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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변박卞撲이 그린 초량왜관 변박 필 왜관도 卞撲筆倭官圖 Painting of Waegwan, Japanese Settlement in Korea by Byeon Bak 1783 | 변박卞撲 생몰년 미상 | UNESCO 세계기록유산 통 신사 기록물 |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동래부 화원畵員 변박(생몰년 미상)이 그린 초량왜관 그림이다. 용두산을 기준으로 동관과 서관이 있고, 등판에 재판 · 교역 등 업무를 보는 관청과 각종 상점, 서관에 일본 사절이 있는 행랑이 있다. 그림 우측 하단에는 배를 댈 수 있는 선창이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부산 특별전에 출품 중이다. 내가 의아한 것은 이것이 왜관 자체인지 아니면 왜관을 관리하던 조선 관아 건물군인지다. 그림이 포착한 것은 아마 후자가 아닌가 싶지만 혹 왜관 자체까지 포함하는지도 모르겠다. .. 2021. 6. 13.
과부가 없다는 밤나무꽃 밤꽃이 연출하는 오리엔트 환상특급은 공주를 가야 한다. 얼마전 정안마을 지나며 보니 피기 시작했으니 지금은 만발했으리라. 밤나무 밑에선 과부가 없다 했다. 그 특유한 향취에서 비롯했으리로대 가시리도 밤골 출신이요 그 고손자 원효 역시 밤골서 태어났다. 늦어도 이번 주말엔 정안을 가야겠다. 2021. 6. 13.
억울한 기생 홍련, 생식기 표본에 투여한 포로노그라피 *** 다음은 어느 지인(본인이 익명 요청) 글이다. 앞 제목은 台植이 임의로 부쳤다. 몇 년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일제강점기부터 전하는 여성의 생식기 표본이 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해당 표본을 폐기・화장했다. 이 표본은 예전부터 명월관의 기생의 사체에서 적출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었고 그 주인공은 바로 명월관의 기생, 명월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러던 중,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일본 나가노의 마츠모토시립박물관 소장품에 나오는 ‘홍련(紅蓮)’이 명월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덧붙여 홍련은 명월관의 대표 기생으로 명월이라고 불렸고, 그림으로 볼 때 명월관 기생 명월이와 상당히 부합된다고. 그는 마츠모토시립박물관까지 찾아가 박물관 관계자를 면담하고 그림 .. 2021. 6. 13.
조선에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고려 판본이 있는가? 때는 바야흐로 1801년(조선 순조 원년), 조선의 걸출한 학자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9-?)과 초정 박제가(1750-1805)가 베이징에 다다른다. 이 연행에서 둘은 청대의 대학자 기윤紀昀(1724-1805)과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푸는 한편, 많은 청나라 지식인을 유리창琉璃廠에서 새로 만나 깊은 친교를 맺게 된다. 그들이 만난 사람 중에 진전陳鱣(1753-1817)이란 이가 있었다. 절강浙江 해녕海寧 사람으로 자는 중노仲魯라 하고, 호는 간장簡莊이라 했던 학자이자 장서가藏書家, 교감가校勘家였다. 책이라면 유득공이나 박제가도 어디 가서 빠질 사람이 아니었으니 이들의 대화는 잘 통했고, 박제가가 진전에게 자기 문집에 얹을 서문을 청해 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런데 이들이 대화하던 중 서긍徐兢(10.. 2021. 6. 13.
잘라 접붙임은 우정 맺음 같으니 최근 지금껏 본 중에서도 손에 꼽는 매화 그림을 보았다. 그 솜씨도 솜씨려니와 화제 또한 일품이어서 여기 옮겨본다. 그대 집 시냇가에 매화 있었지만 君家梅溪上 보이는 건 꽃이 흰 매화뿐이었소 但見梅花白 우리 집에 홍매나무 기르고 있어 我家梅樹紅 접가지 구해서 귀객에게 부치오 求枝寄歸客 잘라 접붙임은 우정 맺음 같으니 剪接如交情 접그루 접가지 떨어져선 안되오 本末不相隔 내년에 꽃이 피어 술잔을 들 땐 明年舉酒時 취기 오른 볼이 발그름해질게요 醉頰生微赤 정유년(1957) 3윌 13일 오당 인형 따님의 혼인이란 큰 경사를 축하하며, 제당(배렴裵濂, 1911-1968). ㅡ 찾아보니 이 시는 송대의 대시인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의 라고 한다. 해석을 제대로 했는지 겁이 났는데, 새로 번역을 해주신 .. 2021. 6. 13.
문학과 정치, 김부식과 정지상 1. 김부식은 고려 당대에 이름을 날린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는 의외로 재미가 없고 설명적이다. 이는 당시 송나라 시풍의 영향으로 풀이되곤 하지만, 김부식 개인의 기질에 그런 딱딱함이 더 맞았던 것 같다. 서정과 낭만을 중시한 당나라 말기 시풍을 따랐던 그의 라이벌 정지상이 역시 일세를 풍미했던 걸 생각해보자. 2. 시는 옛날 지식인들의 필수교양이었다. 물론 그 때에도 잘 짓고 잘 못 짓는 이들이 나뉘었지만, 어지간한 관료나 선비들의 문집엔 시가 적어도 전체 분량의 반은 실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시로 이름을 날린 이들은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없었거나 굴곡진 정치인생을 살거나 악명을 드높였던 반면, 정치에서 성공한 이들은 시의 수준이 높지 않거나 양이 적다(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전체적인 감상은 .. 202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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