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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으로 보는 궁궐 조명기구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조명기구 조사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 《조명기구照明器具》를 발간하는 한편 숙종과 고종 연간에 각각 편찬된 궁궐 보고서인 《궁궐지宮闕志》를 한 historylibrary.net 바로 앞에 국립고궁박물관이 그 조사보고서를 냈다는 소식을 전했거니와 이에서는 그에 수록한 조명기구 면면을 도판들로 살피기로 한다. 2024. 1. 25.
[독설고고학] 한국고고학은 가마솥을 팔아먹어야 코로나도 끝났으니, 세계 유수하는 고고학 관련 단체들이 다 움직이기 시작했으니, 이런 데 가서 한국고고학 또한 이제는 무엇인가를 팔아먹어야 한다. 문화재산업? 국가유산산업? 고고학이 내어놓은 산업이 뭐가 있는가? 트롤? 장사 안 된다. 호미로 잠깐 BTS RM힘을 빌렸지만, 그걸로 고고학이 기여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각종 굿즈? 고고학이 무엇을 팔아먹었단 말인가? 교육세트? 구멍가게다. 나는 한국의 발굴제도 자체를 팔아먹으라 했지만, 이것도 한 놈도 관심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외국 고고학이 바라보는 가장 큰 상품은 한국의 발굴제도 자체라는 사실은 입이 아프도록 지적했다. 나는 그것이 무슨 자리건 이제는 한국고고학 또한 이것이 한국고고학이라고 들고 나가 방방 뜨며 선전 홍보할 것들이 있어야 한다고 .. 2024. 1. 25.
철솥의 진화: 쇠뚜껑은 언제 출현했나 최근까지 발굴 보고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철솥은 초기에는 쇠뚜껑이 없었던 것 같다. 우선 가장 이른 시기 철솥은 토기로 밥을 쪄먹던 시대의 물끓이는 아래쪽 토기의 역할을 했다고 보이고, 이런 예가 아차산보루에서 나온 위는 토기 시루 아래는 쇠솥의 조합이 아닐까 한다. 이런 것이 어느 시기부터인지 특정하기 어렵지만, 밥을 쪄먹는 것이 아니라 직접 끓는 물로 취사하는 방식의 지금과 같은 밥짓기가 탄생했다고 보이는데 이런 밥짓기가 나온다 하더라도 아마 처음에는 쇠솥의 뚜껑은 나무뚜껑이었지 싶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쇠솥의 뚜껑을 나무로 한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어느시기부터인지 쇠뚜껑이 나올 텐데 필자 생각에는 이 쇠솥의 쇠뚜껑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기를 특정하는 것 역시 쇠솥이 출현하는 시기 못지 않게 .. 2024. 1. 25.
국립고궁박물관 조선 궁궐 조명기구 총정리 국립고궁박물관이 조선시대·대한제국기 조명기구 조사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 《조명기구照明器具》를 발간하는 한편 숙종과 고종 연간에 각각 편찬된 궁궐 보고서인 《궁궐지宮闕志》를 한글로 번역한 고문헌국역총서 《국역 궁궐지-숙종 연간》·《국역 궁궐지-고종 연간』(1건 2책)》을 각각 발간했다고 25일 말했다. 박물관 소장품 도록 제18책인 조명기구는 등잔대, 촛대, 좌등座燈, 초롱燭籠·등롱燈籠, 괘등掛燈 등으로 분류한 전통식 조명기구 43점과 함께 서양식 촛대와 석유등, 전등기구 등 개항과 더불어 들어오기 시작한 근대 조명기구 52점을 합친 총 95점을 사진과 해설로 정리했다. 이런 조명기구 정리는 믿거나말거나 처음이다. 사립 박물관 쪽에서 정리한 적이 있기는 하지마는... 조명기구는 초·석유·전기 등 광원光源별.. 2024. 1. 2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건축장인 대목大木의 세계 보고서 발간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사라져가는 전통기술의 계승과 보존을 표방하며 전통 건축 목공사를 담당하는 대목大木이 사용한 도구를 그림과 영상으로 풀어낸 보고서인 「근현대 대목大木 도구」, 「그림으로 보는 전통건축 장인 대목의 도구」 두 종을 최근 발간하고 그 원문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근현대 大木 도구」는 연구가 2022년 이래 실시한 대목 작업에 대한 현장 조사와 영상 기록화 등을 통해 수집한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심화 연구를 거쳐 완성한 결과물로, 대목이 사용한 도구 50여 종에 대한 정의, 사용법, 관리법, 대목의 경험담 등을 수록했다. 강의환 안강영 두 대목이 직접 출연해 주요 도구를 설명하는 구술 영상(수어 통역 포함)도 정보 무늬(QR코드)로 수록했다. 해당 영상은 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도 제공한다.. 2024. 1. 25.
대장경, 경판은 왜 만들었고 몇 부나 찍었을까? 한국의 금속활자는 다들 아시겠지만 소량 다품종 도구다. 대량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한번 판을 짜면 한 백부나 찍었을까. 20-30부 찍고 판을 깨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던 듯 하다. 요즘으로 치면 복사기보다 조금 더 찍는 정도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해야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그 정도였기 떄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인쇄가 필요한 경우는 알다시피 목판을 찍었을 테고. 항상 드는 의문은 대장경판목-. 초조대장경부터 재조대장경까지 판목수가 정말 수십만 장인데 이거 판각한 후 과연 몇 질이나 인쇄했을까. 지금 남아 있는 팔만대장경. 조판 후 지금까지 몇 부나 찍었을까. 왜 이런 생각이 드는고 하면 팔만대장경 전체를 과연 몇 번이나 인쇄했을까 싶어서다. 그만한 종이와 먹이 .. 2024.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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