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47 고려거란전쟁이 건진 영웅은 양규와 지채문이다 이 두 사람 저 드라마가 아니었던들 언제까지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부각했겠지만, 솔까 양규는 그나마 개설서에 이름은 잠깐 들이밀기는 하지만 지채문은 노답이었다. 실제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보면 두 사람 활약은 영웅적이다. 그 압도적 거란군 위력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40만 거란군을 상대로 흥화진을 사수하고 드라마처럼 곽주성을 천700명으로 탈환했으며, 회귀하는 거란군을 곳곳에서 요격해 공포에 빠뜨린 이가 양규다. 회귀하는 거란군을 상대로 7전7승인가 하고는 나중에 장렬히 산화했다. 그는 역사가 추앙해야 할 영웅이다. 지채문. 동북면 지금의 함경도 쪽에 배치되어 있다가 급보를 받고는 서경을 구원하러 갔다가 여의치 않게 되자 개경으로 곧바로 달려 내려가 몽진하는 현종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 2024. 1. 25. 무쇠솥 뚜껑은 왜 중요한가 결국 압도적 밥맛은 밥을 할 때 가열되는 와중에 어느 정도로 효율적으로 증기를 잡아낼 수 있는가에 있다. 지금도 이것은 중요하다. 현대 전기밥솥이 거의 압력솥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코펠로 밥을 지어 본 사람은 알 텐데, 요즘은 취사가 불가능하지만 필자가 학생 때만 해도 설악산 꼭대기에서 코펠로 밥 지어 먹는 사람 천지였다. 설악산이 해발 1700 미터인가 뭐 그럴 텐데 이 정도 고도만 되도 물이 100도 아래에서 끓기 때문에 코펠 같이 얇은 두껑으로 간신히 막아 놓은 취사기로 밥을 하면 백프로 설익게 된다. 산 꼭대기에서 선 밥이 만들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때 어떻게 하는가 하면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짱똘을 가져다가 코펠 뚜겅 위에 올려 놓는다. 100도 이하에서 끓는.. 2024. 1. 25. 침술의 혁명, 연길 소영자 유적 延吉小營子遺蹟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시延吉市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대규모 무덤 흔적을 말한다. 1937년 일본 관동군이 만주 일대에서 채석 작업을 하던 중 유물이 발견되어 알려지자 이듬해 7월 경성제국대학 사학과 교수로 등나무 우거진 밭 가문 출신 후지타 료사쿠 등전량책藤田亮策이 정식 발굴조사를 했다. 그 결과 52기로 구성된 대규모 돌널무덤 석관묘 石棺墓 무덤떼로 드러났으니 무엇보다 무덤에서 100여 기에 달하는 인골을 비롯해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발굴 전 유적이 이미 많이 훼손되어, 유물의 정확한 출토 맥락을 파약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당시에 선사시대 무덤 유적을 발굴하고 그 결과를 보고서로 남겼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그 유물 일부가 권오씨가 임시 계약직 관장인 서울대박물관에 상설전시 중이다. 유물 중 놀.. 2024. 1. 25. 왕 또한 마누라는 한 명뿐, 부묘祔廟의 중요성 전반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견주어 고려시대가 적서 차별 양상이 극심하지는 않은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는 상대성 이론이라, 견주어 볼 때 그리 보인다뿐이지, 고려시대라고 적서차별은 예외가 아니었다. 이 적서 문제는 결국 혼인 양태에서 비롯하는데, 더 구체로는 남자 한 명에 부인이 한 명인 1부1처제 때문이다. 한국사에서는 적어도 기록으로 남은 흔적으로 볼 때는 철저한 1부1처제 사회였고, 남자한테 부인은 같은 시기에 한 명이 있을 뿐, 복수로 존재할 수는 없었다. 고려시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어서 이쪽도 철저한 일부일처제였다. 어느 인터넷 사전을 보니 "고려시대에는 두 명의 정실 부인 외에 첩을 두고 서자를 두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자를 적자와 다른 존재로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태종 때였다.. 2024. 1. 25. [문화재청장 정재숙] (2) 임명과 더불어 연판장 돌린 고고학계 중앙일보 현직기자인 정재숙을 임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문화재 업계 일부에서는 연판장이 돌았다. 역시나 고고학계였다. 이 놈들은 지들이야말로 문화재 업계 전부라 착각하는 놈들이다. 그 연판장은 그놈들 소행이었는데, 성명서를 내기 위한 초고 상태로 바로 나한테 들어왔다. 보니 가관이었다. 첫째 어떤 놈이 썼는지 문장이 주술관계도 맞지 않았고 둘째 주술관계는 고사하고 앞뒤 문맥도 없고 논리도 없었다. 어떤 교수놈이 썼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지금도 그 초고를 누가 썼는지 확인은 못했다. 저런 중구난방 연판장이 주장하는 요지는 결국 이거였다. 문화재는 전문분야이니 전문가가 해야 한다. 중앙일보 기자 정재숙은 문화재 전문가가 아니다. 그 연판장 초고를 막 취임한 정재숙한테 보냈더니, 이 누님 여걸이라 .. 2024. 1. 25. 밥 뜸들이기는 한국의 발명품인가? 현재로 봐서는 그런 것 같다. 실제로 밥 뜸들이기는 중국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의 발명품이라고 보는 시각이 학계에도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물로 밥을 끓인 후 마지막 단계에서 뚜껑을 닫고 불을 줄여 뜸들이며 바닥 쪽을 가볍게 태워 누룽지도 만들어 내는 방식의 취사는 밥맛을 혁신적으로 좋게 했는데 이런 방식의 취사는 한국 쪽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하고, 그 구체적 시기는 아마도 쇠솥의 출현 이후일 텐데, 필자의 감으로는 쇠솥의 모양.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전 포스팅에서 김단장께서도 얼핏 지적하신 듯한데 필자가 보기엔 같은 쇠솥이라도, 밥을 찔때 쓰는 쇠솥과 밥을 끓여 뜸들일 때 쓰는 쇠솥의 모양이 다른 것 같다. 밥을 찔떄 쓰는 쇠솥은 아마도 청동기시대 이래 토기 중 시루 아래 쪽에서 물을 끓이는 토기와.. 2024. 1. 25. 이전 1 ··· 1310 1311 1312 1313 1314 1315 1316 ··· 36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