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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 수 일제시대 전문학교 및 학생수. 조선인 학생수는 1937년 현재 2600명 정도로 대부분 사립 전문학교에 몰려 있다. 경성제대 예과 입학생의 절반과 공사립 전문학교 졸업생 2600명이 조선인으로 매년 대학진학이 가능한 숫자의 전부였던 셈이 되겠다. P.S.1) 1944년에는 연희전문과 보성전문이 문을 닫았다. 2023. 5. 27.
식민지시대 연전과 보전: 고졸자 그러나 후순위 앞서 식민지시대 고보를 고등학교로, 전문학교는 대학으로 많이 착각한다고 하였다. 이제 식민지 시대 전문학교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제일 유명한 양대 사학, 연전과 보전에 대한 이야기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할 때 학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사학위는 대졸자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사호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조선에서는 경성제대 졸업자 뿐이었다. 대학이 그거 하나였기 때문이다. 연전과 보전은 졸업장이다. 학위기가 아니라. 연전과 보전을 졸업하면 고등학교 졸업 학력이 인정되었다. 학력으로만 보면 경성제대 예과 졸업생과 동등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연전과 보전 졸업생은 경성제대 진학이 가능했을까? 거의 불가능했다. 이유는 경성제대 본과는 원칙적으로 예과졸업생 우선, 그 후순위로 구제 고등학교.. 2023. 5. 27.
일제시대 교육제도: 착시의 이유 일제시대 교육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 식민지 조선에는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육이 모두 있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초등교육인 소학교 졸업후 조선에서는 고등보통학교 (고보)에 진학하였는데 이름이 비슷해서인지 이 학교를 대개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특히 해방이후 양정, 경기 고보 등이 모두 고등학교로 바뀌면서 일제시대의 양정고보, 경기고보를 고등학교로 인식한다. 하지만 일제시대 고보는 중학교 과정이고, 고등학교는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고보라고 인식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에는 "고등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내지에는 고등학교가 많았다. 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대학"진학이 되었다. 이 고등학교에 대응하는 조선의 교육기.. 2023. 5. 27.
한국사: 서바이벌의 제왕 20세기까지의 한국사를 단 하나의 영어 단어로 뽑아보라면 필자의 경우 단연코 "Survival"이다. 한국사는 살아 남기 위해 모든 것을 총동원한 역사다. 결국 역사라는 것이 번영은 둘째이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첫 번째 명제라면, 한국사는 성공적이었다 할 수 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문명이 명멸하는 와중에도 한국은 끝까지 지도에서 지워지지 않고 21세기로 넘어왔으니 가히 "Survival"의 끝판왕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단순히 survival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누리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전략과 비전을 한국사는 가져야 한다. 쳐들어온 도둑놈을 잡는 세계관으로 한국과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수천년간 한국사를 관주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도둑놈 잡는 세계관 이상의 그 무엇을 .. 2023. 5. 27.
하늘에서 떨어진 몽촌토성 시유도기 쪼가리 서울대학교박물관, 몽촌토성-동북지구발굴조사보고, 1987. 40쪽 일부다 이것이 내가 아는 몽촌토성 성벽 출토 쪼가리 출토에 관한 기술 전부다. 한때 나와 내 동료들이 저에 관련된 추가 기술이 있을까 당시 몽촌 발굴 보고서는 모조리 뒤졌는데 이것이 전문도기 출토 상황에 대한 기술 전부였다. 정확한 출토지점 기술도 없고, 그 출토 정황을 보여주는 사진도 없다. 함에도 저에서 이미 동진제 시유도기라 해서 제한한 기술이 이뤄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대체 시유도기 쪼가리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하늘에서 왔나? 2023. 5. 27.
몽촌이 구축한 헛다리 백제사 백제고고학, 특히 한성백제 고고학 편년은 80년대 몽촌토성 발굴성과를 토대로 삼는다. 하지만 사정이 일변해 90년대 이래 풍납토성이 발굴됨으로써, 또 이에서 몽촌토성이 기존에 커버할 수 없는 문화층이, 그것도 다양하게 출현함으로써 사정이 일변해 몽촌으로 한성백제고고학을 논할 수는 없게 되었다. 문화층이라 하지만, 80년대 몽촌토성 발굴은 문화층 개념이 없다. 있다고? 있는지 봐라 없다. 그 발굴보고서 어디를 뒤져봐도, 또 나중에 최종택이 그에서 고구려 토기를 골라냈다 대서특필하나 미안하지만, 그렇게 골라낸 고구려토기가 몽촌 어느 문화층에서 어찌 출현했는지를 알려주는 보고서 기술 한 단 줄도 없다. 그냥 팠을 뿐이고, 그냥 끄집어 내서 그냥 기종에 따라 분류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 고구려토기는 적어도 보고.. 2023.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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