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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267

[독설고고학] 고생한다고 평가받을 생각 추호도 마라 내가 하도 독설고고학이라는 이름으로 고고학을 비판할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주로 내 가차운 친구들이기도 한데, 그네가 매양 하는 말이 고고학 발굴현장 가서 고생해 봐야 한다 하거니와 이는 전연 맥락을 모르는 철부지 같은 이야기라, 성동격서 비슷해서 내가 이쪽에서 이런 말로 지껄였는데, 그와는 관계없는 전연 엉뚱한 맥락으로 대꾸한데 지나지 아니하니 고생? 이 경향이 실은 꼭 고고학만 아니고 이른바 전문성이 좀 있다 간주하는 분야에서는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라 제번除煩 각설하고 고생하는 것이랑 그런 고생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전연 무관하다.고생하는 일로 평가받을 생각 눈꼽만큼도 하지 마라. 뭔가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겠다며 투신하는 사람 중에 그 정도 고생 안 하는 사람 없다. 고고학이라 해서 유달라?.. 2024. 8. 10.
연구자는 연구로 말해야 한다 현 정부 들어 우파 성향이 농후한 이른바 연구자 그룹이 관변 단체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해서 그를 반대하는 쪽 성향 사람들이 성토일색이라실은 누워 침뱉기라 그네들 집권시대는 더해서 그간 재야에서 짐짓 정의의 사도인양 사자후 토해내던 자들이 그네가 지지한 권력이 집권하자마자 온갖 자리는 다 차지했으니 그네가 풍긴 썩은 구린내 악취는 더 독했다.어제까진 그런대로 존경받는 역사학자입네 하는 원로라는 영감탱이들이 무슨 위원장입네 원장입네 소장입네 관장입네 하는 완장차기 바빴으니  연구자가 연구를 박차고 자리를 탐하기 시작하면 그놈이 연구자인가 아니면 연구자를 가장한 권력에 주린 자들인가?그놈들이야말로 그네가 그토록 비판한 폴리페서 폴리서처다.연구자가 연구로 말해야지 자리로 권력을 휘두른단 말인가? 2024. 8. 9.
전원, 벌거지의 다른 이름 계속하는 말이지만, 또 나처럼 농촌에서 나고 자라 이골이 난 데라 하지만 이른바 전원은 낭만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 이런 데서 터잡고 생활하는 일이 보통 고역은 아니다. 전원은 온지구상, 아니 선캄브리아 이래 갖은 벌거지라는 벌거지는 다 쏟아부은 데가 전원이라는 곳이라 저 벌거지가 소멸 박멸하지 않는 한 이런 데가 낭만일 수는 없다. 전원은 또 온지구상 온 시대 걸친 잡초 경연장이라 잔디 심어놓고 스프링쿨러 물 뿌리며 파라솔 아래 해먹 걸친 그런 삶은 없다. 그런 꼴을 잡초 모기 파리가 허여할 생각이 없다. 그래 시절이 나아져 이제 농가라 해서 에어컨에 최신 난방시절 빵빵히 갖추고 에프킬라 제초제 뿌리지만 온지구 곤충 잡초가 박멸하지 않는 그날까지 워즈워스가 노래한 전원 초원은 없다. 그가 보고 감탄해.. 2024. 8. 5.
충주댐 청풍호에 수몰한 회한 청풍호에 잠긴 사람들의 삶 Sinked people's life in Cheongpung-lake 제천 지역을 흐르던 청풍강은 충주댐 건설(1978~1985)로 청풍호가 되었다 강가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어 옛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시기가 되면서 농사가 본격화된다. 식량이 풍부해지면서 남은 식량을 많이 가진 사람과 덜 가진 사람 간에 계급이 생겼다. 그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 고인돌로, 황석리에서는 46기의 고인돌이 무리를 이루어 발견되었다. 이후 여러 가지 문화와 철을 다루는 법이 전해지면서, 사람들이 돌을 쌍아 돌무지무덤을 만들고 각종 철도구들도 만들었다. *** 저 충주댐 수몰지구라고 하면 술 한 잔만 들어기도 저 발굴을 이야기하는 형.. 2024. 8. 4.
문자가 죽으니 글이 소비되는 역설 신문 방송이 버려졌다지만 뉴스 시장은 인류 역사 이래 이런 활황이 없다. 글 또한 마찬가지라 글을 안 읽는다지만 엄밀히는 읽지 않는 건 책이지 글이 아니다. 글? 단군 조선이래 문자가 이리도 폭발적으로 소비된 적 없다. 신문을 보지 않고 방송을 듣지 않는데서 착을 읽지 않고 잡지를 보지 않는데서 사람들이 뉴스를 소비하지 않고 글을 읽지 않는다는 인과관계는 성립할 수 없다. 둘은 전연 별개고 실은 반비례한다. 더 간단히 말해 채과 신문이 누린 활자매체시대가 저물었을 뿐이다. 언뜻 이 역설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와 더불어 이 시대를 어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나는 문자에 대한 질식이 작금의 흐름은 그에 대한 레지스탕스라 본다. 문자는 태생 자체가 인간 생각 감정이라는 추상을 어떡해든 구상으로 해.. 2024. 8. 3.
양성兩姓의 역설, 두 개의 가부장 한국사회 일각, 특히 이른바 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일군에서 언젠가부터 아버지 엄마 두 가지 성을 병기하는 흐름이 있으니, 이것이 탑재한 아이러내는 그것이 실은 그런 양성兩姓 병기가 추구하는 양성 평등과는 달리 두 개의 가부장 시스템이 강화한 결과라는 데 있다 하겠다. 예컨대 내 아버지가 김씨요, 내 어머니가 이씨라면 그에서 태어난 자식이 김이 머시기 해서 이름을 짓는다. 나는 그것이 표방하는 그 정신은 존중한다. 그에는 그 어떤 이론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우리가 엄마 성이라 알고 있는 것은 실은 내 기준으로 외할아버지, 곧 엄마의 아버지 성에 지나지 않는다. 저 정신이 표방하는 정신을 제대로 살리겠다면 내 가문 외가쪽은 시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 시조 어머니 성을 찾는 것..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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