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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산림 김단장 좀 전에 쓰신 글. 그게 조선시대 산림입니다요. 자칭 학자들이 나이 들 때까지 버티다가 일약 산림이라고 중앙정계에 진출하죠. 왠만한 자리 줘가지고는 올라오지도 않고요. 지들 맘에 안든다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벼슬 던졌다가 말았다가 가관이었죠. 그러다가 나는 역시 학자다 외치면서 낙향해서는 학자로서 (?) 죽는데, 이번에는 평생 한 걸 모은 것이 문집으로 수백권 수십책에 달하죠. 그거 다 있으나 마나한 책이고요, 그거 찍느라고 불쌍한 조선의 나무들만 찍혀 종이되어 사라졌다고 봐야죠. 조선시대 유림-. 퇴율 이후에는 학자라고 부르기도 창피하고요. 녹사한다고 급제후 관직 돌던 사람들 우습게 보고 동네에서 거들먹거리다 나이 들어 한자라 해서 크게 하고는 돌아와서 다시 은거하는 흉내내는게 버릇이 됐습죠. 그.. 2024. 1. 2.
조선시대 산림, 반란자의 소굴 군신 관계가 실은 철저한 이해득실에 기반한 관계임은 전근대 왕조시대의 그것만큼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일이 드물다. 이런 계약이 루소 이후라 생각하면 커다란 착각이다. 내가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을 때 신하는 주저없이 군주를 떠나고 때론 칼을 겨누었다. 조선시대 산림은 실은 군주를 배신한 반란자의 소굴이다. 충忠은 언제나 효孝에 완패했다. 충효는 일란성 쌍생아가 아니라 늘 전자는 후자에 붙어 기생하는 파리목숨이었다. 충을 효에 등치시키고자 그리도 몸부림친 까닭은 이 때문이었다. 남녀 관계..부부 관계도 이에 하등 어김이 없다. (2016. 1. 2) *** 한비자가 갈파하기를 군주는 이해를 계산하여 신하를 기르고, 신하도 마찬가지로 이해를 계산하여 군주를 섬기고 있다. 군주와 신하는 이와 같이 서로 수판을 .. 2024. 1. 2.
한 번 長을 하면 계속 長을 해먹는 사회 이게 이전에는 안 그랬다. 일찍 승진해서 무슨 기관장을 하는 사람을 두고서는 일찍 짤린다는 걱정 혹은 저주가 압도적이었지만, 요새 돌아가는 꼴을 보면 이게 웃겨져서 한 번 장을 해 먹는 놈은 계속 長만 해 먹는 시스템으로 고착화하니 그래서 요새는 아득바득 나이 상관없이 일단 장이 되고자 발악한다. 주변 봐라. 무슨 관장이니 소장이니 원장이니 한 번 해 먹은 놈들은 계속 이런 자리만 전전한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장만 주구장창해댄다. 가장 불쌍한 놈은 실무자. 이 실무자가 주사니 학예사니 해서 들어가서 바득바득 무슨 과장 기어오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년 30년이라, 장 한 번 못 해보고 퇴직하는 사람 부지기라. 문제는 이런 사람은 결코 장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장으로 퇴직하면 .. 2024. 1. 2.
새해 맞아 새삼 고마워해야 할 분들 우리는 항상 돈내고 먹는 식당 주인께 감사드려야 한다. 왜? 독약을 탈 수도 있는데 안 탔으니까 면도사님들도 감사하다. 칼로 멱을 딸수도 있는데 봐주니깐 말이다.(면도사는 기호철 보탬이다.) 청소차도 감사드려야 한다. 나를 밀고 갈 수도 있는데 그냥 가니깐. (2015. 1. 2) 2024. 1. 2.
이임보 관을 때려부순 당 현종 이륭기 관계가 처음 같을 수는 없다. 이는 주군과 심복 역시 마찬가지라 애초엔 바늘 실 같다던 사이도 멀어지기 마련이라 이는 무수한 역사가 증언한다. 배신 반란은 심복만이 일으키는 특권이다. 이세민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위징을 버렸으니 그가 죽고 나서야 분노를 거두었다. 현종 이륭기李隆基 역시 초중반기엔 요숭姚嵩 송경宋璟을 등용해 개원지치開元之治를 이룩했으나 그 둘은 결국 자기 손으로 쳐내고 말았다. 한데 아이러니가 이런 관계도 파열음을 빚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고 만다는 점이다. 이림보李林甫, 송경 이후 물경 19년간이나 재상으로 현종을 보필하며 정사를 농단하다 안록산 양국충의 화를 불렀다. 신구당서 자치통감 등등이 이림보는 태어날 적부터 간신이라 했지만 어찌 그가 첨부터 이러했으리오? 고이다 보니.. 2024. 1. 2.
일본에 대한 오해 두 가지 필자가 보기엔, 일본에 대한 오해 두 가지가 있다. 이 두가 지 오해는 서로 반대의 입장에 있는 쪽에서 갖는 오해라는 점이 특이하다. 첫째, 일본은 언제나 한국으로 부터 문화적으로 받아 먹고 자랐다는 생각. 야요이시대부터 국가형성기인 7세기 중엽까지는 유효한 이야기다. 그래서 필자는 한국에서 왜계 유물이 나왔을 때, 쌍방의 문화 교류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왜에서 한국으로의 문화는 교류나 전파보다는 사람의 이동이라고 믿는 편이다. 반대의 경우는 문화만 갈 수 있다고 본다. 왜? 70년대 한국과 미국의 문화를 보면 안다. 하지만 7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일본은 빠른 속도로 발전이 이루어지는데, 헤이안 시대가 되면 통일신라나 일본이나 그게 그거다. 1945년까지 식민지였던 조선이 독립 후에 불과 70여년 만.. 2024.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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