문제와 독자 문제를 묻지 않았다. 물론 조금 선언을 한정하고자 한다. 제대로 혹은 진지하게 말이다. 단 한 놈도 저 주체와 독자 문제를 진지하게 묻지 않았다.이렇게 치환한다. 저런 비문은 이데올로기성이 더 농후하기 마련이다. 이를 검증하기 위.. 2026. 6. 7. 문중은 어떻게 몸을 불리는가 우리나라에서 족보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전기의 일로 문중마다 족보가 나와 정착한 것은 기껏해야 임란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족보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대략 2-3 세대 주기로 계보가 편찬되니100년 정도 주기로 족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고문서 족보를 열람하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족보는 최근 문중 인구가 수십만을 헤아리는 거대 종족들 족보도 정작 임란 이후 찍어낸 족보를 보면 아주 소략하여 책 한 권 정도를 간신히 묶어 낸 경우가 많다. 이렇게 간단했고 적힌 사람도 얼마 없던 족보가 그 후 수백년이 지나면서 점점 몸을 불려나가 지금과 같이 한 집안 수십 권에 이르는 엄청난 대동보까지 나오게 되는 것인데, 당연한 일이지만 이는 단순히 생물학적 인구증가만으로는 이렇게 될 수 없다... 2026. 6. 7. 잊힌 고대 인도 제국, 로마와 교역한 '사타바하나Satavahana 왕조' 1938년 10월, 이탈리아 고고학자 아메데오 마이우리Amedeo Maiuri는 고대 로마 도시 폼페이 발굴 현장에서 놀라운 발견을 했다.바로 정교하게 조각한 작은 상아 여성상이었는데, 거의 확실히 인도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오늘날 폼페이 락슈미Pompeii Lakshmi 또는 폼페이 야크시Pompeii Yakshi로 알려진 이 유물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만들었지만, 베수비오 화산 화산재 아래 묻혀 로마 세계 중심부까지 오게 되었다.학자들은 이 조각상이 힌두교 행운의 여신 락슈미를 묘사한 것인지, 아니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자연의 정령 야크시를 묘사한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쟁을 벌인다.하지만 이 조각상이 상징하는 바는 분명하다.고대 세계 최고의 문명 두 곳을 잇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연.. 2026. 6. 7. 광개토왕비는 왜 처절한 사료비판을 피해 갔는가? 간단하다. 그에서 민족의 영광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그 침략주의 팽창이야말로 우리가 이상이며, 우리가 꿈꾸어야 하는 주눅들고 쪽팔리기만 한 한국사 굴욕의 한 줄기 빛인 까닭이다. 봐라!저 비문이 말하는 프로파간다 얼마나 폼 나는가? 온 세상이 지꺼라는데, 그리하여 백제도 신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고 한민족 철천지원수 왜국도 박살을 냈다는데, 저 언설을 어찌 포기한단 말인가? 광개토왕비가 말하는 저 역사관이 바로 환단고기의 그것이다. 저 광개토왕비가 고구려 남긴 실록이며, 또 그것이 당대에 남긴 기록인 까닭에 그 진위는 따질 필요가 없으니, 우리는 따라만 가면 되며, 따라가며 위대한 광개토왕, 위대한 고구려 제국을 노래하기만 하면 그뿐이다. 왜?그들이 그리 노래했으니, 우리는 그것을 따.. 2026. 6. 7. 집안 야사에 휘둘리는 조선후기사 조선시대 소위 통설이라는 주장이 사료 연구로 간단히 뒤집히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원래 이런 줄 알았는데알고 보니 이렇더라, 이런 내역들인데 20세기 이후 지방 사족들 목소리가 워낙 높다 보니 조선시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그에 편중되어 그 주장을 토대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바, 정작 문헌 고찰을 상세히 하면 간단히 논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이전에도 이야기한 것 같지만, 우리나라 향촌 사족들 이야기가 조선후기사 이해에 영향을 주다 보니 지방 사족들이 엄청난 영향을 주고 사족으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지만, 이런 것은 멀리 볼 것도 없이 문과 방목만 살펴봐도 근거가 없고, 중앙 사족의 힘과 권위가 워낙 강고하여 향촌 사족은 이에 비할 바가 없다는 것이 명확하다. .. 2026. 6. 7. 이전 1 2 3 4 5 6 7 ··· 404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