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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216

500년 느티나무에 죽을 자유를 주자 어제다. 경기 수원발 연합뉴스 기사로 〈"살려야만 한다"…수원 500년 느티나무 구하기 대작전〉 제하 김인유 기자 기사가 나왔으니, 이번 장맛비에 처참히 붕괴한 느티나무 노거수(老巨樹)가 쓰러진 모습을 담은 큼지막한 사진을 곁들여 이렇게 쓰러진 나무를 살리고자 당국이 안간힘을 쓴다는 내용이었다. 보도에 의하면 지난달 26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영통구 느티나무 사거리 부근 단오어린이공원에 있는 수령 500년 된 느티나무가 부러졌다고 한다. 다시 보도를 훑어가면, 이 느티나무는 1790년 조선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축성할 때 그 나뭇가지는 그것을 축성하는데 쓴 서까래를 공급했는가 하면,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때면 구렁이 울음소리를 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고 한다. 높이 33.4m, 둘레 4.8m에 달한.. 2018. 7. 1.
사전이 퇴조하니 사전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오프라인 사전은 이제 곳곳에서 신음 소릴 내며 퇴조 일로다. 이젠 더는 설 곳이 없다. 내도 팔리지 않을 뿐더러, 팔려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 신문..요새는 기자들도 보지 않는다. 신문 발행부수? 아득히 먼 선캄브리아 후기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신문은 퇴조를 거듭해 지금은 마지막 숨을 헐떡인다. 그렇다면 사전이 퇴조했는가? 분명 오프라인 사전은 눈에 띠게 퇴조했다. 그렇다면 신문이 퇴조했는가? 분명 조중동이 대표하는 신문이 가판대에서 정신없이 사라져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전이 결코 퇴조했다 할 수는 없다. 그러니는커녕 단군조선 이래 이토록 사전 수요가 많은 시대가 있을성 싶을만치 그 수요는 급격히 늘어나, 일상 곳곳으로 파고들었다. 너도나도 사전을 찾는다. 그 매체가 바뀌었을 뿐 사전 수요는 폭증 일로.. 2018. 5. 31.
불교문화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 다음은 (재)만해사상 실천선양회가 발간하는 잡지 《불교평론》 36호(2008년 10월 10일)에 투고한 글이다. 불교문화재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김태식 연합뉴스 기자 [36호] 2008년 10월 10일 (금)김태식 taeshik@yna.co.kr 1. 잘못된 진단과 처방 이 글을 쓰는 7월 20일은 일요일임에도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분쇄하고자 정부와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그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보도에 따르면 독도 수호를 위해 해저 광물질 조사단 구성, 운영과 국민에 대한 독도 접근권 보장, 해양호텔 건립을 비롯한 독도 관광상품 개발 등의 ‘독도 유인도화(有人島化)’가 그 핵심으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당ㆍ정은 현재 독도에 주둔한 전투경찰을.. 2018. 5. 12.
황룡사 터에서 고고학이 일어섰다 《시사IN》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황룡사 터에서 고고학이 일어섰다황룡사 터 발굴은 신라 문화재 조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업이었다. 2만5000평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고고학계 중진 중에는 황룡사 터 발굴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이 많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7년 01월 10일 화요일 제486호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당시, 드넓은 경주평야 한가운데에 건축되었던 거대한 사찰이다. 규모로나 위계에서 신라 제일의 절이었다. 진흥왕은 당초(재위 14년째인 553년) 그 자리에 새로운 대궐을 지으려 했다. 돌연 황룡이 출현하는 바람에 대궐을 사찰로 바꿔 건설했다. 세월이 흘러 선덕여왕 시대(재위 12년째인 643년)에 승려 자장율사.. 2018. 4. 14.
연못에서 물을 빼자 신라가 드러났다 《시사IN》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연못에서 물을 빼자 신라가 드러났다안압지는 674년에 건설한 신라시대 연못이다. 1974년 안압지 준설공사를 했는데 발굴 조사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급히 발굴 조사를 벌였다. 신라시대 목선도 나왔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제484호 신라시대 천년 왕성 월성의 동쪽에 자리 잡은 안압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문무왕 14년(674년) 건설한 연못이다. 당시에는 월지(月池)라 불렀다. 안압지 주변에는 다음 보위를 이을 세자가 거주하는 공간인 동궁이 있었다. 군신이 함께 연회를 즐겼을 임해전도 있었다. 신라가 고려에 흡수되어 왕국의 영화가 사라진 뒤 .. 2018. 4. 14.
박정희가 물었다 “금관이 나올까?” 《시사IN》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제482호 박정희가 물었다 “금관이 나올까?”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관에 집착했다. ‘고분 발굴’ 관련 보고 때도 금관 출토 가능성을 가장 먼저 물었다. 천마총에서 금관이 나오고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금관이 나왔다.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12월 15일 목요일 제482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금관을 매우 좋아했다. 경주관광종합개발 실무단 측이 박 전 대통령의 이런 성향을 자극해서 고분 발굴 작업을 좀 더 용이하게 만들기도 했다.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 한창 수립 중이던 1971년 6월 말~7월 초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경주 개발 실무단의 일원인 정재훈 당시 문화재관리국 사무관이 청와대 상황실에서 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있었다...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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