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3502 도둑이 동댕이쳐 수백 개 파편과 분말로 변한 달항아리 2005.08.16 17:20:06 작성부서 문화부 DESK부서 문화부 내용 유형문화재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광복절인 15일 개관한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를 기념한 특별전으로 '달항아리' 전시회를 마련했다. 다음달 25일까지 계속될 이 특별전에는 아홉 점에 이르는 달항아리 실물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국보 제262호인 우학문화재단 소장품과 보물 제1424호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외에 보물 지정이 예고된 다른 항아리가 포함됐다. 물을 건너온 달항아리는 두 점. 하나는 영국박물관 소장품이며 다른 한 점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소장품이다. 원래 제작처야 조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달항아리란 말 그대로 달덩이같은 항아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미술사학계에서 쓰는 다소 근엄함을 풍기는 학술용어.. 2023. 3. 18. [2023 런던 풍경] (7) 서머셋하우스 코톨드 갤러리 (Somerset House/ The Courtauld Gallery) by 장남원 만약, 시간이 짧아 런던에서 한 군데만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코톨드 갤러리를 선택할 것 같다. Courtauld Gallery - Wikipedia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Art collection in London, England The Courtauld Gallery () is an art museum in Somerset House, on the Strand in central London. It houses the collection of the Courtauld Institute of Art, a self-governing college of th en.wikipedia.org 서양미술사 멘토 추천으로 처음 가본 곳인데,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최근에 .. 2023. 3. 18. 대한민국의 50-70년대 (3): 해방 직전 조선인 인텔리 상황 일전 글에서 대한제국 멸망과 함께 구한국 공무원들이 조선총독부 관할 하급 공무원으로 대거 편입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소위 칙임관, 요즘으로 치면 고급공무원 군에는 일제시대 내내 조선인은 거의 없었고, 조선인 관료는 대개 말단을 전전했다. 요즘 일제시대에 "친일"을 했다고 욕을 먹는 당시 관료 대부분의 직급이 말단인 이유다. 이런 상황은 대학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었다. 해방직전 조선에는 잘 알다시피 대학이라고는 경성제대 하나이고 나머지는 모두 "구제전문학교" 였는데, 이때문에 고급관료나 학자를 양성할수 있는 TO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애초에 45년 당시까지 문맹자가 절대 다수인 상황에서 이를 뚫고 최고학부까지 졸업해도 "학사"자격증을 가진 사람은 숫자가 극히 적었다는 말이다. 의대의 경우, 경.. 2023. 3. 18. 대한민국의 50-70년대 (2): 해방직후 문맹률 한국인이 일제시대를 어떻게 경과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는 그 시대의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해방직후 문맹률이다. 경제성장률 등 지표는 "한국의 근대화"의 지표가 될 수 없다. 한국인이 제국의 2등시민으로 격하되고 일본인이 한반도 안에서도 절대우위를 점하는 상황에서 경제성장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 보다는 두 가지 지표를 봐야 한다. 첫째는 문맹률. 두 번째는 토지소유관계다. 이 두 가지가 각종 성장률 지표보다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데 있어 훨씬 정확하다. 그 중에 첫 번째 문맹률을 보자. 해방직후 한국인 문맹률이 얼마였을 것 같은가? 일제시대가 시작되고도 20년이 지난 1930년 시점의 조선인 전체 문맹률은 73.95%였다. https://db.history.go.kr/download.do?level.. 2023. 3. 18. 임하필기가 증언하는 수선화 수선화(水僊花)의 계절이다. 이유원은 《임하필기》 제32권 에서 이르기를 삼여첩(三餘帖)에, “여성(女星)이 흩어져 배현(配玄)이 되었다.” 하였는데, 배현은 곧 지금의 수선화이다. 《병사(甁史)》에, “수선은 품격이 매우 청초하다. 직녀성(織女星)의 다리인 옥청(玉淸)이다. 한 포기에 잎이 많은 것을 진수선(眞水仙)이라 하고, 외쪽 잎이 나는 것을 수선이라 하고, 꽃잎이 많은 것을 옥영롱(玉玲瓏)이라 한다.” 하였다. 내가 이 꽃을 매우 좋아하여 사는 집에 편액을 써서 걸기를 ‘종수선삼백본(種水仙三百本)’이라 하였으니, “문을 열고 한 번 웃으니 큰 강이 가로질러 흐르네.[開門一笑大江橫]”라는 시구의 뜻을 본뜬 것이다. 이하거(李荷居)가 내의원 제조 직함을 가지고 기첩과 만나니, 온 세상이 놀라고 이상.. 2023. 3. 17. 대한민국 50-70년대의 추억: 기초의학의 경우 (1) 앞서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는 해부학교실에 대한 전시회를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이번 전시회는 촛점을 50-70년대에 맞춘다. 이 시기는 우리 사학계에서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시대다. 50-70년대 전반부는 이승만 정권 시대에 극빈에 시달려야 했고, 60년대 이후는 전례 없는 고도성장기로 오늘날 한국 경제적 부의 기틀을 닦았지만, 두 시대 모두 민주주의가 결함되어 있던 시대로 엄중한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50-70년대는 그것만으로 설명하고 치워버려야 하는 간단한 시대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오늘날 소위 말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자꾸 제기되는 배경에는 50-70년대 대한민국사에 대한 인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도 한 몫 한다. 필자의 직장 이야기 몇 토막을 이.. 2023. 3. 17. 이전 1 ··· 2152 2153 2154 2155 2156 2157 2158 ··· 3917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