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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986

미륵선화(彌勒仙花) 신라 화랑 국선의 시초인 설원랑(설화랑)을 일컫는 존칭.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미륵선화(彌勒仙花)·미시랑(未尸郎)·진자사(眞慈師) : 신라 제24대 진흥왕(眞興王)은 성이 김씨요 이름은 삼맥종(彡麥宗)이니, 심맥종(深麥宗)이라고도 한다. 양(梁) 대동(大同) 6년 경신(庚申·540)에 즉위했다. 백부(伯父)인 법흥왕(法興王) 뜻을 사모해 한 마음으로 부처를 받들어 널리 절을 세우고, 또 많은 사람에게 중이 되기를 허락했다. 왕은 또 천성이 풍미(風味)가 있어 크게 신선을 숭상하여 민가 처녀로 아름다운 이를 뽑아 원화(原花)를 삼았으니, 이는 무리를 모아 사람을 뽑고 그들에게 효제(孝悌)와 충신(忠信)을 가르치려 함이었으니, 이는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대요(大要)이기도 했다. 이에 남모랑(南毛.. 2018. 6. 14.
백족화상(白足和尙) 해동고승전 권 제1 2018. 6. 14.
모록(毛祿) 신라 눌지왕 때 일선군(一善郡) 백성으로, 고구려에서 온 불교 승려 묵호자(墨胡子)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 포교토록 한 인물. 곳에 따라 모례(毛禮)라 표기한 데도 있다. 그의 성별은 전연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보통 남자로 간주되지만, 여성으로 보인다. 삼국유사 권 제3 흥법(興法) 제3 아도기라(阿道基羅) : 또 21대 비처왕(毗處王) 때에 이르러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시자(侍者) 세 사람을 데리고 역시 모례(毛禮)의 집에 왔는데 모습이 묵호자와 비슷했다. 그는 여기에서 몇 해를 살다가 아무 병도 없이 죽었고, 그 시자 세 사람은 머물러 살면서 경(經)과 율(律)을 강독하니 간혹 믿는 사람이 생겼다(주에 말하기를 "본비와 모든 전기와는 사실이 다르다"고 했다. 또 《고승전(高僧傳)》에는 서천축 사람이라고.. 2018. 6. 14.
칠부(漆夫) 해동고승 권1☞ 거칠부(居柒夫) 2018. 6. 14.
법흥왕法興王 신라 제23대 왕. 재위기간은 514~540년. 지증왕과 연제부인 사이에서 난 첫아들로, 부왕이 죽자 왕위를 이었다. 본명은 모진(募秦), 모즉지 등으로 등장한다. 재위기간 율령을 반시하고 금관가야를 병합했으며, 불교를 공인하는 등 신라사 획기를 이루는 적지 않은 업적을 남겼다. 정비인 보도부인에게서 진흥왕 어머니인 지소부인을 낳았다. 적통 아들이 없어 조카이자 외손인 진흥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화랑세기(발췌본) 서문 : 화랑은 선도(仙徒)이다. 우리나라에서 신궁을 받들고 하늘에 대제(大祭)를 행함이 연(燕)의 동산(桐山), 노(魯)의 태산(泰山)과 같다. 옛날 연부인(燕夫人)이 선도(仙徒)를 좋아해 미인을 많이 모아 이름하기를 국화(國花)라 했다. 그 풍습이 동쪽으로 흘러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여자를 .. 2018. 6. 12.
법운(法雲) 신라 진흥왕이 재위 말년에 머리 깎고 중이 되어 얻었다는 법호. 하지만 그 역사적 진실성을 두고 논란이 많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4 진흥왕 : 37년(576)…가을 8월에 왕이 죽었다. 시호를 진흥(眞興)이라 하고 애공사(哀公寺) 북쪽 산봉우리에 장사지냈다. 왕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한결같은 마음으로 불교를 받들었고, 말년에는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었으며 스스로 법운(法雲)이라 칭하다가 죽었다. 왕비 또한 그것을 본받아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永興寺)에 머물다가 죽으니, 나라 사람들이 예를 갖추어 장사지냈다. 해동고승전 권 제1 : 승려 법운은 속명을 삼맥종(彡麥宗)이라 하며, 시호를 진흥(眞興)이라 했다. 법흥왕 동생 갈문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김씨다. 태어나 7세에 즉위하니 매우 관대하고 인자.. 2018.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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