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ESSAYS & MISCELLANIES2267 도로 세우는 피사의 탑, 그 역설 12세기에 들어설 때만 해도 멀쩡한 피사의 탑은 이내 연약 지반 때문에(실은 부실공사에 가깝다) 이내 기울기 시작했다.완공은 14세기에 들어와서야 보았지만, 기울어짐을 해결하지는 못했다.1990년 기준 기울기는 5.5도를 기록했다.할 수 없이 붕괴 위험이 있다 해서 손을 대기 시작했으니 1993~2001년 구조 안정화 작업 결과 기울기는 3.97도로 감소했다.이 문제를 어찌할 것인가?저 탑이 유명한 까닭은 삐딱이인 까닭이다. 그 삐딱이를 바로잡아야 할까? 아니면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할까?생각보다 이 문제는 심각하다. 문화재 보존철학이 개입해야 한다. 이런 논의를 하고 그 철학을 마련하는 일이 문화재학이다. 문화재학은 고고학도 아니며, 고건축하도 아니며, 그런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학문이다.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3) 말벌 사건과 무덤 붕괴 몇 년 전이다. 그날 나는 마침 현장에는 없었지만, 서악마을에 유숙한 내 지인 몇 명이서 하룻밤을 유숙한 다음 새벽 동이 틀 무렵 몰래 서악고분군 담장을 넘고는 들어가 선도산 기슭을 따라 흘러내린 능선을 따라 나란히 자리잡은 저 거대한 서악고분군 무덤들 중에서도 맨 뒤쪽, 그러니깐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하는 그 무덤을 몰래 오르다가 기어이 사고가 났으니 아마 높이 20미터 가까울 저 거대한 봉분을 몰래 오르던 그 지인 중 한 분이 그만 말집을 건드려 병원에 후송하는 사태에 이르고 말았으니, 진짜로 골로 갈뻔 했다. 각 부위에 고르게 총 7방을 당한 그 지인 진짜로 죽다 살아났다.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나는 아 조만간 저 무덤이 무너지겠구나 했다. 그 얼마 뒤 실제로 저들 무덤 중..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2) 헛다리 짚은 서악고분 붕괴 현장 복구 지금까지 저와 같은 태풍 혹은 집중호우에 따른 문화유산 파괴현장은 중앙부처 기준으로 그 몫은 발굴제도과였으니, 물론이 경우 그 몫이라 함은 발굴을 염두에 둔 수습을 말한다. 구체로 들어가면 해당 문화재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결론은 언제나 버킹검이라 언제나 발굴이 따랐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그 복구를 위해서는 발굴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다.그런가? 왜 저런 현장에 발굴이 모름지기 필요한가? 우리는 이를 단 한 번도 물은 적 없다.실제 그 과정에 어떠했건 그것이 끝난 다음 목표는 오직 하나라 원상태 복구였으며, 실제 모든 현장이 그런 식으로 마무리 되어 오늘에 이른다.간단히 무덤 혹은 산성을 보자. 무슨 이유로 무덤 일부가 붕괴하거나 성벽 일부가 무너졌다. 그에 따른 궁극하는 작업 완료는 본래 상태로의.. 2024. 5. 28. [문화재를 배회하는 유령] (1) 보존정비와 발굴이라는 먹이사슬 구조 반창고 대일밴드로 충분했을 서악고분, 기어이 파제낀 고고학 앞서 나는 이 일을 거론하며, 이 사안이 문화재현장에서 얼마나 중대한 문제인지를 계속 지적했거니와, 그러면서 벌써 저 사건, 곧, 저 거대한 서악고분군이 집중호우에 내려앉았을 때 잽싸게 고고학이 날라들어 이참에 잘됐다 해서 파제낄 것이라고 예상했거니와, 실제 그리 되고 말았다. 왜? 언제나 우리네 문화재정책 돌아가는 꼴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 도식을 정리하면 이렇다. 집중호우 or 태풍 → 문화재 붕괴 → 피해조사 → 피해복구를 위한 발굴 혹은 해체 → 복구 이 과정이 현행 국가유산청 조직 구조로 보면 문화재붕괴와 피해 조사 시점까지는 대체로 안전방제과 업무라, 이후 과정은 그 현장이 고고현장이면 발굴제도과로 넘어가고, 기타 고건축이거나 자연유산.. 2024. 5. 28. 산다는 것 만한 고역은 없다 6년 전 오늘, 그러니깐 2018년 5월 26일 나는 호남 땅을 배회하고 있었다고 일기가 알려준다. 당시 무슨 일이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아니하나 그냥 바람 쐬러 간 듯 하다. 그땐 그것만으로 좋았다. 보니 나주를 들르고 함평 땅을 밟은 모양이라 개중 후자는 미답이었던 땅이니 저를 통해 생소를 조우로 돌려놓았다. 저 시절 같이 놀던 친구들도 또 그만큼 사정이 달라졌고 나 또한 무엇인지 모를 만치 변질했으니 내가? 그들이? 변했을까? 아님 시절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단 하나 분명한 건 더 팍팍해졌다는 딱 하나다. 산다는 것 만한 고역은 없다. 돌아보니 여리박빙이었으니 하지만 그 여리박빙이 끝날 시점은 점점 묘연해진다. 부처님 말씀은 맞다. 세상은 고해다. 2024. 5. 26. 너무나 당연한 것들(2) 전기 그제 대전 문화재 안내 프로그램에 잠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연세 지긋한 해설사 선생 한 분이 하는 대전 역사 안내가 아주 조근조근 재미 있고 유익했으니 옛날 라면땅 같은 과자 한 봉다리를 경품으로 내놓는 간단 퀴즈가 있었는데 내가 경품탄 간따나 퀴즈는 이랬다. 대전에 전기가 들어온 게 언제일까요? 내가 뭐 아는 게 있겠는가? 그냥 던졌으니 1910년대요 했더니 정답이란다. 상술하기를 1912년에 대전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댄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으니 내 고향 경북 금릉군 대덕면 조룡1리에 전기가 들어온 시점이 1974년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입학한 그해에 들어왔기에 저 시점을 기억한다. 그런 동네니 한글은 입학하면서 기영아 놀자 영이야 놀자 바둑아 놀자 하는 놀자 타령 일삼으며 깨쳤다. 놀랍겠.. 2024. 5. 26. 이전 1 ··· 29 30 31 32 33 34 35 ··· 37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