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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 재배 이야기] 수수 마지막 출하 by 신소희 수수를 정선해 출하준비를 했다.올 마지막 출하. 대부분은 급식에 일부는 문배주로 간다.수량이 적은 품종을 섞어 심었더니 예상보다 수확량이 적어 조금 아쉽다.하지만, 다 좋으면 뼈가 빠지게 일만 하는데,수확량이 적으면, 뭔가 일을 줄이고 조금 덜 고생스러운 일을 하려고 기획하고..뭐 그렇게 된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을 찾는 게 사람 아니던가. 2024. 12. 2.
오스티아 안티카, 자연과 쟁투한 로마의 성취 로마시대 그 도읍 로마를 향하는 항구 도시로 그네가 남긴 장대한 도시 유적 오스티아 안티카 Ostia Antica 라는 데를 직접 가서 보고선 두어 가지 단상으로 간단해 소개했거니와저는 그 항구가 도시가 서기 42년 클라우디스Claudius 황제 명령에 따라 건설될 무렵 일종의 설계도 혹은 조감도라 해서 복원해 놓은 것이니 저때 설계도가 무에 남았겠는가? 발굴조사를 토대하고 관련 기록들을 버무려서 이랬을 것이라고 나름 근거 갖추어 만들어낸 공상이기는 하지만 저 시대 도시 모습을 생각할 때는 아주 긴요하다. 이 도시가 테베르 강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어구에 있음은 말했거니와 문제는 계속 쌓이는 흙이었다.이에 대처한다고 클라우디우스는 강 어귀 북쪽에 신항만 건설을 추진하니 이곳에는 장엄한 다층 등대가 있었.. 2024. 12. 2.
내가 쓴 글은 누군가는 어디선가는 본다 조금 전에 어느 분이 전화를 주셔서 쓴 글 잘봤다고, 고맙다 전화를 주셨다.조금 지난 글인데 누군가 내가 당신에 대해 쓴 글이라 해서 보여주어 지금에서야 봤다는 말씀이었다.변변찮은 글이지만 한 번 공간된 글은 어디선가 누군가는 또 언젠가는 읽기 마련이라물론 글이란 요물은 양날의 비수라 내가, 우리가 먹을 돼지고기를 쓰는 데도 쓰지만 어떤 사람한테는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앙금을 남기기도 하거니와이때문에 군사부일체를 표방한 조선시대에도 우암과 명재가 갈라서 옛 스승과 제자가 앙숙이 되어 서로를 향한 칼부림을 하지 않았던가?내가 쓰는 무수한 글 역시 그러할 것임을 내가 잘 알거니와특히 나는 이른바 주례사 비평도 마다 않으나 때론, 아니 아주 자주 비수를 휘두르니그런 나를 향해 칼을 가는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 2024. 12. 2.
히타이트 고고학의 한국적 변환 장기 출타로 꼭 보고 싶은 국립김해박물관 이 히타이트 특별전시를 난 아직 보지 못했으니 그 전시구성을 두고 뭐라 할 이야기는 없다.아마 구글 스스로가 내 취향 반영해 이런 서비스를 보여준 모양인데 저 일환으로 박물관이 포장한 홍보물로 저와 같은 안내가 뜬다.내용을 훑지 않았으니 혹 곡해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전저한다.유럽 중동고고학이, 그리고 개중 하나인 히타이트 고고학이 상륙할 때 어떤 한국화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이토록 명징하게 보여줄 수는 없다.무엇보다 한국고고학은 죽어나사나 토기 이야기라 물론 저네도 이른바 도기가 고고학 박물관 전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기는 하나 그 맥락은 전연 달라서 우리네 고고학이 주안하는 그런 주제랑은 확연히 다르다.한데 히타이트 도기가 한반도 상륙하니 벌써 이름조차 토기.. 2024. 12. 2.
dark heritage 논하는 사람들한테 던지는 한 장면 한국 문화계 일부에서 논의하는 이른바 dark heritage가 그 본질과 달리천부당만부당하게 통용하고 있음을 내가 여러 번 질타했거니와누가 먹다 버린 껌을 도로 줏어다가 씹는지 모르겠다만그런 사람들한테 이 장면을 투척한다.이것이 다크 아니면 bright란 말인가?그 무수한 무덤은 죽음과 주검없이는 존재 가치도 없는 것들인데 왜 그런 것은 다크 헤러티지라는 생각을 못하는가?얼이 빠지지 않고서야제정신이고서야 그런 개념 들고나와서는 이른바 식민지시대 유산과 전쟁유산만을 떼어 다크하다 논할 수는 없다.더구나 국가기관이 그에 부화뇌동한 일은 용납할 수 없다. 각설하고 저 장면은 이른바 오플론티스 부인 The Lady of Oplontis 이라 하는 존재라폼페이를 파괴한 같은 베수비오 폭발에 같이 매몰한 오플론티.. 2024. 12. 2.
로마는 자료에 주린 한국이 뛰어들어야 한다 이 정도 세밀화면 단순히 닭을 넘어 그 품종을 논하게 된다.같은 고고미술 자료라 해도 처한 상황은 이리 달라서저짝은 2천년 전 저런 시각 자료가 쏟아지는데 이쪽은 저런 그림을 현전하는 것으로 내 기억에 고려시대 이전은 단 한 점도 없고,조선전기도 없지 않나 싶고 닭 자료라 해봐야 조선 후기 그림 몇 점그리고 삼국시대 무덤 뼈다귀로만 남았을 뿐이다.그렇다고 우리가 저쪽을 한없이 부러워만 하고 있어야겠으며그래 저런 자료도 없으니 우린 토기 형식론 축조기술론만 열라 파자 하는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다른 방식 다른 시각으로 다른 이야기 얼마든 할 수 있으며 또 비교라는 관점에서도 색다른 시도가 나오지 않겠는가?외려 나는 자료에 굶주린 우리네 연구자들이 저런 데 뛰어들면 더 참신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2024.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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