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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을 믿지 않는 이유 내가 접한 미국인들이라면 화성 이주 계획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화성까지 멍멍이들을 어떻게 데려갈 것인지 지금 심각하게 논의가 있어야 옳지만-. 아무도 멍멍이를 화성으로 데려가는 방법을 논의하는 사람들이 없다. 알런 머스크의 화성이주계획이라는게 진지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의미임. (미국인들이 정말 화성에 영구적 이주를 꿈꾼다면 강아지는 백프로 동반 이주함). 2022. 3. 27.
색복色服을 상징에 응용하는 21세기 독재자 김정은 북한에 무슨 민영 언론매체가 있겠는가? 조선중앙통신과 로동신문, 그리고 조선중앙TV가 대표하는 관영매체만 있을 뿐이며, 그를 통해 양산하는 모든 이미지는 권력의 개입이 있기 마련이라, 그 자체를 김정은 자신이 직접 통제하기도 하겠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이데올로그들이 있다. 저와 같은 파시즘 사회에서는 이미지를 활용한 상징화 작업이 더욱 노골일 수밖에 없으니, 내가 저와 같은 북한 권력을 볼 적마다 느끼는 점 몇 가지가 있어 여전히 첫째 청각보다는 시각에 의존한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고, 둘째 그런 시각은 언제나 색복色服 중심주의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와 관련해 아마도 많은 이가 그럴 텐데,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창기에 의욕으로 추진했다가 말짱 꽝이 나버린 이른바 남북화해 무드 국면에서 그.. 2022. 3. 27.
섬진강 변 구례로 미리 마중 나간 봄 가는 날 장날이라고 강한 비바람을 지리산록에 기상청이 경고했으니 어이한 셈인지 각오한 악천후는 도통 기미가 없고 변비 걸린 뇐네마냥 하늘은 북북 헛방귀만 끼더니 밤이 이슥해지니 계우 비바람 뿌리기 시작한다. 비바람 다녀간 지리산록은 채 가시지 않은 먹구름에 조금은 어둑했지만 이런 날이야말로 사진이 젤로 잘박히는 날이라 그대로 폭폭 박는대로 착착 감긴다. 하룻밤 유숙한 화엄사 절간 뒤로하고는 귀경길 기차시간까지 어정한 짜투리 시간이 남아 이번 남도 답사 번개 가이드 자처한 영디기 가잔 대로 구례 읍내 누빈다. 어느 집 담장 너머 더먹머리 수북히 내민 저 연두색 옹알나무 살피니 측백이라 남쪽이라 그런지 아니면 수입산인지 묘한 수형이라 내친 김에 어떤 집이냐 살피니 제법 너른 정원 갖춤 한의원이라 그 마당 한.. 2022. 3. 26.
등록문화재 구례읍사무소 국가등록문화재 제120호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120 구례읍사무소 Gurye-eup Office 구례읍사무소는 일제 강점기인 1936년에 지은 건물로 건립 이후 줄곧 관공서로 사용하는 건축물이다. 이 건물은 애초에 구례군 청사였는데, 1982년에 군 청사를 이전한 후에 구례읍사무소로 사용한다. 본관 건물은 벽돌 구조로 된 건물이다. 건물 구성이 좌우 대칭이며, 단아해 보인다. T자형 현관이나 입구 좌우의 별 모양 창문, 정면에 불거져 나온 삼각 지붕 아래의 격자형 채광창 등 다양한 외관이 당대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준다. Constructed in 1936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is.. 2022. 3. 26.
전용신 譯 《완역 일본서기》, 누구나 봤지만 누구도 봤다 하지 않은 책 "이 분야 연구자라면 모두가 갖추고 수시로 보았지만 아무도 봤다고 인용조차 않은 희대의 책" 저를 두고 일전(2013)에 나는 저와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랬다. 역사로 밥 먹고 산다는 사람들 책상머리에 항상 저 책은 꽂혀 있었다. 누구나 다 봤다. 하지만 내가 저 책을 봤다거나 참조했다고 말한 사람은 적어도 이른바 강단사학계선 단 한 놈도 없다. 1989년 11월 25일 초판 1쇄가 나온 이래 93년 12월 30일 4쇄가 나왔으니 당시 1만8천원이라는 만만찮은 가격에도 묵직한 역주서로는 기록적인 흥행을 했으니 역사로 먹고 살거나 혹 취미로 하는 사람은 다 샀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역자는 전용신田溶新. 저런 경력을 보면 저에선 역사와 그 어떤 직접 연이 닿을 만한 구석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른 자료들.. 2022. 3. 25.
용인 처인성역사교육관 개관합니다! “용인”이란 지명은 ‘용구현’과 ‘처인현’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용구현은 지금의 기흥구 구성 일원이고, 처인현은 지금의 처인구 남사읍(2021년 읍으로 승격) 일원이다. ‘처인현’ 지역은 고려시대에는 ‘처인부곡’이었으며, 1232년 처인성 전투 승리 이후 처인현으로 승격되면서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따라서 처인성은 용인 지명 탄생의 한 축을 담당하는 중요한 유적이며, 용인이란 도시의 역사 정체성을 대표하기도 한다. * 처인성 전투에 관한 역사적 내용과 처인성역사교육관이 건립되는 과정은 이전 글로 대신합니다. 2020.05.08 - [우당당탕 서현이의 문화유산 답사기] - 용인 처인성, 고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승전지 용인 처인성, 고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승전지 “고려시대 대몽항쟁의 승전지인 처인성..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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