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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강 1호 초묘 郭家岗一号 楚墓 여시女尸 1994년 1월 어느 날, 후베이성湖北 형문荆门 곽점촌郭店村 기산초묘군纪山楚墓群이라 해서 전국시대 초나라 공동묘지 핵심 구역에서 무덤 하나가 도굴됐다.경찰이 도착했을 때, 도굴 구멍은 지름 1.5미터, 깊이 5미터였으며, 주변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고고학 전문가들이 이 무덤방에서 전국시대 여성 시신 한 구를 발견했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2300년 전 미라라, 이는 장사 마왕퇴 한묘漢墓에서 출현한 여성 미라보다 시대가 이르다. 이 여성 시신은 보존상태가 좋아 피부는 탄력이 있으며, 팔다리와 관절이 움직일 수 있고, 혈관 시스템이 완전해 연구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됐다. 나아가 이곳에서는 다양한 껴묻거리와 시신이 걸친 옷감류가 확인됐으니 이를 토대로 전국시대 생활과 의료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 2025. 2. 28.
[마왕퇴와 그 이웃-13] 백고니白膏泥 마왕퇴 주변에는 미라가 나온 한묘漢墓가 이것 외에도 또 있다. 그리고 시대를 올라가면 전국 시대 초나라 무덤에서도 미라가 발견되었다. 전국 시대 무덤이나 한묘는 중국 전국에서 발견되었지만 유독 이 지역 무덤에서만 미라가 확인되었다. 왜 일까?  이 지역 무덤은 독특한 구조가 있다. 관곽棺槨 주변에 "백고니"를 두텁게 둘러 놓는 것이다. 마왕퇴는 발굴 당시 관곽 주변에서 백고니가 무려 1.5 미터 두께로 확인된 바 있다. 이 지역 도굴범들은 도굴 당시 백고니가 두텁게, 온전하게 확인되면 마치 계란의 흰자가 노른자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내부의 관곽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고 추정을 했다고 한다. 백고니가 무엇일까? 우선 "고니"란 고령토를 의미한다. 끈적 끈적하고 고운 고령토가 바로 "고니"인데 한자로 한다면.. 2025. 2. 28.
곽점초간郭店楚簡, 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한여름 변사사건이 이끈 세기의 발견 송고 2006-12-20 15:31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993년 8월, 변사 사건이 중국 허베이성湖北省 징먼시荊門市 공안당국에 접수됐다. 한여름 들판에 시신 한 구가 썩어가고 있다는 보고였다.공안당국은 그 신원을 조사했으나 오리무중이었다.하지만 이윽고 출처가 밝혀졌다. 시신은 최근에 살해되거나 자연사한 사람이 아니라 2천300여년 전, 중국 남방의 강국 초楚나라 시대의 유력지배계층에 속한 남자였다. 도굴꾼들이 징먼시에서 가까운 궈디앤郭店이라는 한적한 농촌 마을의 무덤을 파헤쳤다. 눈에 보이는 보물을 집어내기 위해 미라 상태로 남아있던 시신을 바깥으로 끌어내 폐기한 것이었다. 도굴꾼들은 검거되고 그해 10월, 그들이 도굴한 무덤이 정식 발굴조사에 들어갔다.. 2025. 2. 28.
실크로드 길목 누란 왕국이 남긴 비단옷 정교한 트럼펫 소매trumpet sleeves가 달린 이 실크 가운silk robe은 서기 1세기 신장위구르 지역 패션의 전형적인 예로 평가된다.이 유물은 현재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롭사막 북동쪽 끝 실크로드를 따라 위치한 중요한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번성한 고대 왕국 누란의 무덤에서 나왔다. 우루무치 신장위구르 박물관 소장품일 듯하다. 이 룰란, 곧 누란樓蘭[엄밀히는 루란이다]이라는 왕국은 기원전 2세기 롭 사막Lop Desert 북동쪽 가장자리에 이미 알려진 실크로드를 따라 있는 중요한 오아시스 도시를 중심으로 한 고대 왕국이다. 기원전 77년 그 왕이 한漢 왕조 사절한테 암살된 후 왕국 이름은 선선鄯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롭누르Lop Nur 북서쪽 모퉁이에 있는 마을 혹은 도시는 누란이라는 .. 2025. 2. 28.
알바승과 금수저승, 그 건널 수 없는 간극 비중국권 불교 승려 중국 유학 양태를 보건대 그 머문 기간에 따라 단기 알바승과 장기체류승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예서 그 기점은 대략 10년 안팎이라문화권별 뚜렷한 차이가 있으니 신라가 대체로 장기체류승인 데 견주어 동시대 일본은 단기 알바승이라원광과 의상을 필두로 신라 승려들은 하대 무염에 이르기까지 유학기간 기본이 10년이라이런 사람들 특징이 유창한 중국어였으니 실제 귀국해서도 외교문서 작성에 개입하기도 했으니 원광이 대표적이며나아가 오랜 생활 구축한 인망을 토대로 본국 간첩생활을 하기도 했으니 의상이 그렇다.이들 특징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대재벌가 일원이라는 사실이다.이것이야말로 장기체류 근간이 된다.돈이 있어야 도도 닦고 공부를 할 게 아닌가? 그에 견주어 일본 유학승들은 하나 같이 거지였다.. 2025. 2. 27.
위대한 신라의 승려들 혜초가 경유한 길 물론 추정로도 있다. 소위 "고구려 사신" 그림이 있었다는 궁전이 위치한 길목이다. 엄청나게 멀어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언저리는 인도로 들어가는 이들이 무시로 지나가는 길이었다는 말이다. 고구려 사신이 어떤 외교적 이유로 저길 나타나 저 지역의 국가들과 모종의 외교적 딜을 했다면 저기까지 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지만, 인도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가고 있었다고 한다면, 저기는 그냥 지나갈수 있는 길목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인도 하면 떠오르는 현장의 천축국 행로도 하나 붙인다. 신라. 서기 6세기에 이미 저 길을 따라 인도로 들어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혜초만 있다고 생각하지만, 삼국 통일 이전에 이미 신라 승려들이 중국을 거쳐거기에 만족 못하고 인도까지 들어간 사람들이 꽤 있었다.. 2025.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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