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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열, 이제는 헤어질 결심] (2) 아무도 혐오하지 않는 혐오시설 그렇다 해서 그 통념이 사실인가는 다른 문제다. 이 통념은 깨부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장사시설=혐오시설이라는 통념은 우리 모두가 깨뜨려 나아가야 하는 거대한 인식 오류다. 나는 이것을 말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 저에서 말하는 혐오시설 운운은 사례 분석에서 드러나듯이 장사시설 중에서도 유독 화장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우리는 이에서 장사시설과 화장장은 분리해야 하며, 이 분리에서 그 화장장을 장사시설 일반으로 교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 이를 추진하려는 쪽에서도 다들 민감하게 인식하는 대목이라 보는데, 그런 까닭에 화장장을 장사시설 일반의 하위에 위치케 하고는 그 하위 부문을 다른 부분들도 이른바 ‘커버’치면서,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로 인근 지역 주민에 대한 각종 지원 정책도 나오는.. 2024. 4. 24.
에트루리아의 전사들 에트루리아 전사들 기원전 약 550년에 체베르테리 항구 피르기 Pyrgi 박공벽 장식 Etruscan warriors, a pediment decoration at Pyrgi, the port of Cervetery, ca.550 BCE. 로마 에트루리아 박물관 소장. National Etruscan Museum, Rome 저 박물관이 있기는 한 듯한데 문을 닫았던가 그랬다고 기억한다. 2024. 4. 24.
2천년 전 나폴리 케르베로스 무덤 Tomb of Cerberus 이 소식은 실은 지난해 10월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이라 그 후속 발굴소식이 들리지 않아 일단 정리한다. 초보 탐색에 따르면 문제의 무덤은 공화정과 제국 로마 시대에 만든 것으로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 상수도 시스템 설치와 연동한 고고학 조사 과정에서 나폴리 인근 캄파니아 Campania 줄리아노 Giugliano 시에 위치한 경작지에서 놀랍도록 잘 보존된 석실분 chamber tomb 하나가 드러났다. 무덤 입구는 응회암 판대기 tuff slab 로 봉인된 상태였고, 입구에 들어서자 방은 벽을 장식하고 있는 멋진 프레스코화 frescoes 를 드러냈다. 이 프레스코화 중에는 머리가 세 개인 개 케르베로스 [ three-headed dog, Cerberus ] 가 주목을 끌었으니.. 2024. 4. 24.
쉽게 죽는 일, 내키지 않으나 피할 수 없는 길 화장장이니 묘지니 하는 시설이 우리 동네 들어선다는데 선뜻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데 몇이나 있을 성 싶기는 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한들, 또 그 명칭이 추모시설이건 하늘공원이건 명품 문화시설이 되는 시대라한들 말처럼 쉽기야 하겠는가? 하나 같이 지자체마다 저 개보수 신설 확충에 나서지 않는 데가 없는 역설은 이는 그만큼 이 시설이 없어서는 아니되는 존재임을 역설하지 않겠는가? 먹고사는 것만큼이나 죽는 문제만큼 중요한게 있겠는가? 한데 죽기가 쉽지 않다. 쉬 죽어 쉬 사라져야는데 쉬 사라지는 문제 이것이 장사葬事시설의 발단이다. 노느니 염불한다고 어쩌다 끌려들어간 저 업계. 이러곤 표연히 나야 사라지고 말겠지만 어쩌다 맺은 인연에 내가 배우는 게 많은 요즘 나날들이다. 포항 화장장 건립 추진에 즈음.. 2024. 4. 24.
1942년 제국 일본과 그를 향한 분노의 이면 제국시대 일본이 영토 확장 정점에 이른 1942년 그 판도다. 저 시대 일본을 향한 질타엔 저 제국 주인이 우리였어야 한다는 믿음은 없는가? 그 증오의 강도를 보면서 내가 늘 의문으로 삼는 대목이다. 평화를 외치는 이면에 숨은 또 다른 폭력 말이다. 이 시점에서 단 한 가지는 확신한다. 지금 일제의 잔학이라며 그 성토가 강한 자들일수록 저런 제국주의적 팽창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라는 점 말이다. 나는 그 분노에서 제국주의 팽창 야욕을 본다. 2024. 4. 24.
요서와의 관련성을 회피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는 요서 하면 무슨 유사역사학이나 고조선 이야기 등등으로 폄하되고 아예 이야기도 안하려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요즘 나오는 논문들을 보면, 요서를 빼고 과연 한국사, 앞으로 이야기가 될까 싶은 생각이 많다. 요즘 일본에서는 아예 야요이시대 대륙에서 건너온 사람들은 요서에서 건너온 잡곡농경민이라고 정확히 이야기한다. 그리고 황하 유역 사람들은 고분시대나 되어야 일본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 참조) 이 이야기를 한국사에 그대로 이어 붙여 보면 삼국시대 이전의 한국사를 요서와 어떻게든 연결시키지 않고, 도대체 어떻게 일본의 저러한 삼중구조론을 한국사 안에 소화시킬 것인지? 요서는 싫건 좋건 이제 한국사 위에 올려놓고 이야기 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일본 쪽에서 조만간..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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