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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2652

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의 考古野談 도굴이라는 이름의 전차, 석가탑으로 돌진하다 김태식|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4월 호 이번 호부터 문화재 발굴 막전막후 비화를 소개하는 ‘김태식의 고고야담(考古野談)’을 연재합니다. 필자인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은 언론사에서 17년 이상 문화재 분야를 담당한 베테랑 언론인 출신입니다. 한국 문화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탄생했으며, 어떤 가치를 부여받아 오늘에 이르렀는지, 도굴과 발굴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고 갈라지는지, 익숙한 문화재에 얽힌 사건과 인물 비화 등을 중심으로 흥미롭게 재구성해 보여줄 것입니다. “불국사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인 석가탑(일명 무영탑)이 지난 8월 29일에 있었던 지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기고.. 2018. 1. 20.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발견 50주년 문무왕 수중릉은 실재인가 신화인가? 김태식 |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언론인 2017년 03월 호 2001년 4월 28일 오후 KBS 역사스페셜 ‘최초 발굴, 신라 대왕암’ 편을 시청하다 눈을 의심하는 장면을 마주했다. 대왕암을 발굴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방송사가 말이다. 물론 발굴 자격이 없는 방송사가, 그것도 신라 문무왕 수중릉이라 해서 1967년 5월 15일에 소위 ‘발견’되고 같은 해 7월 24일 국가사적 제158호로 이름을 올린 대왕암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에 방송사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해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분명 발굴 시행처는 KBS였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방송사가 나서서 직접 발굴하는 일은 견문이 짧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금시초문이.. 2018. 1. 20.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 ‘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 부석사 관음보살상 설사 약탈당했더라도 또다른 ‘약탈’로 돌려받는 게 정당한가 [중앙선데이] 입력 2017.02.12 00:00 수정 2017.02.12 04:35 | 518호 26면 입춘이던 지난 4일, 충남 서산 비봉산 기슭부석사(浮石寺)는 유난히 부산했다. 입춘 삼재풀이 행사가 겹쳐 액운을 쫓으려 태운 종이 부적 재가 눈처럼 흩날린다. 서해와 산들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공교롭게 신라 고승 의상이 창건한 경북 영주 부석사와 이름이 같기 때문인지 창건주를 의상으로 삼는다. 또한 경내 곳곳에는 의상과 선묘라는 여인에 얽힌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선전하는 안내판이 있다. 고색 완연한 건축물로는 지금 종무소로 쓰는 건물과 그 전면 안양루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워낙 전망이 좋다 2013년 절도로 돌아온..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3-] 도미 부인의 기지 정절 탐하는 개로왕에게 월경 핑계 대고 도망쳐 [중앙선데이] 입력 2017.06.04 01:44 수정 2017.06.04 16:23 | 534호 23면 서기 475년. 이 해는 백제 제21대 개로왕(蓋然性鹵王) 재위 21년째요, 고구려는 100세 장수를 누린 장수왕 재위 63년째가 되는 해였다. 『삼국사기』 고구려 장수왕본기를 보면 “(가을 9월에) 왕이 군사 3만을 이끌고 백제를 들이쳐 그 왕이 도읍한 한성(漢城)을 함몰하고 백제왕 부여경(扶餘慶)을 죽이고 남녀 8000명을 포로로 삼아 돌아왔다”고 돼 있다. 백제는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까닭에 왕족은 부여를 성씨로 삼았다. 부여경이란 개로왕의 이름이다. 500년 사직이 거의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인 백제는 신라의 도움을 얻어 허겁지겁 남쪽..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2-] 왕위 계승전쟁과 협치 정신 원성왕, 경쟁자가 폭우에 발 묶인 틈타 대권 차지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7.05.07 02:44 | 530호 23면 대권(大權)은 우연의 소산일까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까? 혹은 하늘의 의지일까? 이런 물음에 전근대 동아시아 이데올로그들은 언제나 천명(天命)을 거론했다. 실제로 천명이 작동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겉으론 그러했다. 하지만 추잡한 권력투쟁을 천명이란 이름을 빌려 포장한 데 지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선덕왕 후계 언급 없이 타계하자 김경신·김주원 치열한 왕권 경쟁 김주원, 큰 비 내려 건너 오지 못해 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 왕위 계승 김주원을 명주군의 왕에 책봉 신라는 일통삼한(一統三韓) 전쟁과 그에 따른 세계 제국 당(唐)과의 일전에서 승리한 여세를 몰아 절대 번영..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1-] 이세민-김춘추 외교 밀약 문무왕, 초강대국 唐에 당당히 맞서 한민족 토대 마련[중앙선데이] 입력 2017.04.02 02:39 수정 2017.04.02 03:47 | 525호 23면 신라가 일통삼한(一統三韓)을 위해 국운을 건 전쟁에 나섰을 때, 당(唐)은 유일한 세계제국이었다. 당시 당은 냉전시대 동서 양쪽을 양분한 맹주들인 미국과 구소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비축한 세계제국이었다. 혼자 힘으론 숙적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하기 버거웠던 신라는 이 세계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일통삼한 전쟁으로 나아가기로 하고, 이를 위한 가속페달을 밟기 시작한다. 당과 연합한 신라는 660년 백제를 정복하고, 668년에는 마침내 고구려마저 쓰러뜨림으로써 통일을 달성한다.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은 신라 차지’밀약 깨고 야욕 드러낸 당에 맞서..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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