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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HISTORY82

꼬끼오 어근당 소리 듣고 왕이 된 고려 현종 원문대왕 왕순王詢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휘는 순詢이고, 자는 안세安世다. 안종安宗(으로 추존된) 왕욱王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효숙왕후孝肅王后 황보씨皇甫氏다. 성종成宗 11년(992) 임진 7월 임진 초하루에 태어났다. 성품이 총명하고 인자했으며, 배움에 있어 명민하고 문장에 뛰어났다. 처음에 머리를 깎고 숭교사崇敎寺(라는 절)에 거처하니, 한 승려가 일찍이 꾼 꿈에서, 큰 별이 절 마당에 떨어져서 용으로 변하고 또다시 사람으로 변하였는데 곧 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왕을 기이하게 여겼다. (북한산에 있는 절인) 신혈사神穴寺로 옮겨 머무를 때 또다시 꿈에 닭 울음소리와 다듬이질 소리를 듣고는 술사術士에게 물어보니, 우리말[方言]로 해몽하여 말하기를, “닭 울음소리는 ‘꼬끼오[高貴位]’이.. 2024. 1. 10.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하는 판에, 그 보좌인 一 명물이 있으니 곧 김유신이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 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하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사가들이 彼 양국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가송歌訟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一人의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개 인의 전기보다도 그 매수가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도 참여도 못하였다(이상 460쪽). 그러면 김유신전이 익미溢美한 말이 많음을 가히 추지推知할 것이다. 이제 그 사리에 合한 자를 추리면 대개 下와 같다.... 그러나 유신이 가야의 김씨인 까닭에 비상한 반연攀緣이 없으면 중용되지(이상 461쪽) 못할 .. 2024. 1. 8.
만주를 상실케 한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신라사를 읽으매 김유신을 원망하노라 당병을 끌어들여 구려를 멸하고 압강을 경계로 삼고 동쪽은 신라에 속하게 하고 서쪽은 당에 속하게 했으며 만주가 다시금 우리가 지니지 못했으니 소위 통일삼한이란 그 공이 크기는 하지만 그 수치는 어찌 말하랴 讀新羅史, 歎金庾信 , 引唐兵滅句麗, 以鴨江爲界, 印屬羅, 以西屬唐, 滿洲不復爲我有, 所謂統一三韓, 其功雖大, 其耻可言耶。 심산 김창숙金昌淑(1879~1962)은 이렇게 김유신을 한탄하며 비판했다. 그의 글을 모은 심산유고心山遺稿에 보이는 한 구절이다. 소위 이 민족주의 계열 역사학도 지금 보면 웃기는 게, 발해가 고구려를 정통으로 계승했다면서 신라를 이리 공격해댄다는 점이다. 저 논리에 의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는 주인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한민족 무대인 까닭.. 2024. 1. 8.
사대주의 병균을 퍼뜨린 김춘추 그러나 “신라가 국소민약하니 무엇으로 백제의 앙殃을 갚으랴. 오직 외원外援을 빌 뿐이다” 김춘추가 기둥 친 끝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구려로 들어갔다(458쪽)...그래서 김춘추가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 당 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정형을 진숧고. 힘 닿는 데까지 한限하여 모든 비사후례卑辭厚禮(459)를 가져 원병을 구할 새, 당조唐朝 군신의 뜻을 맞추기 위하여 자 법민·인문 등을 당에 유질留質하며, 본국의 의관을 버리고 당의 의관을 쓰며, 진흥왕 이래로 自記한 본국의 제왕년호를 버리고 당의 년호를 쓰며,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晉書와 그 산증刪增한 사기史記·한서漢書·삼국지三國志 등 - 그 중의 조선에 모멸한 말이 많은 문자를 가져다가 그대로 본국에 유전하여, 사대주의의 병균을 전파하기 시작하니라... 2024. 1. 8.
괜히 청개구리겠는가? 오늘 유양잡조를 읽다가, 청개구리 이야기를 발견했다. 여기서는 혼자渾子(멍청이)나 흔자佷子(개망나니)같은 실제 사람으로 나오지만 이야기로야 청개구리가 훨씬 정감 간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흔자는 무덤 만들난 뒤 그 다음 어찌했는지가 없지만 청개구리는 떠내려 갈까 걱정해 늘 '개굴개굴' 운다는 거 아닌가? 곤명지昆明池 안에 무덤이 있는데, 민간에서는 '혼자渾子'라고 부른다. 전해지기를, 옛날 이곳에 사는 백성 중에 ‘혼자’라는 아들을 둔 자가 있었다. 혼자가 늘 아버지의 말을 어겨, 동쪽으로 가라 하면 서쪽으로 가고, 물을 가져오라 하면 불을 가져오는 식이었다. 병들어 곧 죽게 된 아버지는 구릉 언덕에 묻히고 싶어서 혼자에게 일부러 속였다. "내가 죽거든 반드시 물속에 묻거라!" 아버지가 죽자 혼자는 .. 2024. 1. 7.
고려 정벌을 반대한 소적렬蕭敵烈 날로곤涅魯袞 열전 요사遼史 권80 열전列傳 제18 소적렬蕭敵烈은 자가 낱로곤涅魯袞이다. 재상 소달렬蕭撻烈의 4세손이다. 식견과 도량이 크고 원대하여 향리에서 받들었다. (관직 진출) 처음에 우군창사牛群敞史가 되었는데 황제가 그가 똑똑하다는 소문을 듣고는 불러 입시하게 하고는 나중에 국구상온國舅詳穩으로 옮겨 주었다. 통화統和 28년(1010)에 황제가 어러 신료에게 말하기를 “고려의 강조康肇가 그의 군주 송誦(고려 목종)을 시해하고 그의 족형 순詢(현종)을 세우고는 그의 재상을 하고 있으니 그를 대역으로 처벌해야 한다. 마땅히 군사를 일으켜 그 죄상을 물어야 할 것이다”고 하니 여러 신료가 모두 그래야 한다 했다. (하지만) 소적렬이 간언하기를 “나라가 해마다 정벌하느라 사졸이 지쳐 있고 나아가 폐하도 상중이십니다. 올 농.. 2024.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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