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1909

일제시대 아웃사이더 사실 이것은 일제시대 조선 학계의 상황 전반과 관련된 일인데 정도의 차는 있지만 일제시대 학계마다 조선인은 거의 아웃사이더였다. 전술한 역사학의 경우 해방이후 서울대 국사학과의 주축이 되는 조선인학자들은 예외없이, 거의 모두 일제시대에는 아웃사이더였다. 지금이니 양자를 대척점에 놓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 일제시대 당시에는 조선인 학계란 일본인 교수들 입장에서 치지도외였을 것이다. 이병도 등 사학자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그러할진대 이것도 아닌 소위 국학을 연구하는 양반들 이야기는 그러니 제대로 먹힐리가 없다. 조선인학자들이 발표할 지면은 조선, 동아 등 신문을 빼면 아마 진단학보나 각종 동인지 정도가 전부아니었을까. 이것은 의학도 그렇다. 경성제대 의학부, 경성의전 등이 거의 일본인 교수들이었기 때문에.. 2023. 5. 28.
우복종가愚伏宗家 대산루와 계정 對山樓附계정溪亭 대산루와 계정 對山樓附계정溪亭 Daesannu and Gyejeong Houses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193-1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56 193-1, Usan-ri, Oeseo-myeon, Sangju-si 대산루는 조선시대 이조판서,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정2품)을 지낸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의 독서 강학처로 6대손 입재立齋 정종로鄭宗魯(1783~1816)가 전보다 크게 중창한 가옥이다. 이 건물의 좌측 언덕 위에는 우복종가愚伏宗家와 뒤쪽에는 도존당道存堂 및 고직사가 있다, 때산루는 단층과 2층 누각이 연접한 T자형 건물이다. 단층은 정사靜舍로 강학공간, 누각은 휴양 접객 장서 독서 등을 위한 복합용도.. 2023. 5. 28.
상주 우복 종택 상주 우복 종택 尙州愚伏宗宅 Ubok Head House, Sangju 국가 민속문화재 제296호,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 외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296 상주 우복 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예학의 대가인 우복 정경세(1563 ~1633)의 종택으로, 종택으로서 갖추어야 할 건축적 요소들을 잘 간직하고 있다 종택은 우복산과 이안천을 낀 배산임수의 자리에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 등이 있으며, 영조가 하사한 사패지에 우복의 고손자인 정주원(1686~1756)이 지었으며, 사랑채의 당호는 산수헌이다. 종택보다 먼저 지은 대산루(1602년)와 계정(1603년)은 처음에 독서공간으로 사용되다 나중에는 종택의 별당과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으로 사.. 2023. 5. 27.
일제시대 한국사연구 일제시대 한국사 연구는 왜 일본인에게 압도당했는가 공학 의학 등 자연과학이야 어차피 수준차가 컸던 분야라 그렇다고치고, 한국사 관련은 말하자면 한국인의 나와바리인데 왜 이렇게 일본인 학자의 주장이 우세한 지경에 있었을까. 요즘 이 부분에 대해 일제시대의 글을 보면서 조금 이해가 가는 바다. 한마디로 조선인 학자들은 일차사료 자체도 많이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병도도 진단학회를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것이 아니다. 일본인 주류 학회에서 제대로 활동이 안 되니까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것 같고. 지금은 이병도 선생이 무슨 식민사학의 괴수처럼 되어 있지만, 당시 신문을 읽어 보면 그도 경성제대에 "일반인"에게도 책 좀 보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아웃사이더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해방 전에 한국인 손으로 파본 유적 .. 2023. 5. 27.
경성제대 도서관 사실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안인데 전혀 분석되지가 않았다. 다행히 경성제대 도서관에 있던 구 장서는 현재 목록까지는 구비되어 얼마전 서울대에서 간행되었다. 아래에 1940년 당시 이병도가 바라보았던 경성제대 도서관에 대한 감회를 적어둔다. 조선일보 기사다. 이병도의 이야기는, 경성제대 도서관에는 도서관이 충실하다. 이를 공개해서 맘대로 볼 수 있게 해 달라. 조선은 고가의 책을 구입하기 어렵다. 경성제대의 도서관을 공개해 달라. 요컨대, 이병도 정도의 당시 조선인 중 탑클래스 연구자도 경성제대 도서관 장서에는 맘대로 접근이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조선인은 1940년 당시 경성제대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조선인이 아무리 날고 뛰어도 학술적 성취를 이루기 힘들었다는 이야기와 같다. 2023. 5. 27.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오늘 김단장님 블로그에 글을 많이 남긴 것 같아 이제 간단하게 쓴다. 일제시대는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 일제시대 비판은 그 시대 조선에 대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일본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조선의 교육제도는 조선만 달랑 봐서는 절대로 그 숨겨진 의미를 알 수 없다. 일본의 메이지사, 그리고 그들의 교육사를 봐야 비로소 일본 식민통치의 메커니즘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조선만 죽어라 파면 식민통치의 구조가 보일까? 최근 일각에서 나오는 식민지 무조건 악마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은 한국학계의 일본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이유가 크다. 조선만 놓고 보면, 그것이 식민지악마론이건 식민지근대화론이건 간에 그 구조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동아시아 전체를, 세계사 전체.. 2023. 5. 2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