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0979 19세기의 창씨개명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초반부터 우리나라 호적을 보면 노비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 한 눈에도 노비 사역이 생산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는 것과 함께가구의 크기가 줄어들고 집집마다 죄다 성을 가지게 되고 이들이 "유학"을 칭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소위 19세기 들어 양반 숫자가 급증한다는 설의 근거가 이것이다. "유학"을 칭한다고 죄다 양반이냐 하는 반론도 있는 것으로 알지만그 전 시대에 "유학"은 아무나 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있는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말이다. 19세기에는 이렇게 독립가구의 숫자가 늘면서 "창씨개명"을 하는 듯한 분위기를 확연히 느낀다. 유학을 칭하자니 그럴 듯한 성이 있어야 하고 양반 성인데 개똥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2025. 7. 7. 파라오의 저주 곰팡이균, 암 예방 약으로 재탄생?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암 세포와 싸우는 무기로 변신 1922년 11월,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Howard Carter는 봉인된 투탕카멘 무덤 작은 구멍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그에게 뭔가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 놀라운 것들이 보입니다."라고 답했다.그러나 몇 달 후, 카터의 재정 후원자였던 카나번 경Lord Carnarvon이 의문의 병으로 사망했다.그 후 몇 년 동안 발굴팀 다른 몇몇 구성원도 비슷한 운명을 맞이했고, 이는 "파라오의 저주pharaoh’s curse"에 대한 전설을 낳았으며, 이 전설은 한 세기가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의문의 죽음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여겨졌다.그러나 현대 과학은 더 유력한 원인을 밝혀냈다. 바.. 2025. 7. 7. 19세기에 왜 민란이 폭증하나 향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18세기 전반기와 후반기의 호적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있다. 아직까지도 노비 사역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집집마다 4-5명의 노비를 데리고 있던 것이 18세기 전반. 많게는 20명씩 노비를 거느린 집도 드물기만 하지만 보이는 시대다.18세기 후반이 되면 노비는 한 집에 1-2명 정도로 축소되고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딸과 노비 한두 명으로 이루어진 집이 보편화 하기 시작한다. 이 시점이 필자가 볼 때 지주 전호제가 보편화하는 시기다. 소작농이 보편화하는 시기다. 18세기 전반만 해도 노비 사역이 주류라 소작농이 보편화 할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소작농이 향촌에서 보편화하는 시기는 영정조 연간이다. 그 이전에는 노비사역이다. 서양사로 본다면 노예제와 .. 2025. 7. 7. 이탈리아 우물 발견 순동시대 유아, 희귀 유전적 기원 드러나 훼손 극심한 유골서 각종 첨단과학 조사로 정보 뽑아내 이탈리아 북동부 라벤나Ravenna 인근 파엔차Faenza 인근 우물에서 주목할 만한 고고학적 발견이 이뤄졌다. 4,000년에서 5,000년 전을 산 순동시대 Copper Age 유아의 심하게 훼손된 유해가 그것이다.유골은 몇 개 치관dental crowns과 작은 뼈 조각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볼로냐 대학교 연구진이 이끄는 조사팀은 첨단 과학적 방법으로 유아의 삶, 건강, 그리고 조상의 중요한 측면을 재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발굴은 건설 프로젝트 시작 전 정기적인 고고학 조사 과정에서 진행되었다.전통적인 골학적 분석은 유해의 심각한 손상 상태 때문에 얻을 데이터가 거의 없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학제적 접근 방식을 채택하여 치과 조직학dental.. 2025. 7. 7. 몽골 노인 울라 흉노무덤 흉노 유적으로 유명한 몽골의 노인 울라(몽골어 발음 노용 올) 고분군 중 2009년 8월 13일 몽골-러시아팀이 발굴한 현장을 찾았다. 조사단에서 30호분이라 명명한 곳이니, 남쪽에 연도를 마련한 흉노시대 전형적인 목곽분이라. 이 시대 흉노고분은 봉토가 있긴 하지만, 낮은 편이고, 가운데 목곽부분이 함몰되어 생긴 구덩이 비슷한 흔적이 예외없이 관찰된다. 목곽은 木室에 가까우니, 지표면을 정방형에 가까운 방형으로 파고들어가 墓壙을 조성하니, 대체로 단을 지어 파고 내려간다. 단은 안쪽으로 갈 수록 좁아지니, 이 30호분은 내 기억으로는 3단으로 파고 내려간 듯하다. 지표면에서 깊이는 대체로 10m 안팎이다. Noin-Ula(Noyon uul) kurgan, Mongolia. August 13th, 200.. 2025. 7. 7. [독설고고학] 재현은 문과대 고고학의 끝물 그 자체 애초 정통 자연과학을 장착하지 못한 문과대 고고학이 양식 편년 헤매다가 종국에 정착하는 데가 복원 혹은 재현이다. 더는 할 일이 막히니 그 막힌 데를 뚫겠다고 나서는 데가 예외없이 재현이다. 왜? 문과대 고고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선사시대 혹은 전통시대 그것을 만들어낸 기법을 따라서 그걸 그대로 만들어보는 방식이 바로 재현이다. 문과대 일색인 한국고고학이 더는 갈 데가 없어 궁지에 몰린 끝에 정착한 데가 재현이라 이 흐름을 문과대 고고학이긴 마찬가지인 국가기관 고고학에서도 주도한다는 사실이다.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가 간판을 바꿔단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는 도대체 언제까지 전통시대 제철 기술 복원하겠다고 그에 매달리는지 내 기억에 10년은 족히 된 듯하고 국립나주문화재연구.. 2025. 7. 6. 이전 1 ··· 149 150 151 152 153 154 155 ··· 349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