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267 7년전 금척리고분에서 오늘을 반추한다 2017년 5월 23일 나는 오세윤 작가랑 금척리 고분군을 어슬렁했다. 배얌이라도 구경하면 잡아서 놀 요량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배얌은 만나지 못했다. 지금은 경주역으로 간판을 바꾼 신경주역 앞짝 무슨 산이라 해서 패러글라이딩장이 있는 그 만데이도 올랐다 기억한다. 저 금척리 고분군은 내가 언제나 경주 분지 중심 감은사지까지 동부라인에 치중한 관광벨트 분산ㅊ차원에서 개발이 필요하다 주장한 곳이라 마침 경주연구소에서 파제끼기로 한 모양이라 단순히 파제끼는 건 의미가 없고 경주 도시계획 재정비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주장한 바 미안하나 그 점에서 나는 연구소 역량을 회의한다. 내가 지금껏 본 연구소는 오직 파는 데만 혈안일뿐 그 판것으로 그 큰그림을 그리는 재주는 전연 없다. 그래서 나는 연구소 체질을 발굴 .. 2024. 5. 23. 공구리의 등장과 함께 물은 통제되기 시작했다 이 공구리가 초래한 혁명을 여러 번 간헐로 지적했지만, 내 경험에 따라 다시금 이 공구리가 얼마나 대단한 혁명인가를 각인하고자 한다. 내가 자꾸 이 얘기를 하는 까닭은 내가 고고학 개설 집필을 생각 중이며 그 시작은 모름지지 바로 저 공구리 혁명과 그것을 기반을 삼은 아파트 혁명으로 시작하려 하기 때문이다. 공구리와 아파트, 그리고 그것을 지탱한 또 다른 힘, 곧 철근이 결합한 철근콘크리트는 인류문화사에서 물을 피해 강믈 범람을 피해 줄행랑을 거듭한 인류가 비로소 물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런 자신감은 마침내 인류 출현 이래 인류가 동굴로, 언덕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던 인류를 비로소 평야지대로 내려온 발판이었다. 평야 혹은 평지로 내려오면서 그 터전인 농경지도 같이 내려왔다. 물 없이는.. 2024. 5. 22. '근대 일제'를 몰아낸 참상에서 자란 독버섯들 김제 벽골제가 농경지 농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 제방인가, 아니면 바닷물 침수를 제어하기 위한 수갑水閘, 곧 dock인가 하는 논쟁이 대대적으로 붙은 적이 있었다. 내 기억에 후자를 제기한 이는 일본인 고고학도 아니면 농업고고학도였을 것이며 그에다가 제대로 불을 붙인 이는 한국에서 농업경제학도 이영훈이었다. 이 논쟁은 선후관계는 내가 지금 기억에 의존하는 까닭에 자신이 없는데 느닷없는 만경평야 논쟁으로 발전해 다시 이영훈은 느닷없이 소설가 조정래를 끌어들여 두 사람이 대판 맞붙은 일대 논쟁으로 비화했다. 이 벽골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만경평야 문제도 결단 나니 그 논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었으니, 나는 이 논쟁이야말로 21세기에 벌어진 제대로 된 논쟁 중 하나로 본다. 물론 양측은 감정싸움으로 발.. 2024. 5. 21. 강안 충적대지가 평야라는 환상, 풍납토성의 경우 물이 제어되지 않는 강안 충적대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무용지물이라 철새도래지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사람이 상거하거나 상시 농경지로는 이용할 수 없는 황무지에 지나지 않는다.식민지시대 아차산성에 촬영한 한강과 그 너머 풍납토성 일대 지금의 풍납동이다.저 넓은 강안 충적대지는 사람 살 데가 아니었다.걸핏하면 물이 들이치는 상습침수 구역이기 때문이었다.을축년 대홍수 직후 풍납토성이다.저 넓은 충적대지가 온통 황무지였으며 무허가 부랑인 움막 몇 채가 있을 뿐이었다.같은 시절 풍납토성 내부다.저 넓은 20만평이 다 버려졌다.왜?물이 통제되지 않은 강안 충적대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었다.함에도 왜 강안 충적대지 평야라는 등식이 오도되고 있는가?첫째 물이 통제되기 시작한 20세기가 심은 환상이라 이를 아득한 선사시.. 2024. 5. 21. 곡창지대는 수리조합의 유산이다 지금 우리가 평야라 일컫는 데는 그 역사를 불과 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모조리 갈대밭이라 봐도 대과가 없다. 왜? 그 평야는 강안 충적대지라 상습 침수 지역인 까닭이다. 이는 실제 발굴로도 명백히 드러나는데 평야지대라 해서 파제껴서 나루터나 보 같은 시설이면 몰라도 일반 집터 관공서 같은 건 흔적도 없다. 이걸 모르고 과거 평야지대, 그러니깐 충적대지를 잘 걸렸다 해서 시굴트렌치 넣고 하지만 넣어봐라 뭐가 나오는지. 눈꼽만큼도 안나오고 논이니 밭이니 하는 것들은 모조리 일제시대 이래 농경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일제시대 이후 농경지를 무슨 조선시대 이전 농경지라 우기는 연구자도 내가 봤다. 이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논농사 벼농사 그 자체가 실은 환상이다. 강안 충적대지가 범람원이란 말은 벼농사.. 2024. 5. 21. 내가 잘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일 그게 무엇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이것도 전직 직장을 그만두면서 뚜렷이 이런 일을 하겠다고 정한 것도 없으니, 그렇다고 나는 내가 다시는 출근하고 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거니와(물론 이 역시 훗날 유동적일 수는 있다. 살아보니 네버 에버라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더라.) 그러면서 이런저런 일을 손대 보니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요, 누에는 뽕을 먹어야 함을 새삼 각인하거니와 그래도 명색이 글쓰기로, 혹은 기자로 30년 이상 굴러먹었고, 더구나 그 대부분하는 생활이 특정한 분야에 집중했으니 그런 일로 내가 잘할 만한 일, 혹은 그래서 혹 어떤 사람 혹은 부류 계층한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지금도 실은 찾고 있다 보는 편이 정확하다. 그 일환이랍시며 지금은 세계 문화사 탐구니 .. 2024. 5. 21. 이전 1 ··· 30 31 32 33 34 35 36 ··· 3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