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47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친 영조와 정조 사실 영조와 정조가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칠 만한 수준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필자 생각에는 이 양반들은 세종 정도 수준은 안 되는 양반들로 본다. 부지런하고 영명한 사람들임은 분명하지만. 숙종 때는 그렇다 치고, 영조와 정조는 많은 부분이 닮았는데 특히 신하들을 데려다 가르치고 말이 경연이지 경연때는 신하들한테는 대충 묻고 자기가 가르치는 것이 태반이었고 책을 낼 때마다 서문을 갖다 붙였는데 전부 도통道統 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자임한 것이 태반이었다고 본다. 정조가 그 정도가 좀 심했기 때문에 영조는 상대적으로 좀 덜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 양반도 만만찮은 양반이었다. 따지고 보면 숙종, 영조, 정조의 이러한 성정은 필자가 보기엔 전부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 (명성황후가 아니다, .. 2024. 1. 26. 영감님들 지하철 영감님들 지하철 무임 승차문제로 말들이 많은데,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계에서도 논의가 좀 있었던 걸로 아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지하철 무임승차로 그 분들이 좀 걸어다니고 운동하게 하는 것이 사회전체적으로 볼 때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노인들은 움직이지 않으면 병치레로 범벅이 된다. 차라리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놀러도 갔다 오고 움직이게 해드리는 것이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 양반들이 전철비 때문에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사회적 경비가 절감될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지금보다 무임승차 개시 연령을 좀 올리고 (개인적으로는 65는 좀 빠르다고 본다), 러시아워 시간에는 무임승차를 막는 등 개선책은 필요하겠지만 노인.. 2024. 1. 26. 서인 세계관보다 더 문제인 황극론 흔히 18세기 집정 서인 세계관의 대척점으로 숙종-영조-정조대의 황극론을 세우는데, 이 황극론에서 탕평책이 나왔으므로 함께 이해하여 서술한다. 황극론은 흔히 정조를 지목하지만 그 사상적 연원을 따지고 보면 숙종 이후 정조 때까지 이 대가 쎈 군주 세 명의 치세에 서서히 발전하여 정조 임금 때 최종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다. 이 흐름의 이해에 있어 숙종과 영조도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숙종, 영조 치세에 보면 정조 때의 사상적 흐름의 단초는 이미 충분히 많이 보이고 있어 정조 때에 완성된 황극론의 흐름에는 그 상류에 숙종과 영조가 당연히 포진하고 있다. 이 주장을 옹호하는 입장에 따르면 정조는 정약용 등으로 대표되는 남인과 연대하여 소위 근대적 맹아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인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 .. 2024. 1. 26. 눈가리고 아옹? 돌절구에다 자기 표식을 단 소심한 권오영 몽촌토성 출토 돌절구로 서울대박물관 고고실 상설전시품 중 하나다. 저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었다. 돌절구 석구石臼 stone mortar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에서는 작은 돌절구가 여러 점 확인되었습니다. 크기로 보아 이것으로 식재료를 가공했다기보다는 차를 보관하거나[茶甁] 약재를 빻는 데 사용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제 주전자, 청자 사발 등과 함께 출토된다는 점에서 중국에서 들어온 차 문화와 관련된 유물로 보기도 합니다. 저런 설명은 권오씨가 관장으로 오기 전에는 없었다. 그러니 저 팻말은 권오씨 의도가 짙게 반영된 그의 작품이다. 왜? 아마 선생질하신지 35년 정도 되었을 권오영은 동아대와 한신대를 발판삼아 지방을 떠돌다 서울대 국사학과로 전직하고는 박물관장까지 냉큼 먹어버렸는데 일찍이 역사학으.. 2024. 1. 26.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조선 후기 언제부터인지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조선후기 지성사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는 흐름이 있다. 필자도 조선후기의 흐름 자체를 이유 불문 부정적으로 보거나 자기 비하적 비판은 별로 공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조선후기 지성사를 마냥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 것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느냐의 문제가 있겠다. 예를 들어 숙종대 이후 왕실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소위 황극에 대한 강조, 탕평책 등은 그 대척점을 이루고 있는 노론 중심의 세계관과 별로 다른 것이 아니다. 이 자체는 근대적이라고 부르기도 어렵고 오랜 유교의 역사에서 흘러오던 두 개의 큰 세계관 중 하나는 이쪽이 잡고 다른 하나는 저쪽이 잡은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실학-. 이른바 중농학파의 토지개혁은 지나친 과대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2024. 1. 26. 아부는 거룩한 충성, 죽일 수 없다 바로 앞에서 거란군에 사로잡힌 고려군 수뇌부 넘버 원 강조와 넘버 2 이현운이 걸은 너무나 다른 길을 소개했거니와 아부는 거룩한 충성이라는 말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내가 기자 초년 시절, 아부로 출세가도를 달린 공장 선배가 한 말을 잊을 수가 없다. "태식아, 너 아부 말이다. 그거 첨에 들으면 참 거북해, 한데 말이야, 자꾸 들으면 그렇게 이쁠 수가 없다?" 결국 자신한테 아부하라는 뜻이었다. 물론 나는 아부를 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할 줄 몰랐다. 그러니 해고까지 당하지 않았겠는가? 그렇다 해서 내가 무슨 절의 절개남? 웃기는 소리, 똑같은 놈이다. 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진짜로 대인이라면 고려왕한테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강조를 풀어주어야 했다. 대신 "제 두 눈이 이미 새로운 해와 달을 보았으.. 2024. 1. 26. 이전 1 ··· 1308 1309 1310 1311 1312 1313 1314 ··· 365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