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036 장경각, 신주神主로서의 목판 신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종가, 혹은 서원 같은 데서 빠지지 않은 공간으로 장경각藏經閣이 있다.물론 이 장경각은 경판각이니 하는 다양한 이름으로 일컫기도 하니, 예컨대 권문해가 편찬한 백과전서 대동운부군옥 목판을 보관하던 공간은 초간정草澗亭이라 해서 마치 정자처럼 일컫지만 실제로는 장경각이다.이 장경각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내가 보건대 제대로 접근한 글이 없다. 그렇다면 장경각은 무엇인가?사당이다!신주다! 이 장경각은 예외가 없지는 않지만, 서원이나 해당 종가에서는 거의 예외없이 사당 인접지점에 위치한다. 신성공간이라는 뜻이다. 이는 장경각이 지니는 의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장경각과 목판은 어떤 관계인가?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데서 우리는 왜 조선시대가 그토록 목판에 목을 매었는지 그 .. 2025. 2. 11. 함안 말이산 고분군 진입로에서 찾은 4~5세기 무덤 아라가야 시대 왕릉을 포함한 지배계층 묘지임이 확실한 경남 함안 말이산고분군에서 4세기 말 혹은 5세기 초 무렵에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무덤임이 확실한 흔적 하나가 새로 발견되고, 그에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각종 도기 26점이 떼로 발견됐다. 함안군은 국가유산청 보수정비사업 일환으로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해동문화유산연구원(원장 천신우)에 의뢰한 ‘함안 말이산고분군 진입로 개선공사 부지 내 발굴조사’에서 이런 성과를 봤다고 말했다.군과 조사단은 이번 성과를 두고 "아라가야 토기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라고 평가했다. 이들 도기류는 길이 3.1m, 너비 1.6m인 대형 목곽묘 유물 껴묻거리 공간으로 추정하는 곳에서 확인됐다.그릇 모양새로 보면 26점은 그릇받침 8점, 항아리 14점, 뚜껑 2점, 굽.. 2025. 2. 11. 활자인쇄의 경제성 이 부분에 대해 필자의 의견이 조금 더 남아 써 본다. 흔히 우리나라 활자인쇄에 대해서는, 선학들의 연구로 그 발전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히 밝혀져 있다. 그리고 흔히 활자인쇄에 대한 평가로는위대한 문화적 성과이지만 구텐베르크 인쇄처럼 광범위한 지적 산업적 혁명을 일으키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 라고 결론내린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될 것이, 우리나라의 활자인쇄는 어쨌건 조선왕조가 망할 때까지 계속 되었다는 점이다. 활자인쇄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돈은 정직하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는 발행부수가 활자인쇄로 가능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장기간 계속되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자인쇄는 사회 전체에 보편화한 것이 아니라 국가주도의 사업으로 남았다. 이건 .. 2025. 2. 11. 다양한 제책 기술: 폼잡는 목판 결국 이건 김 단장께서도 쓰신 내용이지만전통시대의 우리나라 목판은 목판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도 많았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팔만대장경.이건 필자가 보기엔 목판 각출 자체가 목적이다. 책을 만들어 찍어내는 건 그 다음 이야기고, 길이 전할 법보 목판을 만들어 내는 그 자체가 더 큰 목적이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목판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꽤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이런 부분까지 더 하면, 우리가 조선시대에 필사, 활자, 목판 중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인쇄물을 만들기에 앞서 복사할 것인가, 인쇄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목판 자체가 목적인가, 완벽한 교정이 목적인가, 보안이 목적인가, 소수 사람이 보는 출판물이 목적인가 되도록 많.. 2025. 2. 11. 조보는 왜 필사본인가 그렇다면 조보는 왜 필사본인가. 이는 전현직 고위 관료 및 지방 수령 등 소수의 사람들만 원칙적으로 돌려보게 되어 있었으니이거야말로 활자 인쇄가 적합한 것 아니겠는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조보가 활자로 안 간 것은 보안 때문이다. 가독률이 좋은 잘 찍힌 조보는 결국 보안상 되려 위험해지니초서로 일일히 필사해서 내려 보낸 것 아니겠는가. 아마도 초서로 일일히 필사하는 것이 인쇄 해버리는 것보다 이 경우 품이 더 들었을 것이다. 시간적 경제적으로 불리한 데도 필사를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문서가 활자본이냐 목판본이냐 필사본이냐는그 자체 선택에 있어 그다지 간단하지 않았고 다양한 부분이 고려되었을 것이며 이런 부분이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규명을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2025. 2. 11. 왕조실록은 왜 활자인쇄인가 필사한 예외도 있지만 실록은 활자본으로 안다. 왜 활자인가. 달랑 다섯 부 아닌가? 읽기 쉽게 활자를 썼다고 할지 모르지만조선시대 외교문서 등 정자체로 써내려간 필사본을 보면충분히 아름답다. 충분히 가독률도 좋다. 그렇다면 다섯 부를 활자인쇄한다는 것은 무슨 메리트가 있었을까? 경제적 이득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이런 경우 필자가 보기엔, 짐작을 해보자면교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필사를 다섯 부를 하면교정을 다섯 번을 해야 한다. 필사를 해놨으니 빨간색으로 표시를 할 수도 없다. 활자를 쓰면 한 부 먼저 인쇄하여 그것을 계속 교정하고 OK하면다섯부 쭉 밀면 된다. 이때는 제대로 먹을 안먹은 부분이 있는지만 보면 되는것 아니겠는가? 필자가 보기에는몇 부를 찍었는가, 이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활자본을.. 2025. 2. 11. 이전 1 ··· 449 450 451 452 453 454 455 ··· 350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