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4477 걸레가 되어 돌아온 불후의 저서 이런 독자도 있다. 반영할 건 하고 그냥 놔두어도 대세 지장없는 건 놔두었다. 《직설 무령왕릉》이 걸레가 되었다. (2017. 1. 24) *** 저 졸저는 내가 해직되고 나서 반년 뒤쯤인가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를 통해 출판한 것이라, 그 책을 숙독한 어느 독자가 저와 같이 걸레를 만들어 보내준 것이다. 아마 초판이었을 텐데, 저 지적 사항 중에 대세에 지장이 없다고 본 것들은 놔두고, 명백한 오류나 오타 같은 데는 2쇄에서 바로잡았다고 기억한다. 저런 독자가 당연히 감사하기 짝이 없다. 한데 곰곰 생각하면 예컨대 저런 독자가 내 상관이라면? 아찔해지기도 한다. 돈다. 저런 엄청난 일을 벌인 사람은 임형진 이라고 박아둔다. 동명이인으로 저 호남땅 고고학을 독식하는 그 임형진일 수는.. 2024. 1. 24. 일본 가장 오래된 인골, 알고 보니 곰뼈? 일본 고치현에서 1950년대 발견된 우시가와[牛川]인-당시 일본 최고의 화석인골-의 인골에 대한 분석결과 곰뼈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화석인골은 아니지만 이후 연구에서 화석인골 연구사에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합니다. 고고학 자료의 연구는 그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이를 통해서 새로운 시각이나 발전을 가져올 수 있기에 이 화석의 정체가 곰이 되더라도 중요한 성과였음은 분명합니다. 2024. 1. 24. 남북문제, 하나를 향한 중앙집권에의 욕망 요새는 조금은 달라지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런 성향이 두드러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 첫째 한반도가 작금의 남북으로 두 정치체로 갈라진 현상을 두고 왜 그것을 분단으로 보는가? 둘째 그것을 반드시 합쳐야 하는가? 이 두 가지에 대한 근간에서의 의문이 종래보다는 더 강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저 말은 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본래 하나였던 것이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거니와, 그래서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욕망 혹은 당위의 근거가 된다. 이를 간단히 통일운동이라고도 할 만한데, 강제로 분단되었다는 것이 합쳐야 한다는 전제가 되는가? 그런 당위는 윽박이 아닌가? 이런 점들을 이제는 물어야 한다고 본다. 나는 저 통일운동을 볼 때마다 한국역사학이 주.. 2024. 1. 24. 거란 벽화에서 푸는 초두의 비밀 사진은 4년 전 꼭 오늘, 2020년 1월 24일 우리 THE HERITAGE TRIBUNE가 소개한 적이 있는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이른바 초두鐎斗 라는 유물이라. (맨아래 첨부 기사 참조)일명 조두刁斗라고도 한다는 이 유물을 내가 볼 때마다 한국고고학이 설명하는 그 초두 맞는지를 매양 의심한다 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저 생긴 양태를 보면 누가 봐도 조리도구 요리도구다. 물론 조리도구 요리도구를 임금 거둥이나 군대에서의 행진에서 무엇인가 신호를 보내기 위한 용도로 전용할 수는 있겠지만, 언제나 나는 저것이 과연 무슨 소리를 낼 만큼 악기 기능도 겸했는가를 의심했다. 저건 누가 봐도 휴대용 조리도구다. 그런 점에서 얼마전에 우리가 소개한 적이 있는 거란 벽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 장면이 그.. 2024. 1. 24. 절풍折風과 에보시烏帽子 일본사를 보다 보면 저건 한반도에서 간 것 같은데? 싶은데도 수백년이 사이가 비어 있는 경우를 꽤 여러 번 본다. 대표적인 것이 절풍과 에보시. 필자가 보기엔 일본의 에보시는 어떤 방식이건 한반도 삼국시대 절풍 영향을 받은 복식이다. 에보시는 전국시대에도 성인식 후 착용했고 무가에서도 매우 폭넓게 이용하던 관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상류층에는 이 에보시와 거의 비슷한 관을 쓰고 있고 이를 고구려에서는 절풍, 신라나 백제에서도 유사한 관을 쓰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양자를 연결시키려 보면 막상 수백 년 공백이라면 공백이 있다는 것이 문제겠다. 또 다른 예. 일본불교에는 전수염불專修念佛, 염불을 죽도록 암기하여 성불하자는 교리의 불교들이 꽤 있다. 그런데 .. 2024. 1. 24. 김은부의 딸 색공色供이 제기하는 의문 앞서 본 고려사 김은부金殷傅 열전에는 그가 수주水州 안산현安山縣 출신이라 했으니, 이곳은 지금의 수원과 화성 정도에 해당하는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는지는 저런 표현으로는 알 수 없다. 누가 어디 사람이라는 기록이 그가 반드시 거기서 나고 자랐다는 의미가 아닌 까닭이며, 엄밀히는 그 조적祖籍을 말하는 까닭이다. 이 열전에서 우리가 주목할 다른 대목이 있다. 성종成宗 때 견관승甄官丞을 지냈고, 목종穆宗 때에는 여러 차례 전임하여 어주사御廚使가 되었다가, 현종顯宗 초에는 공주절도사公州節度使가 되었다. 왕이 거란契丹을 피하여 남쪽으로 피난하다가 공주公州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김은부가 예를 갖추어 교외에서 마중하면서 (하략) 이를 보면 그는 성종 시대에 중앙 관료 사회에 편입되어 공무원 생활을 하다.. 2024. 1. 23. 이전 1 ··· 1736 1737 1738 1739 1740 1741 1742 ··· 408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