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19782 김유신의 두 마누라와 네 딸, 그리고 조카 김유신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정실 자식으로는 태종무열왕 딸인 지소부인과의 사이에서 5남4녀를 두었다. 아들로는 삼광과 원술 등이 모두 대아찬 이상 등위의 재상을 지냈다는 점을 특기할 만 하거니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아버지 후광이었다. 문제는 저 기술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세한 근거 제시는 생략하지만 저 아들 중에서 행적을 분석하면 맏아들 삼광은 결코 지소부인 소생일 수는 없다. 김유신은 655년 지소와 혼인했는데, 당시 지소는 스무살도 안된 애송이고, 반면 삼광은 그 지소보다도 훨씬 나이가 많았다. 더구나 김유신이 지소를 맞아들일 때 나이가 이미 61세라, 이때까지 미혼으로 지냈다고 보긴 힘들다. 고자도 아닌데 말이다. 삼국사기와 화랑세기 관련 기술을 종합한 김유신 혼인 관계도와 .. 2020. 9. 3. 졸업과 동시에 사제 관계는 끝난다 내 주변, 그리고 이곳 페북으로 얽힌 친구 중에서도 선생질 하는 사람이 많아 대뜸 이 제목에 괜시리 기분나빠할 사람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제 관계는 졸업과 동시에 종말을 고해야 한다. 졸업 이후, 아니 재학 기간에도 동등한 인격체에 의한 관계여야 한다. 문화재 업계로 국한한다. 이 사제 관계가 형성되는 곳은 특히 학예직이 유독 강한데, 이 관계가 청산되지 못해 질질 끌려가는 곳이 학예직 세계다. 한 번 선생은 영원한 선생이라 해서인지 모르나, 그 제자가 공직 혹은 다른 연구기관에 진출하고도 강고한 사제관계가 형성되니, 이러고서도 무슨 행정이 되겠는가?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 학예직으로 진출했으면, 그 순간에 사제관계는 청산해야 한다. 다이다이 맞다이적인 관계여야 한다. 이건 소위 제자들에게도 말할 것도 .. 2020. 9. 3.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2) 고구려왕을 효수했다는 주장 표문은 요컨대 우리랑 힘을 합쳐 고구려를 치자는 내용이다. 당신들이 고구려 서쪽을 치면 남쪽에서 우리가 쳐서 고구려를 협공하잔 것이다. 당시 백제와 개로왕이 완전한 고구려 타멸, 곧 멸망을 생각했는지 아니면 본떼보여주긴지는 알 순 없지만 군사동맹을 제안한 것이다. 이 표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저와 고구려는 조상이 모두 부여 출신이므로 선조 시대에는 고구려가 옛 정을 굳건히 존중하였는데, 그의 조상 쇠釗가 경솔하게 우호 관계를 깨뜨리고 직접 군사를 거느려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왔습니다만 우리 조상 수須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 같이 달려가 기회를 타서 공격하니 잠시 싸우다가 쇠의 머리를 베어 효시하였습니다." 이에서 말하는 쇠釗가 바로 100년 전에 백제와의 평양성 전투에서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은 고.. 2020. 9. 2. [복수에 불타는 팔순 왕] (1)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외교문서 동아시아 역대 제왕으로 조선 영조 이금李昑(1694~1776)이 향년 83세로 장수했다고 하지만,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와 고구려 장수왕에 견주면 번데기 앞에서 잡은 주름에 지나지 않는다. 조타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는 없지만, 백수 어간을 누렸음이 확실하다. 조타의 경우 기원전 207년에 즉위해 기원전 137에 죽었으니, 왕위에 있은 기간만 70년이다. 장수왕은 광개토왕비 발견으로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어차피 그 차이는 1년에 지나지 않으니 대세에 지장이 없거니와, 삼국사기에 의하면 412년 음력 10월에 즉위하여 재위 79년 만인 491년 겨울 12월에 훙薨하니 향년 97세라 장수왕이라 시호했다고 할 정도다. 장수는 본명이 거련巨連인데, 중국 사서에서는 련璉이라는 한 글자로 등장한다. 그를 일러 몸과.. 2020. 9. 2. 학예연구사의 열정 : 적당한 집착과 똘끼 열정이란 무엇인가! 어학사전에서 ‘열정’이란 단어의 정의는 “어떤 일에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어디에 붙여도 좋은 의미로 쓰이던 이 단어가 최근에는 ‘제대로 된 노동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일을 시키는 경우’를 빗대어 ‘열정페이’라는 말에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로 ‘열정’이란 단어는 아직까지는 긍정적인 의미로 통한다. 며칠 전 올린 “학예연구사와 큐레이터”에 대한 포스팅에 성남시 정은란 선생님의 댓글 중 “학예연구사란 어디서 일하든 공부한거 아깝지 않게 가치를 발견하고 지키고 알리고 활용하는 일을 하는 사람!” 이란 말씀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다. 그렇다면 문화재, 유물, 역사에 대해 내가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가치를 발견하고 보존하고 활용하는 일을 하는 학예연구사의 열정.. 2020. 9. 2. 고고학의 독점 유적은, 유물은 이 분야 전공자들, 예컨대 고고학도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보존이고 정비고 그것을 그들이 전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이유다. 학문적인 판단, 예컨대 그 유적 유물이 어느 시대 소산이고 그 성격은 무엇이고 하는 따위는 당신들이 해라. 기타 우수마발까지 우리가 해야 한다는 발상은 성립해서도 안되고 성립할 수도 없다. 한국 문화재정책의 비극은 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까지 독점한다는 점이다. (2016. 8. 26) *** 그래서 문화재위원회 관련 분과는 해당 전공자를 외려 최소화해야 한다. 그 분야 전문가가 정책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네들 손에서 정책이 놀아난다. 문화재위원회에서 이른바 전문가집단은 원천적으로 제외해야 한다. 2020. 9. 2. 이전 1 ··· 2280 2281 2282 2283 2284 2285 2286 ··· 3297 다음 반응형