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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986

설총(薛聰)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설총 열전 : 설총(薛聰)은 자가 총지(聰智)이고 할아버지는 나마 담날(談捺)이며 아버지는 원효(元曉)인데, 처음에 승려가 되어 불경을 두루 통달하고 얼마 후에 환속하여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라 하였다. 총은 성품이 총명하고 예민하여 배우지 않고도 도술(道術)을 알았고, 방언(方言)으로서 구경(九經)을 읽어 후생을 가르쳤으므로 지금[고려]까지 학자들이 그를 높이 받든다. 또 능히 글을 잘 지었으나 세상에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단지 지금[고려] 남쪽 지방에 더러 설총이 지은 비명(碑銘)이 있으나 글자가 마멸되고 떨어져나가 읽을 수 없으므로 끝내 그의 글이 어떠하였는지를 알 수 없다.신문대왕(神文大王)이 한 여름[5월]에 높고 밝은 방에 거처하면서 설총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2018. 2. 14.
가실(嘉實)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설씨녀(薛氏女)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 2018. 2. 14.
무관랑(武官郞) 삼국사기 권 제44(열전 제4) 사다함 열전 : (사다)함(含)이 전에 무관랑(武官郞)과 더불어 죽음을 같이 할 친구(死友)가 되자 약속했는데, 무관이 병으로 죽자 심히 슬프게 울다가 7일 만에 또한 죽으니, 그 때 나이 17세였다. 2018. 2. 14.
백결선생(百結先生) 생몰년 미상. 신라인. 자비왕 때 청빈 혹은 빈한하게 활동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백결이란 백 군데 누볐다는 뜻이니, 그의 행장을 주목한 별명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백결선생 열전 : 백결(百結)선생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낭산(狼山) 아래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해 옷을 백 번이나 기워 입어 마치 비둘기를 거꾸로 매단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동리(東里)의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일찍이 영계기(榮啓期)의 사람됨을 사모해 거문고를 가지고 다니면서 무릇 기쁨과 성냄, 슬픔과 즐거움 그리고 마음에 편치 않은 일들을 모두 거문고로 폈다. 어느 해 연말에 이웃 동네에서 곡식을 방아 찧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굿공이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 2018. 2. 14.
거인(巨仁)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 박인범(朴仁範), 원걸(元傑), 거인(巨仁), 김운경(金雲卿), 김수훈(金垂訓) 등은 비록 겨우 글이 전하는 것이 있으나 역사에서 행적을 잃었으므로 전기를 세우지 못한다. 201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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