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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오줌 싸서 고려 현종 낳은 경종비 청상과부 황보씨 (4) 왕실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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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권 제2 성종문의대왕成宗文懿大王 11년(992) 7월, 개경을 뒤흔든 불륜 스캔들이 터진다. 

저간의 사정이 어땠는지를 관련 기술을 보면서 추적한다. 


○ 가을 7월. 왕욱王郁을 사수현泗水縣으로 유배보냈다. 왕욱은 태조의 8번째 아들로서 그의 집이 경종景宗비 황보씨皇甫氏 집과 서로 가까웠다.

경종이 훙서하자 그 비가 궁 밖으로 나와 머물렀는데, 일찍이 곡령鵠嶺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오줌이 온 나라에 흘러 넘쳐 온통 은빛 바다로 변해버리는 꿈을 꾸었다. 꿈을 점 쳐보니 말하기를, “아들을 낳으면 곧 왕이 되어 온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였다.

비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과부가 되었는데 어떻게 아들을 낳겠는가.
”라고 하였다. 후에 왕욱과 마침내 사통하여 임신을 하게 되었으나 사람들이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으니, 비가 대종戴宗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비가 왕욱의 집에서 자고 있는데, 집 안 사람이 마당에 땔감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니, 불길이 사방으로 활활 타올랐다. 왕이 급히 안부를 물으러 갔다가 그 연유를 알고는 왕욱이 대의大義를 범하였으므로 그를 유배 보낸 것이다.

비가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다가 막 문에 이르렀을 때 태동胎動이 있기에 문 앞의 버드나무 가지를 붙잡은 채 아이를 낳고는 죽었다. 왕이 보모를 택하여 그 아이를 기르게 하였다. 아이가 2살이 되었을 때 불러 보았다.

보모가 품에 안고 들어왔는데, 〈아이가〉 왕을 우러러 바라보더니 부르기를, “아버지.”라고 하고, 또 무릎 위로 기어 올라가 옷깃을 붙잡고 다시 부르기를, “아버지.”라고 하였다.

왕이 가엾게 여겨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아이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구나.”라고 하고는 곧 사수현으로 보내어 왕욱에게 돌려주었다.

이 아이가 바로 왕순王詢(훗날의 현종)이다.


저 꿈이야기는 어디선가 많이 봤을 것이다. 

산이나 고개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그 물이 넘쳐 도시를 잠기게 했다? 맞다 저 유명한 걸물 김유신의 누이동생 보희 이야기의 반복이다. 
 

보희가 오줌 싼 선도산

 
보희는 선도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다가 계림이 잠겼지만, 안타깝게도 띨한 보희는 그 꿈을 동생 문희한테 팔아넘기는 바람에 김춘추와 연이 맺어질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경종비 황보씨는 달라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생이 없었고 그래서 꿈을 팔 데도 없었다.

보희가 선도산에 올랐지만 여기는 개경답게 곡령이라는 산에 올랐다. 곡령이 실제 어딘지 따지지 말자. 서울로 치면 남산에 올랐다 생각하면 쉽다. 

아마 조산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임신한 시점은 991년 연말이었을 것이다. 이때 두 사람을 몸을 섞고 있었고, 왕욱은 아버지 왕건의 교훈을 잊고는 피임하지 않은 까닭에 덜커덩 과부 황후는 애를 뱄다. 

저 무렵이면 과부라 하지만 황후는 이제 스물다섯가량 한창 펄펄하는 나이요, 왕욱은 출생 시점이 940년 어간이라 이제 쉰줄에 접어든 중늙은이였다.

두 사람은 스물다섯 살가량 나이 차이가 났지만, 왕욱한테 황보씨는 조카며느리였지만, 또 실제 조카이기도 했다. 

뭐 복잡하게 따지지 말자, 저때는 콩가루 근친혼이 일반화한 시대였으니깐 말이다. 형제자매도 엄마가 다르면 결혼하던 시절이었으니깐 말이다. 아버지가 달라도 했지만 고려시대에는 확실히 그런 사례가 잘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저 사건은 언젠가는 들통날 일이기는 했지만, 화재 사건이 그 폭로를 앞당겼다. 

당시 왕 성종한테 왕욱은 숙부였다. 삼촌 집이 불이 나서 홀라당 탔다 해서 아이고 우리 삼촌 어찌 되었냐 해서 직접 현장으로 달려간 모양인데 가서 보니 잉?

배부른 형수가 그 집에서 나오네? 형수님? 도대체 이게 우째된 일이라요? 그라고 그 배는 대체 먼교? 똥배인교? 

할 수 없이 저간의 사정을 실토하니 문제는 이를 더는 성종이라 해서 비밀로 묻어둘 수는 없었다. 

경종은 성종한테는 사촌형이다. 그 형님이 죽으면서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해서 왕이 되었는데, 왕궁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여러 가지 불편하다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듯한데 상을 치르고는 왕궁 밖 사저로 나온 경종의 과부 황후가 그만 숙부랑 눈이 맞아 임신까지 덜커덩하고 말았으니 

어쩌겠는가? 당시가 아무리 콩가루 근친혼 사회라 해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이 있다. 

할 수 없이 성종은 숙부 왕욱을 사수현으로 유배보내게 된다. 

이는 그로서는 엄청난 은전이었으니, 목숨은 건져준 것이다. 

저리해서 현종 왕순이 태어났으니, 참말로 역사가 왜 이리 웃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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